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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전 대통령은 임기 내내 창조경제의 예로써 '원격의료'를 강조했었다. 보건의료계에서 원격의료를 활성화는 삼성 등 대기업을 위한 정책 아니냐는 비난 여론이 지속적으로 제기됐지만 자꾸 그 얘길 하니 저의에 대해 의아할 수밖에 없었다.

또 늘 힘주어 얘기했던 건 기존 규제의 혁파였다. 2016년 1월 신년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박근혜 전대통령은 이렇게 말한다.

"원격의료는 사실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수준의 의료 인력을 가지고 있고 ICT 기술도 발달을 한 나라이기 때문에 원격의료야말로 우리가 큰 강점을 가진 분야이다."

그리고 4년이 지난 오늘. 문재인 정부의 김용범 기재부 차관은 이렇게 얘기한다. "코로나19로 급부상한 원격의료와 원격교육 등 비대면 산업을 비롯해 데이터, AI,  미래차 등 규제 집중 산업에 대한 과감한 규제 혁파를 추진한다"라고.

또 홍남기 부총리는 "10대 산업분야에 대한 추가적 규제 혁파에 가속도를 낼 것"이라며 한국판 뉴딜을 언급했는데 이 '한국판 뉴딜'에는 원격의료가 핵심적으로 내포돼 있어 정책적으로 추진할 것임을 시사했다. 나는 순간, 이거야 말로 데자뷰(deja vu)라고 하는 걸까, 머릿속이 멍해 왔다.

박근혜 정부 창조경제의 예로서의 원격의료, 그리고 문재인 정부 한국판 뉴딜의 예로서의 원격의료.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똑같이 되풀이되고 있는 낱말인 규제의 혁파. 어쩌면 이렇게 비슷할까? 박근혜와 문재인 두 정부는 경제 정책을 공유하고 있다는 말인가? 기사를 읽는 눈을 의심하게 만든다. 

원격의료를 숙원사업으로까지 추진하고 있다고 말하는 홍남기 장관은 박근혜 정부에서도 문재인 정부에서도 청와대를 지키고 있는 사람이다.

원격의료란, 코로나19 사태와 같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극단적 상황이나 GP 등의 격오지 장병들, 근무자들에게 있어 유용한 방법이 될 수는 있다. 허나 어디까지나 특수한 경우에 적용될 일이지 그게 국민 보건의 일상적, 일반적 원칙이 될 수는 없다.

그걸 확대하고 "강력히 추진" 운운하는 경제부 관료들에게 나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이들이 생각하고 있는 '의료'란 무엇일까? 그들은 한번이라도 아파서 '돌봄'을 받아본 적이 있는 사람들일까?

의료란 과학기술을 끌어와 상품화하고 더 높은 이윤을 놓고 다투는 기업들간의 첨예한 경제 논리 속에서 얼마든지 꺼내 활용될 수 있는 식재료정도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그로 인한 경영과 자본의 논리가 사람의 건강에 우선되지 않게끔 통제할 자신이 과연 있는 것일까? 이 심각한 문제에 대해 얼마나 많은 고민을 해 본 것일까?

서울대학교 예방의학과 홍윤철 교수가 언급했듯, 의료란 사람에 대한 돌봄이 가장 기본이다. 진료, 치료란 의사-환자간의 인간적 관계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원격의료란 그 본질을 스킵(Skip.건너뛰다)한 채 이루어지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치료'에서, 만남도 서로간의 인격적 신뢰도 관계도 생략된 채 컴퓨터 모니터만 보고 무엇을 그리 많이 이룰 수 있다는 것일까? 당연히 이는 예외적인 경우에 예외적으로만 인정되는 것이어야 한다.

나는 한국의 경제 관료들이 '코로나19 사태' 속에서 무엇을 읽고 어떤 교훈을 얻은 것인지도 또한 묻고 싶다.

수많은 사람들이 안간힘을 다해 이 사태를 진화하고 건너오고 있는 지금 우리 의료 현장이 노출한 취약점, 즉 얄팍한 공공의료의 현실 및 비상시의 인력 부족 등의 상황이 정말로 그들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결국 필요했던 것은 사람이다. 역학요원, 간호사를 비롯해 '훈련받은 인력'이 정말로 부족했다. 주무 부처가 경제쪽인 관료들 입장에선, "우리에겐 사람 진료같은 건 둘째고 기업이 돌리는 경제가 중요해"라고 외칠 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오늘 경제관료들의 회의 중 수없이 나온 '데이타', 'ICT', '5G 통신망' 이런 단어들 그 어디에서 과연 일자리들이 튀어나오는 것인지 나는 가늠이 되지 않는다. 일자리는 사람이 일을 하게 만들수 있어야 생기는 것이 아닌가?

격리할 환자를 수용할 병상이 없어 민간 병원을 비우고 돌리고 있는 대구를 비롯, 어느 지방이나 절대적으로 부족한 공공 의료 기관들을 설립하고 거기에 더 많은 의료 인력 및 의료 주변 인력들이 근무할 일자리를 만들어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기재부는 우선적으로 거기에 예산을 쓸 궁리를 하고 있어야 정상이 아닌가?

통신망을 운용하고 데이타 네트워크를 운용할 수 있는 건 물론 대기업들뿐이다.  재벌 회사들이 원격 의료라는 '플랫폼'을 통해 과연 몇 개나 되는 일자리를 더 만들 수 있단 말인가? 기업은 늘 국가의 예산, 즉 국민의 혈세를 펑펑 쓰며 '대마불사'의 원칙 속에 특혜를 누리면서도 일자리는 별반 늘리지 않았고 오로지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만 충실하였다. 이전 9년간의 정권에서 익히 보아야 했던 그런 꼴을, 지금 정부에서도 봐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 홍남기 부총리가 정말로 원하는 것이라면, 나는 스스로 의사이자 또한 언제든 환자가 될 수 있는 한 명의 시민으로서 언제든 얼마든지 반대 투쟁에 나설 것이다. 시민의 돈을 써서 대기업의 몇몇 주주들만을 배불리려 하는 그런 행동이야 말로 한국 자본주의를 위태롭게 하는 것이며 국민 건강에 역행하는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덧붙이는 글 | 이주혁 기자는 의사입니다.


태그:#원격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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