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숙소 창문에 압록강과 신의주가 담겼다. 신의주에서 압록강과 단동을 보고 싶은 꿈은 현실이 될 수 있다. 그 변화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숙소에서 나와 강변을 따라 산책했다. 썰물 때문에 압록강의 수위가 낮아져 물이 맑고 빠르게 흘렀다.
"강이 보이는가?"
"예, 지금 우리는 강을 따라 걷고 있습니다."
"강을 보이게 해주소."
"바로 옆이 강이라니까요."
"자네를 기준으로 생각하지 말고 나를 강과 마주보게 해주소."
시각 장애인인 동료가 강을 마주보도록 90도로 방향을 돌려세웠다. 봉사를 하려면 내 입장이 아니라 받는 사람의 처지를 생각하고 헤아려야 한다.
"좋네."
강변에서 노인들이 음악에 맞춰 천천히 손과 발을 움직이는 운동을 하고 있었다. 격렬하게 움직여 숨이 턱까지 차오르고 땀을 흘리지 않아도 훌륭한 운동이다. 중국에서 어디서나 종종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시간의 흐름을 즐기는 느낌이다.
호텔의 아침 식사는 언제나 기대가 있다. 단동은 농산물과 수산물이 풍부한 지역임이 음식에서 나타난다. 마, 호박, 바지락, 빵, 국수, 수박을 먹었다.
단동에서 집안까지는 압록강을 거슬러 가는 여정으로 거리가 꽤 되어 고속도로를 이용해서 버스로 긴 시간을 이동해야 한다. 고속도로는 중앙분리대와 갓길이 충분한 넓이를 확보하고 있다. 국토가 넓고 토지의 사유화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곳곳에 고속철도를 건설하고 붉은 기와와 시멘트 벽돌 벽체로 된 가정집은 세련되고 산뜻하다. 모든 건물의 지붕에 태양열을 이용하는 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현재 중국이 예전과 달라진 대표적인 모습이 화장실이다. 화장실이 밝은 색의 타일로 단순해지면서 수세식으로 깨끗해졌다.
이동하는 버스 안에서 또 다른 동료가 하모니카로 <오월의 노래>를 연주했다. 하모니카의 애잔한 음색은 우리를 금방 1980년 5월의 광주와 1894년 동학농민혁명의 황토현으로, 일제의 압박을 뚫어낸 항일무장투쟁으로 빠지게 했다.
집안 오회묘 5호묘에 도착했다. 밖은 찌는 듯이 더운데 묘 석실에 들어서자 한기를 느낄 정도로 시원했다. 돌에 물이 흐를 정도로 이슬 맺힘이 심했다. 석실의 그림을 복원하여 다시 개방했다. 석실에 방위별로 청용, 백호, 주작, 현무가 해와 달의 신, 삼족오가 선명한 색채로 그려져 있다.
광개토대왕비는 고구려 사람의 웅혼한 기상을 남김없이 보여준다. 다듬지 않은 자연석에 글자를 새겨 넣어 자연에 인공이 절묘하게 가미되었다. 광개토대왕비는 비석의 크기에 비해 너무 왜소하게 지어진 비각에 유리로 외부와 차단되어 있다. 집안에서 고구려 역사를 박제화 시키고 싶은 중국의 입장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다.
집안에서 1만 2천 개 이상의 무덤이 확인되고 있다. 광개토대왕릉은 그 가까이서는 한 눈에 그 모습을 담을 수 없을 만큼 거대한 돌무덤이다. 직육면체 모양으로 잘 다듬어진 돌은 아래만 좀 남아 있고 위는 점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말을 타고 활로 호랑이를 사냥하던 호방한 고구려의 기상이 뭉개지고 있는 것이다.
장수왕릉은 광개토대왕릉에 비해 보존 상태가 더 양호했지만 돌무덤 한 쪽이 무너지고 있었다. 규모가 크면서 정확하게 재단한 직육면체 돌을 쌓고 옆에 자연 상태로 세운 거대한 돌이 있다. 광개토대왕비에서는 자연이 인공을 압도하지만 광개토대왕릉과 장수왕릉은 인공이 자연을 압도한다. 그럼에도 어느 곳에서나 거칠 것 없는 대륙적 기질의 고구려 사람들 기상이 넘친다.
광개토대왕릉에서 나오면서 바구니에 담긴 사과와 자두를 우리나라 돈 4000원에 샀다. 많은 양이었고 맛도 좋았다. 포도, 사과, 자두 밭이 많다. 장사하는 사람이 천원 권을 만원 권과 바꾸기를 원해서 3만원을 바꾸어 주었다. 같은 금액이지만 1000원 보다 10000원 50000원 권에 가치를 더 부여한다.
북한 만포시와 중국 집안시 사이로 흐르는 압록강을 만났다. 압록강 중류인데 물은 맑고 물살은 거칠 것 없이 빠르게 흘렀다. 50m 정도의 강폭은 물에 들어가면 금방 헤엄쳐서 건널 수 있을 만큼 가까웠다. 한국 국적을 가진 사람만 갈 수 없는 저 땅을 보며 우리가 가진 현실에 눈물겨웠다.
버스로 12시간을 이동하고 2시간 30분 동안 관광하였다. 중국에서 여행은 버스를 타고 다니는 것이 대부분의 일정이다. 오후 9시 30분 통화역 주변에 있는 숙소에 도착하였다. 숙소 주변은 성보건(性保健) 표지가 달린 홍등가가 많았다.
일행이 음식점에 모여 맥주와 고량주를 마셨다. 남자 8명이 닭고기 야채 볶음, 가지 버섯 고추 볶음, 탕수육, 감자 볶음, 돼지고기와 야채 볶음, 수타면 우동을 먹고 자정에 120위안을 계산했다. 먹은 양에 비해 너무 싼 가격에 다들 놀랐다. 중국은 이미 물가가 싼 관광지가 아니지만 아직도 이런 곳이 있다.
덧붙이는 글 | 오마이뉴스 블로그9http://blog.ohmynews.com/twocircle/)에도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