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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을 끝까지 밝히는 것이 남은 인생의 목표"

지난 7월 참여연대 공익제보신고센터는 '공익제보자 생계비 지원 사업(공생프로젝트)' 선정결과를 발표했다. 참여연대에서 이런 사업을 한다는 것도 몰랐지만, 선정 규모와 금액이 엄청나게 커서 놀라웠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있는 선정결과는 매달 일정 금액을 6개월 정도 지원해주는 것이었는데, 총 15인에게 1억4천7백만 원을 지원해주는 계획이었다. 과연 공익제보자가 무엇이길래 시민단체에서 이처럼 큰 금액을 마련해서 그들에게 마음을 쓰는 것일까, 그들은 누구일까 궁금해졌다.

공익 제보자란, 정부, 기업, 학교에서 벌어지는 부정부패를 알린 사람들을 말한다. 아직 많이 부족하지만, 그래도 우리 사회가 조금씩이나마 비리와 부패를 부조리를 막기 위한 제도를 마련하고 정비하게 된 데에는 그동안 많은 분들의 공익 제보가 큰 역할을 했다.

하지만 공익 제보자 10명 중 7명이 공익제보를 했다는 이유로 징계, 해고 등을 당해왔다고 한다. 여기에 조직을 배신한 사람으로 비난받고 경제적 정신적 고통까지 배가되어 이들이 겪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이 크다는 것이다.

참여연대의 '공생 프로젝트'는 "공익제보는 사회구성원 모두에게 혜택을 주지만 공익제보로 인한 불이익은 오로지 공익제보자 한 사람의 몫입니다. 이제 우리가 공익제보자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덜어주고 상처받은 마음을 어루만지려 합니다"라고 사업의 취지를 설명했다. 이 사업은 참여연대 및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인권의학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하며, 아름다운재단에서 사업비를 지원했다.

나는 과연 어떤 분들이 2016년 지금 공익 제보자로 선정되었을까. 15인 한분 한분의 사연과 그들의 현재가 궁금했다. 그러나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15인의 선정자는 성만 공개되고 나머지는 전혀 공개되어 있지 않았다.

그분들에 대한 정보보호 차원에서 이루어졌을 것이다. 참여연대 측에 취재의 취지를 설명하고, 상의 끝에 취재에 응해주신다는 한분의 연락처를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그분이 유영호씨이다.

감리단장으로 일하던 현장에서 부실공사 지적한 유영호씨

바닥 부분의 부실공사 흔적
 바닥 부분의 부실공사 흔적
ⓒ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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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실공사 현장의 보강공사 흔적
 부실공사 현장의 보강공사 흔적
ⓒ 허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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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영호씨는 이미 '인증된 공익 제보자'이다. 2011년 참여연대 제2회 '義人賞' 수상자로 선정된 바 있기 때문이다. 이번 공생프로젝트 대상자로도 선정된 그는 월 200만 원씩 6개월 동안 생계비를 지원받게 되었다. 그는 어떤 사연을 갖고 있을까. 궁금한 마음으로 그를 만나러 군산을 다녀왔다.

군산시 고속버스터미널 부근에서 만난 유영호씨는 터미널 바로 앞에 우뚝 서있는 현대메트로타워아파트로 나를 안내했다. 유영호씨는 2009년 이 아파트 건축현장에서 감리단장으로 일했다.

군산시의 한 시공사는 지상 33층 규모의 아파트 4개동, 614세대를 건축하는 공사를 착공하였고, 군산시는 유영호씨가 재직하던 건축사사무소를 감리자로 지정하였다. 유영호씨는 이 공사의 총괄 감리원으로 배치되었다.

그런데 이 공사 현장을 감리하는 과정에서 그는 시공사의 부실공사를 알게 되었다. 건물의 무게를 견딜 수 있도록 기초지반을 보강하기 위하여 기초지반에 항타할 말뚝(Pile)이 설계상 지지력을 만족시킬 수 있는지를 확인하는 시험(이를 '재하시험'이라고 한다)을 하는 과정에서 측정기록지의 최종 관입량이 0.9mm였음에도 시험결과 보고서의 최종 관입량은 2.0mm로 기록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는 이런 이유로 보고서를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추가 시험 결과마저도 최종 관입량이 1mm로 나오자 시공하기에는 힘들 것으로 판단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고 한다. 시공사는 공사의 문제점을 보완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공사를 중단에 이르게 했다는 이유로 군산시에 감리원을 교체해 줄 것을 요구했다.

그런데 군산시마저 이를 받아들여 유영호 씨에 대하여 교체명령을 내렸다. 게다가 한국건설감리협회,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유원건축, 현대주택건설, 전국의 시·군·구에 감리원 변경에 관한 통보를 했다.

이 교체명령에 의하여 유영호씨가 재직하던 건축사사무소에서는 유영호씨에 대하여 해고 통지를 하였고, 유영호씨는 해고될 것이 명백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이 사직서를 제출했다.

