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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엔 영화 <서프러제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편집자말]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지난달 23일 개봉한 영화 <서프러제트> 포스터
ⓒ UPI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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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영국의 여성 참정권 운동 이야기를 그린 영화 <서프러제트>를 관람했다. 영화를 보고 나서 처음 든 생각은, '이 영화에 대한 글은 못 쓰겠다'였다. 할 말이 없으면서도 할 말이 많았기 때문이다.

짧게나마 남길 수 있던 말은 아래와 같았다.

"<서프러제트>를 보고 나서 '적어도 지금 나와 같은 여성이 거리에서 자유발언을 하고도 복부를 주먹으로 맞지 않고, 머리를 곤봉으로 맞아 피 흘리지 않고, 감옥에 잡혀가 비인간적인 대우를 받지도 않는 것은 모두 몇십 년 전부터 끈질기고 용감하게 싸워온 여성들 덕분이구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래서 지금은 만족하냐고 묻는다면, '전혀 아니다'라고 답하겠다. 예전보다 낫다는 것이 지금의 모든 것이 정당하다는 것은 아니다. 평등은 여전히 멀고도 가깝다."

강남역 살인 사건 이후로 많은 활동이 시작되었고, 나는 신촌에서 열렸던 자유발언에 참가했었다. 영화를 본 후, 그때 내가 그나마 '안전'할 수 있었던 것은 지난한 과거가, 투쟁의 역사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영화의 배경은 100여 년 전인 1912년 런던이었지만 나는 스크린 속에서 나를, 그리고 '우리'를 봤다. 50년간 평화로운 방법으로 조근조근 여성 투표권의 필요성을 이야기하다가 바뀌지 않는 현실에 지쳐 폭력을 택한 여성들.

그들에게서 나는 10년 넘게 사용된 '된장녀' 5년 넘게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하는 여성에게 붙여져 온 '김치녀'라는 딱지에 대해 '착하고 여성스럽게' 반대해오다가 아무도 들어주지 않는 현실에 지쳐 그런 단어들을 뒤집어 보여주는 '혐오의 전시'라는 방법을 택해야 했던 우리의 모습을 봤다.

낯설지 않은 20세기 영국, 그곳에서 우리를 본다

평범한 세탁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던 주인공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은 영화 시작부터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았다.
 평범한 세탁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던 주인공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은 영화 시작부터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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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세탁 공장 노동자로 살아가던 주인공 모드 와츠(캐리 멀리건)은 영화 시작부터 투철한 사명감을 가지고 행동하지 않았다. 서프러제트 단원들은 그에게 낯설게 다가왔고, 그들과 연루되는 것은 '평온'했던 삶을 뒤흔들 혼란으로 여겨졌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씩 서프러제트 단원들의 운동을 지켜보던 모드는 어느 순간 "이 삶을 다른 방식으로 사는 방법이 있지 않을까"라는 고민을 시작하게 된다.

나는 모드가 가졌던 두려움과 고민에서 작년의 나와 수많은 여성을 보았다. 여태 괜찮다고 스스로 위로해오던 자신을 깨부수고 "이것은 괜찮지 않다"고 말하기 시작하는 것은 모든 것을 뒤집을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나는 모드가 세탁 공장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서프러제트 단원인 바이올렛 케임브리지(앤 마리 더프)에게 "증언 들으러 갈게요"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일인지 느낄 수 있었다.

영화 속에서 서프러제트 단원들은 "법을 준수하라"는 경찰의 말에 "법을 존중하길 바란다면 존중할 수 있는 법을 만들어라"라고 고한다. 내가 말하고 싶었던 것이다.

"여성들이 사회의 룰을 따르길 원한다면 대화가 통하는, 혐오가 주언어가 아닌 사회를 만들어라."

온순하게 말할 때는 아무도 관심 하나 가져주지 않았는데, '폭력의 전시'를 택하니 이제는 "방식이 너무 폭력적이라 들어줄 수 없다"고 말한다. 나는 과연 우리에게, 여성들에게 처음부터 선택권이란 것이 존재하긴 했었는지 묻고 싶다. 우리 사회는 결국 20세기 초 영국과 다를 바 없는, 여전히 투쟁의 언어만이 통하는 사회였던 것이다.

주인공인 모드의 남편인 소니 와츠(벤 위쇼)는 모드가 서프러제트가 되었다는 이유로 그를 집 밖으로 내쫓은 후 그들의 아들을 입양 보내기로 한다. 이 과정에서 우리는 그 시절 여성에겐 자신이 낳은 아이의 양육권조차 보장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비록 현재는 그 시절과는 다르다 하더라도, 나는 소니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에 뿌리 깊게 박혀 있는 '모성애 신화'를 볼 수 있었다. 모드도 소니과 똑같이 밖에서 노동을 했지만 양육의 의무는 모드에게만 지워졌다. '아이를 키울 수 있는 능력'이란 것은 남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다고 여겨지던 능력이었고, 그렇기에 소니는 아내가 집을 떠난 이상 아이는 다른 여성이 존재하는 가정으로 입양 보내져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지금은 그런 일이 없다" 과연 그럴까

영화 <서프러제트>에 나오는 대사. "노예가 되느니 반역자가 되겠다"는 뜻.
 영화 <서프러제트>에 나오는 대사. "노예가 되느니 반역자가 되겠다"는 뜻.
ⓒ 이갈리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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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반부, 더비 경마대회가 열리는 경마장에서 여성들의 투쟁을 전세계에 알리고자 국왕의 말 앞으로 뛰어들어 목숨을 잃은 서프러제트 에밀리 와일딩 데이비슨을 보았다. 누군가는 "한국은 그래도 저런 일은 없지 않냐"고 할 것이다.

과연 그럴까? 물론 지금은 여성들이 페미니즘이라는 이름 아래 목숨을 내던져야 하지 않을 수 있다. 나 스스로 에밀리의 심정을 온전히 이해한다고 하기도 힘들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일전에 온라인에서 "공중 화장실 사용할 때 몰래카메라가 있지는 않을까 걱정된다"고 말하는 등 페미니즘에 대한 글을 쓰다가 신상이 털린 적이 있었고, 한 남성은 내게 "네가 대표로 자살하면 여성 인권에 대한 관심이 높아질 거다"라고 말했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제 더는 여성들이 목숨을 내던져야만 귀를 기울여주는 사회에서 살고 싶지 않다. 수많은 희생을 대가로 쌓아올린 것들이 존재하는 지금은 그래서는 안 된다고 믿는다. 그렇기에 나는, 그리고 우리는 목숨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버티고 투쟁할 것이다.

지금도 싸우는 여자가 이길까? 그 답은 누구도 알지 못한다. 도대체 언제까지 "여성도 동등한 권리를 누려야 한다"는 말을 반복해야 하는 건지 그 끝을 볼 수 없기에 매 순간이 무겁고 막막하다. 하지만 애초에 내게 선택권이란 없었다. 그렇기에 나는 오늘도, 그리고 앞으로도 싸울 것이다.

"자취하는 여자가 인기가 그렇게 좋다던데"라고 초면에 '농담'을 던지는 남성들과, "여성들이 억압받아온 것은 알지만 '남성혐오'에는 동의할 수 없다"는 지인과, "너는 못 생겨서 화장실 몰카에도 찍히지 않을 테니 걱정하지 말라"는 익명의 악플러들과, 살해당한 여성들을 '가방녀' '트렁크녀'로 소비하는 언론과, "몸 파는 게 직업인 업소녀가 강간당했을 리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과 싸울 것이다.


태그:#서프러제트, #페미니즘, #싸우는여자가이긴다, #여성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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