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틸다 스윈튼과 에즈라 밀러 주연의 영화 '케빈에 대하여'는 '문제작'이라 불릴 만하다 . 몇 년 전만 해도 건드릴 수 없었던 성역불가침의 영역인 '모성애'를 의심하게끔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영화는 과연 모성이라는 것이 선천적인지 후천적인지, 모성이 결핍된 엄마도 있지 않을까라는 '의심'을 제기했다. 여기에 추후에 주인공 에바의 아들 '케빈'이 저지른 끔찍한 사건의 원인이 과연 엄마 에바의 양육태도 때문인지, 아님 케빈 자체가 가진 '악마성' 때문인지를 관객에게 생각하게 만드는 불편함까지 동반했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표지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표지
ⓒ 반비

관련사진보기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수 클리볼드 저, 반비)는 적어도 독자들에겐 '케빈에 대하여' 보다 몇 배는 더 '불편'할 수 있다. 실화라는 점도 그렇지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범죄자도 '좋은 부모' 밑에서 길러질 수 있다는 점 때문에 그렇다.

이 책의 저자인 수 클리볼드는 미국에서는 수많은 모방범죄를 일으켰던 1999년 '콜럼바인 총기난사사건'의 범인 딜런 클리볼드의 어머니이다. 평범했던 미국의 중산층 가정은 아들이 저지른 범죄로 인해 전에 없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된다.

공범 1명과 함께 재학 중인 콜럼바인 고등학교의 동급생 및 선생님 24명을 사망 및 부상에 이르게 한 딜런 클리볼드는 결국 총기난사 현장에서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저자의 시점으로 진행되는 에세이이기 때문에 중반까지는 딜런 클리볼드가 수에겐 얼마나 사랑스러운 아들이었는지, 어쨋거나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절절한 슬픔에 감회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정신이 '번쩍' 드는 순간이 있는데, 그것은 수와 그의 남편 톰이 사건 발생 몇 개월이 지난 후 경찰서를 방문해 딜런이 저지른 범죄와 맞딱드리는 장면이다. 책에는 다소 잔인할 정도로 딜런과 그의 공범이 저지른 범죄 행위가 시간 별로 묘사돼 있다.

피해자들의 실명과 그들이 어떤 경로로 살해됐는지 말이다. 고작 10대인 범인들이 저지른 이 악마같은 행위는 수 클리볼드 뿐만 아니라 독자에게도 크나큰 충격을 선사한다. 표지에 나와 있는 딜런 클리볼드의 해맑은 어린 시절 사진조차도 불편해질 정도다. 

더욱 착잡한 것은 딜런 클리볼드가 우리가 소위 10대 범죄자들을 생각했을 때 떠올릴 수 있는 고정관념과는 벗어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중산층의 가정, 친절한 이웃들, 친한 친구들까지. 조건만 나열하면 딜런 클리볼드는 아주 평범한 10대 미국 청소년의 환경을 갖고 있다.

여기에 딜런은 부모의 사랑을 충분히 받고 자랐다. 수 클리볼드는 아이를 바른 길로 이끌기 위해 때로는 엄하게, 때로는 자상하게 양육했다. 아이에 대한 깊은 사랑은 말할 필요도 없다.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수 클리볼드는 스스로를 '훌륭한 엄마'로 믿고 있었다.

아들을 떠나보나고 그가 남긴 사회적 파장과 마주한 엄마는 스스로에게 묻고 또 묻는다. 과연 이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아이가 19년간 내가 키워 온 그 아이가 맞는지. 더불어 딜런이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다는 점은 엄마를 더욱 절망에 빠지게 한다.

'좋은 엄마'는 흔히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한다. 수 클리볼드도 그러했다. 수와 톰 부부는 이처럼 사회적으로 통용되는 '좋은 부모'의 기준에 매우 가깝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수와 톰이 얼마나 좋은 부모였는가는 '별개의' 문제로, 그들의 아들은 희대의 범죄자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사회는 점점 복잡해진다. 한 명의 아이는 수많은 사회적 네트워크를 보유하게 된다. 이는 한 사람의 인격 형성에 있어서 부모가 미치는 영향이 '상대적으로' 줄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또래 집단부터 온라인을 통해 접하는 여러 콘텐츠까지 개인에게 영향을 주는 대상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아이가 작정하고 부모에게 무언가를 숨기는 게 얼마나 쉬운지, 이 책을 통해 알 수 있다. 수 클리볼드가 만난 전문가는 '부모들은 아이에 대해 모든 것을 다 안다고 자부하지만 그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생각인지'를 꼬집는다.

한 사람이 정상인의 범주인지, 사이코패스의 성향을 갖췄는지, 혹은 심각한 우울증 환자인지는 그 부모조차도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딜런은 심각한 우울증을 앓고 있었지만 결국은 부모 둘 중 한 명도 딜런이 자살로 생을 마감하기까지 그 사실을 아무도 알지 못했다.

내가 좋은 부모가 된다고 해서, 내 아이가 곧 '좋은 사람'으로 성장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이 책이 현시대를 살아가는 부모들에겐 더욱 무겁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수 클리볼드 지음, 홍한별 옮김, 반비(2016)


태그:#서평,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케빈에 대하여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