자신의 삶을 뒤바꾼 한 아파트, 그를 둘러싼 지난한 재판

그는 아직도 관련된 재판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는 군산시를 상대로 소송이 진행 중이다. 1심은 패소하였고, 2심에서는 일정금액 손해배상을 인정받는 일부승소 판결을 받았다. 2심 법원은 군산시의 감리원 교체 명령 및 이에 관한 감리원 교체 사실을 한국건설감리협회, 대한건축사협회, 한국건설기술인협회, 전국의 시·군·구에 통보한 것이 위법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런 교체 명령으로 인해 유영호씨가 감리원을 그만 두게 된 사실에 대해서는 인과관계가 없다며, 유영호씨의 해직으로 인한 소득 부분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영호씨는 대법원에 상고장을 제출하였고, 군산시는 국내 대형로펌을 대리인으로 선임하면서까지 이에 맞서고 있다.

그의 삶을 이렇게까지 완전히 바꿔놓은 '현장'을 둘러보았다. 그는 아파트 104동 지하주차장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부실공사의 흔적들을 보여주었다. 기둥들에 여기저기 보기 흉하게 페인트 칠한 자국들이 보강공사를 한 흔적들이라고 한다.

천장에 철판이 덧대어 있는 모습은 다른 아파트에서는 일반적으로 보기 힘든 것이었다. 바닥에 균열이 가있는 것은 작년 JTBC 기자들이 다녀간 이후 새로이 진행되기 시작한 것이라고 한다.

아파트 곳곳의 균열과 보강공사 흔적을 짚어주는 그의 모습을 보며 아파트의 안전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했기에 그는 자신의 삶을 이처럼 뒤흔드는 고통을 감수했을까. 유영호 씨의 마음이 궁금해졌다.

세월호도 개인이 자신에게 주어진 작은 책임을 소홀히 했기 때문이다

부실공사 현장을 둘러 본 뒤 그는 자신의 집으로 나를 안내하였다. 부인이 가사도우미를 하느라 집은 비워져 있었고, 손자의 장난감이 거실 여기저기에 놓여 있었다. 그가 주는 음료를 마시고, 컴퓨터가 있는 그의 방으로 갔다. 컴퓨터 앞에 놓여 있는 많은 자료들은 그가 싸워온 7년이라는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런 힘든 상황을 겪게 된 자신에 대해 후회하거나 힘에 부치지 않는가 물었다. 처음에는 가족이 말렸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재벌 로비로 감사원 감사가 중단된 사실 등을 제보하여 구속되었던 이문옥 전 감사관을 찾아가 자문을 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어디에서도 희망적이라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고 한다. 폭로하면 고통스러운 삶의 변화가 이어질 것이라는 점만 더욱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는 쉽게 포기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

그는 백화점과 다리가 붕괴되고, 세월호 참사와 같은 일들이 벌어지는 것도 모두 모두 자신과 같이 일상적 업무에서 작은 책임을 소홀히 했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의 폭로는 단순히 우려가 아니었음이 분명히 드러났다. 군산시의회 조사특별위원회 과정에서 현장의 부실공사가 확인되었고, 한국시설안전공단에서 C등급을 받았다. 그는 감리제도 개선의 필요성과 정경유착으로 인한 비리구조의 심각성을 언급하였다.

정당하게 의견을 제시하는 감리원이 자신과 같이 피해를 보아서는 안 되며, 오히려 이들을 보호할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하며, 토착 기득권 세력 간 돈이 오가는 풍토를 대한민국에서 뿌리 뽑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를 만나고 있는 내내 그의 표정은 당당했다. 그의 폭로와 해고 이후, 경제적 어려움은 물론 폭력배로 보이는 자로부터 협박까지 받았다. 그러나 그는 "감리원으로서 직장생활을 다시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진실을 찾기 위해서 계속 노력하겠다"고 강한 의지를 보여줬다.

그를 만나기 전 나는 그가 위축된 모습을 하고 있을 거라 상상했다. 그러나 그것은 나의 고정관념이었다. 힘든 생활 속에서도 당당할 수 있는 것은 그가 옳은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자신의 위치에서 성실하게 일을 수행하고, 그 과정에서 부조리와 비리가 있다면 이를 지적하고 개선을 촉구하는 것은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미덕이다. 그저 자신의 할 일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외롭고 힘든 고통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우리 사회의 '공익 제보자'의 문제는 반드시 재조명되어야 한다.

이들의 행위가 사회적으로 높이 평가받아야만 우리 사회 곳곳의 크고 작은 문제를 폭로하는 용기가 더 많아질 것이다. 그런 힘들이 모여 우리 사회가 더 건강하고 투명해질 수 있도록 '공익 제보자'에 대한 종합적 지원방안이 마련되길 기대해본다.



태그:#공익제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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