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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부터 올해 초까지 끔찍한 아동학대 사건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아동학대 예방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정부도 서둘러 지난 2월 25일 대책을 발표했고,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관계기관 대책회의를 통해 예방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당국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했다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그러나 정부의 대책은 '학대 발견과 사후 대응'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안의 심각성과 사회적 충격을 감안하면 현황파악이 우선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이해할 수 있지만 근본적인 예방대책에는 한계가 있다. 아동학대를 '예방-조기발견-신고'가 어려운 사회∙문화적 배경을 들여다봐야 하고, 아동 스스로 자기를 방어할 수 있는 힘을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대책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아동학대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동학대는 특정인에 의한 예외적 범죄라는 인식, 아동학대는 가정에서만 일어나고 가해자는 계부나 계모라는 인식, 아동학대의 원인을 가정의 경제적 몰락에서만 찾는 경향, 학대여부를 폭력의 강도(세기)를 기준으로 판단하는 경향 등이 주요한 편견이다.

근본적으로는 학대를 포함한 정서적 폭력에 관대한 사회문화적 요인을 제거해야 한다. 물리적 폭력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지닌 사람도 정서적 폭력이나 구조적 폭력에는 매우 관대한 편이다. 아동학대의 원인은 복합적이다. 이 복합적인 원인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뒷받침되어야 아동학대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다.

피해 아동에 대한 보호, 치료, 재학대를 예방하기 위한 보호시설의 확충 등 아동보호 인프라를 확충하는 일도 중요하다. 그러나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아동과 청소년을 대하는 우리의 인식부터 변해야 한다. 아동과 청소년은 단지 훈육과 보호의 대상이 아닌 엄연한 인격체로 보는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아동과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인식하는 순간 그들의 사회적 지위는 상승하고, 아동학대를 보는 올바른 사회적 관점이 확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동과 청소년 스스로 폭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고 저항할 수 있는 대응력을 향상시켜야 한다. 이런 점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가치는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이다. 인권감수성이 풍부한 사람은 공감능력이 뛰어나고 불의에 저항할 수 있는 힘이 내면에 자리잡게 된다. 이 정의감은 강자의 폭력에 이의를 제기하며 소수자나 약자를 향해 연대의 손길을 내미는 실천으로 귀결되는 순기능을 하게 된다.

아동과 청소년의 인권에 매우 인색한 게 우리의 현실이다. '인권담론' 자체를 불편해 하는 사회 분위기도 넘어야 할 산이다. 인권을 경원시하기도 하고, 심한 경우 인권 자체를 불온시하는 경우도 자주 경험한다. 가정,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그리고 학교 등 아동과 청소년이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에서 그들을 인격체로 존중하는 문화가 정착되어야 한다. 실제로 인권친화적인 학교일수록 학교폭력이 현저히 줄어든 사례를 우리는 이미 경험하지 않았는가.

자녀를 자신의 소유물로 인식하는 부모, 학생을 지도와 단속의 대상으로만 보는 학교. 어른들의 이 못된 욕망이 사라질 때 아동의 안전과 행복은 비로소 가능하다.

덧붙이는 글 | 아동학대 업무를 수행하면서 느낀 생각을 정리해서 칼럼을 썼습니다



태그:#아동학대, #인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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