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캘리포니아 주 어바인에 위치한 플라자 비스타 학교의 전경이다.
▲ 사건이 있었던 플라자 비스타 학교의 전경이다.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에 위치한 플라자 비스타 학교의 전경이다.
ⓒ 김윤희 (Yun Hui 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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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나의 눈과 귀를 의심하게 만드는 심장 떨리는 뉴스를 접했다. 2011년에 진행된 학부모의 민사 소송이 형사 사건으로 비화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그 사건이 벌어진 곳이 현재 내 아이가 다니고 있는 캘리포니아 주 어바인 (Irvine, California)에 있는 플라자 비스타(Plaza Vista School) 학교에서 벌어진 일이라 떨리는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사건의 내용을 요약하면 이렇다:

'느리게' 라는 말이 가져온 참극

2010년 2월 17일, 세 자녀의 엄마인 질 이스터(Jill Easter)는 방과 후 특별활동(테니스)이 끝난 막내를 데리러 학교로 차를 몰았다. 그런데 그날따라 아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마침 학생들의 하교를 돕고 있었던 자원봉사자, 켈리 피터스(Kelli Peters)가 그녀의 이야기를 듣고 아이를 찾아 학교 구석구석을 살폈다. 알고 보니 대열에서 잠깐 떨어져서 걷던 아이가 문이 잠기는 바람에 (학교 문은 자동으로 잠긴다) 건물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모양이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릴 새도 없이 질은 필요 이상으로 흥분하기 시작했고 자초지종을 설명하던 켈리는 아이가 걸음이 느려서(slow) 대열에서 이탈된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런데 여기서 문제가 터졌다. 그녀가 무심코 던진 'slow'이라는 단어 때문에 엄청난 사건이 벌어졌다. 도대체 무엇 때문에, 어떤 일이 생겼을까?

만약 누군가 당신의 아이가 "느리다"라는 말을 한다면 어떻게 반응하겠는가? 1) 자존심을 건드린 상대와 제대로 한 판 붙는다, 2) 교장을 만나 이 일을 상의한다, 3) 학부모 회의에 안건으로 상정해서 그 사람의 자녀가 학교에 다닐 수 없게 만든다, 4) 다른 학부모와 연합해 상대를 왕따시킨다, 5) 고소한다, 6)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복수한다. 당신의 선택은 무엇인가? 질은 1~6을 모두 실행했다.

변호사이자 작가였던 질은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조치를 취했다. 아니, 하지 말아야 할 짓까지 하고 말았다. 이런 일이 소송감이 되지 못한다는 것은 변호사가 아닌 사람도 충분히 알 수 있다. 법정에서도 같은 판단을 내리자, 그녀는 켈리를 마약 범죄자로 둔갑시킬 방법을 찾는다. 켈리의 자동차 안에 몰래 대마초와 마약을 숨겨놓고 경찰에 신고해버린다. 경찰은 수사에 착수했고, 켈리는 영락없이 감옥에 갈 처지에 놓였다. 다행히 마약 신고 전화를 수상히 여긴 경찰이 추가 수사를 통해 이 모든 것이 질과 그녀의 남편인 켄트 이스터(Kent Easter)가 꾸민 음모임을 밝혀냈다.

질과 켄트 부부는 둘 다 변호사였다. 명망 높은 집안에서 태어나고 자라 오렌지카운티에서 변호사 활동을 하며 모든 이의 부러움을 사던 그들이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된 것일까? 이 사건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는 뭘까? 단순히 미친놈들이라고 욕하면서 침 뱉고 지나칠 수 없는 일이다. 왜냐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자식의 일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드는 오늘날 우리들의 자화상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양육에 대해 '느리고' '깊게' 생각하자

질은 '느리게'라는 단어가 아이의 성장·발달이 더디다는 것으로 오해했다. 오해할 수도 있고 기분이 나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남의 인생을 처참히 짓밟을 만큼의 분노일 필요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 된다. 비단 질뿐만 아니라 오늘날 대부분의 부모가 자녀에 대한 타인의 평가나 판단에 격한 반응을 보인다. 이는 자녀의 성공을 부모의 자존감과 연결하기 때문이리라. 물론 자녀가 뛰어난 역량을 발휘하면 한없이 기쁘고, 그들의 실패를 지켜보며 씁쓸함을 삼키는 것이 부모의 마음이다. 그러나 자녀의 성취나 실패가 부모의 자존감의 원천이 되어선 안 된다. 

이 사건은 단순히 한 개인의 일탈 행위가 아닌 우리 사회에 만연해 있는 "과잉 양육(Over-parenting)"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가 싶다. 자녀의 성공을 위해 비이성적 집착을 보이는 행태를 가리켜 과잉 양육이라 부르는데, 이들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작품 혹은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이루어 줄 존재로 여긴다. 그래서 어떤 실수나 시행착오도 용납하지 않는다. 자녀 앞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생기면 가용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자녀가 쌩쌩 달릴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 부모의 역할이라고 믿는다. "느리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부모는 물건을 생산해내는 공장처럼 변했다. 겉으로 보기에 아무 문제 없는 아이들로 치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지만, 그들과 인격적 교감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와 함께 공놀이를 하는 것보다 유명 사립 유치원에 보내는 것에 더 큰 보람을 느끼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 무한 경쟁의 시대가 아니냐고 한탄하면서 말이다. 시쳇말로 비겁한 변명이다.

자녀는 세상에 내놓을 상품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하나의 인격체다. 양육은 부모가 원하는 사람이 되도록 자녀를 조형하는 것이 아니라, 자녀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도록 도와주는 일이다. 간섭이 아니라 관심을 가지는 것이고, 부모의 가치관을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상호 소통함으로써 인격적 관계를 형성해 가는 것이다. 

질과 켄트의 세 자녀를 생각하면 가슴이 아프다. 아이들에게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과잉 양육 부모를 만나 사람들의 손가락질을 받으며 평생 마음의 짐을 지고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생각해서라도 '느리고',' 깊게' 양육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야 할 것 같다. 



태그:#유학, #교육, #어바인, #헬리콥터맘, #과잉양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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