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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월, 미국 브리검 여성병원과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공동 연구팀은 '만능줄기세포(STAP stem cell)' 수립에 대한 두 편의 논문을 <네이처>지에 게재했다. 이 논문은 오보카타 하루코가 제1 저자이고 미국의 찰스 바칸티 박사가 교신 저자(책임 저자)였다.

'만능 줄기세포'란 블랙 커피 정도의 약산성을 띄는 용액에 체조직을 30분 정도 처리하거나 물리적으로 조직 해체하는 방식의 스트레스성 외부 자극으로 유도된 줄기 세포의 성질을 가지되 보다 더 우수한 분화 능력을 지닌, '만능 분화능력'이 있다고 알려진 세포다. 기존의 줄기세포 유도 방식, 예를 들면 노벨상 수상자인 일본의 신야 야마나카의 4가지 팩터를 이용한 유도 줄기세포에 비해 방법이 훨씬 간단하고 절차가 수월하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논문의 신뢰성에 관해 의문이 제기됐고 발표된 데이터가 이렇다 할 재현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왔다. 홍콩의 한 그룹이 논문의 초기 데이터를 부분적으로 재현했다는 소식만이 떠돌았다.

'만능줄기세포 논문 조작 의혹' 오보카타 눈물의 기자회견

<네이처> 게재 후, 3주가 지나지 않아 애초의 찬사와 달리 실험 후 젤을 부적절하게 오려 붙인 흔적, 학위 논문의 엉뚱한 그림을 가져다 쓴 것 등이 차례로 발각됐다. 황우석의 논문 조작과 유사한 패턴의 사기 의혹이 불거진 것이다.

이에 이화학연구소는 즉각 내부 조사를 실시, 지난 3월 14일 논문의 신뢰성이 떨어지니 <네이처> 논문 게재를 스스로 철회해야 한다고 결론 지었다. 그러나, 제 1 저자인 오보카타와 교신 저자인 미국의 바칸티 박사는 만능 줄기세포는 존재하며 결론은 틀림없으니 철회는 안 된다고 버텼다.

'오보카타 하루코'로 알려진 30세 신참 연구원이 획기적인 연구를 주도해서 찬사를 받았다. 하지만 이화학연구소의 조사 결과, 본인의 박사 학위 논문을 짜깁기-무단복제하고 자신의 학위 논문사진을 <네이처> 논문에 쓴 사실도 밝혀졌다.

만능줄기세포에 대한 <네이처> 논문 공저자 중 한 명인 오보카타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만능줄기세포는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만능줄기세포에 대한 <네이처> 논문 공저자 중 한 명인 오보카타가 지난 9일 기자회견을 열고 "만능줄기세포는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 연합뉴스-EP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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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오보카타 하루코는 지난 9일 두 시간 넘게 일본에서 기자화견을 열었다. 여기에는 4명의 변호사가 대동했다. 아래는 회견 전 오보카타의 변호사를 통해 배포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이화학연구소(Riken)와 공저자 분들께 송구스럽다. 불찰로 의혹을 야기한 점, 사과드린다."

"나름 최선을 다해 데이터를 만들고 논문을 썼지만, 기본 문체와 생물계통 논문 표기방식에 대해 경험이 일천했다. 지식이 모자라 이런 일이 생겼다. 결과적으로 많은 문제가 표출되었다. 그러나, STAP(외부 자극에 의한 세포의 만능성 획득) 현상은 실존하며 앞으로 사람들 돕는 데 쓰일 것이라는 믿음으로 연구에 정진했다."

"다른 연구자들 입장에서 제 실수를 용납할 수 없다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실수가 있다고 논문 결론이 뒤바뀌는 것은 아니다. 실험은 기술한 대로 정확히 수행되었다. 데이터는 있다. 실수가 있었지만, 악의적 조작은 없었다."

"소속 일본 이화학연구소(Riken) 내부 조사 결과는 사실을 충분히 이해하지 않은 채 조작이 있었다고 매듭지었다. 저에게 소명 기회를 주시면 왜, 어떻게 실수가 생겼는지 설명드릴 수 있다."

"STAP 현상을 여러 번 반복해 스스로 재현했다. STAP 현상을 발견했다는 사명감으로 계속 관찰했다. 논문에 나타난 실수를 가지고 STAP 현상의 존재를 부인하지 않았으면 한다. 후속 연구는 지속되어야 한다."

오보카타의 변호사는 그가 정신적·육체적으로 약해져 회견장 옆 방에 의료진이 대기 중이며, 무리가 된다고 판단되면 기자회견을 중단하겠다고 밝혔다. 변호사는 오보카타가 "육체적·정신적으로 불안한 상태"로 지난 7일 입원했다가 지금 회견을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오보카타 "만능줄기세포, 200번 넘게 재현했다" 주장

변호사들은 기자회견장에서 이화학연구소 내부 조사 결과 발표에 사용된 용어들이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예를 들면, 데이터를 '조작(fabrication)'했다고 했는데 '선의의 실수 (honest error)'다. 의도적인 것이 아니고 우연한 오류라는 것이다. 학위 논문의 그림 도용에 관해서도, 박사 논문 그림을 그대로 가져다 쓴 것이 아니고 랩 미팅 중 사용했던 파워포인트 발표 그림을 무의식 중에 사용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연구 부정행위(misconduct)와 표현상의 부적절함(inappropriate expression)은 완전히 다른 문제이다" - 변호사

오보카타는 자신이 좀 더 주의 깊었다면 실수가 없었을 것이라며 (본인 학위 논문이 아니고 랩 미팅 용) "파워포인트 발표 내용에 포함된 그림을 <네이처> 논문에 사용해 송구스럽다"고 사과했다. 의도적 조작이 아니더라도, 상관 없는 그림이 <네이처> 논문에 쓰인 것 그 자체로 문제 아니냐는 기자 질문에는 "지식이 모자라 불찰로 저지른 제 실수에 대해 마음 깊이 사죄드린다"고 답변했다.

하지만 오보카타는 STAP 세포는 분명 존재한다고 주장했다. 자신이 STAP 세포를 200번 넘게 자체 재현했다는 것이다. 그는 "STAP 세포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 궁금하면 어디서든 직접 시현해 드리겠다"고 밝혔다. 3년간 연구를 기록한 2개의 실험 노트에 관해서도, 이화학연구소에 제출한 것이 2권일 뿐 더 많은 실험 노트가 있다고 주장했다. 재현성에 관해서는 거듭 "<네이처> 논문은 새로운 현상의 발견에 관해 기술한 것이지 그 현상들을 재현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명시한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한 번 더 기회가 주어진다면, STAP 기술을 바탕으로 이웃을 위해 도움이 될 무언가를 개발하는데 일조하고 싶다. (중략) 논문의 결론이 올곧은 한, 철회하지 않고 세상에 결과를 공표해 두는 것이 옳다고 본다."

이날 기자회견에서 오보카타는 논문을 철회하라는 이화학연구소의 제안을 거부했다. 그리고 제3자가 실험을 진행하면 결과가 그대로 재현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논문의 공저자로 줄기세포 분야에서 존경받는 와카야마 박사는 <월스트리트 저널>에 "우선 지금 할 일은 논문부터 철회하는 것이다. 1월에 게재된 <네이처> 논문은 엉터리라 신뢰성을 상실했다"며 "철회하고 재현되는지부터 확인"하는 것이 순리라고 지적한 바 있다.

찰스 바칸티는 미국인 마취과 의사로 논란이 된 <네이처> 논문의 최고 책임자로 교신 저자이다. 바칸티는 논문에 포함된 실수가 결론에 영향을 끼치지 않으므로 논문 철회는 없다고 선을 그었다.

바칸티는 공학자들과 조직공학(tissue engineering)이라는 분야를 개척하며 알려졌지만 줄기 세포 분야에서 인정 받던 연구자는 아니었다. 이번 두 편의 <네이처> 논문 결과가 워낙 획기적이고 간단한 방법이라 주목을 받았다. 바칸티 같은 중견 연구자가 과욕으로 무리수를 둔 것인지, 의도하지 않은 중대한 실수인지는 차차 밝혀질 것으로 보인다.

이제 오보카타와 바칸티의 논문은 <네이처> 편집장 권한으로 게재 취소될지 아니면 두 저자가 철회없이 계속 버틸지 하는 운명을 앞두고 있다.

문제는 이같은 오보카타와 바칸티의 논문이 제3의 연구자에 의해 재현될 경우다. 그렇게 되면 문제의 <네이처> 논문이 또 다른 연구자금을 획득하거나 특허 같은 이익관계를 도모하는 데 악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일본 합작판 '황우석 사태', 논문 철회될까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황우석 박사가 지난 2009년 10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정부지원 연구비 횡령과 난자를 불법으로 매매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은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불구속 기소된 황우석 박사가 지난 2009년 10월 26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 공판에서 정부지원 연구비 횡령과 난자를 불법으로 매매한 혐의에 대해 유죄가 인정돼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 받은 후 기자들의 질문을 받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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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젊은 생명공학인들의 인터넷 사이트인 브릭(bric.postech.ac.kr)은 이번 논란이 황우석 사태와 유사한 점이 있다는 게 중평이다.

<네이처> 논문 발표 당시, 언론에 적극 홍보하지 않았다면 이같은 조작과 의혹은 불거지지 않았을 수 있다. 하지만 일본과 미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있었던 주저자 두 명의 언론활동 덕분에 사태가 커진 것이다.

하지만 황우석 사태의 경우, 서울대 조사위원회를 통한 사후 대책이 지난하지만 비교적 꼼꼼히 이루어졌다. 바칸티와 오보카타의 줄기세포 논문 조작의 경우, 주저자들이 자진 철회를 거부하고 있는 중으로 오히려 잊혀질 만하면 이익 추구에 해당 논문을 활용할 것이라는 우려도 있다.

유사한 논문 조작이긴 하지만 처리과정에서 차이가 날 수도 있다는 지적도 있다. 황우석 사태 때는 논문 철회까지 갔지만 미일 양국에서 일어난 이번 사건의 경우 흐지부지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있다.

특히 혹자는 논문의 다른 공저자인 니와 박사가 "지난 7일 이화학연구소 내부적으로 향후 1년간 오보카타 개입 없이 독립된 재현 실험을 추진하여 STAP기술이 실제 유효하며 줄기세포 유도가 가능한지 재확인하겠다"고 밝힌 것에 주목하기도 했다.

논문의 동료 심사(peer review)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일어날 수 없는 일이 반복된다는 지적과 함께 의혹 해명과 연구 전반에 관해 실망스럽다는 입장이 지배적이다.


태그:#STAP, #만능줄기세포, #오보카타, #찰스 바칸티, #논문 조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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