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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전 세계의 이목이 우리를 주시하는 가운데 40년 독재 정치를 청산하고 희망찬 민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보를 전 국민과 함께 내딛는다."

1987년 6월 10일, 전국 22개 도시에서 열린 '박종철군 고문 살인 은폐 조작 및 민주 헌법 쟁취 범국민대회'의 선언문이다. 그로부터 26년 후, 2013년의 끝자락이 대자보로 도배되고 있다. 대학생에서부터 중학생까지 너도나도 큰 도화지 위에 굵은 매직으로 한국 정치에 대해 높은 소리를 내고 있다. 2000년대 이후 거의 사라진 줄만 알았던 이른바 '운동권'이 부활한 것일까?

80년대 대학생을 중심으로 형성된 운동권은 반정권 시위를 벌이며 민주화 운동을 주도했다. 6월 민주항쟁 때에는 넥타이를 맨 직장인들과 일반 시민들과 함께 전두환 정권의 독재를 타도하고 헌법 개정을 요구했다. 그러나 87년 이후 운동의 구심점이 사라지자, 투쟁의 대상에 대한 논쟁과 함께 분열된 운동권은 김대중 정부를 지나면서 보수적 학생운동을 주도하는 비운동권과 반운동권에 밀려 그 입지가 좁아졌다.

한국 사회에 민주주의 시대가 열리자 정치 참여가 더는 대학생이 아니라, 직업 정치인의 몫이 되었다. 독재 정권에서는 꾸릴 가정도, 지켜야 할 직장도 없는 대학생이 거리에 나설 수 있었다. 하지만, 민주주의 시대에서는 누구라도 자신의 소신을 밝히고 정의를 외칠 수 있었기 때문에 대학생들의 발길은 거리가 아니라 도서관과 고시원을 향했고 아르바이트와 스펙 쌓기에 여념이 없었다. 그랬던 대학생들이 이제 와 갑자기 대자보를 붙이고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제 공부는 할 만큼 했고, 각자 먹고 살 길도 찾아서일까?

국정원 불법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불분명한 태도를 일관하는 박근혜 대통령, 그리고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불신, 여기에 코레일이 '파업 참가자 전원 직위해제'라는 무리수가 더해지니 "내가 아니어도 누군가 나서겠지"라던 대학생들이 26년 전 그들처럼 "이제는 내가 나서지 않으면 안 된다"라며 고개를 든 것이다. 이들은 한국 민주주의의 위기를 느끼고 있다. 젊은 목소리가 나타난 것이 모두에게 신선한 즐거움일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이것이 우리 사회의 깊은 그림자를 반증하는 것이다.

대개 정치판을 보며 "정치가 개판이니까 참여하기 싫다", 또는 "참여를 안 하니까 정치가 개판이다"라며 닭과 달걀의 선후 관계에 사로잡혀 있곤 한다. 그러나 현대의 정치제도는 선을 실현하는 것이 아니라 악을 저지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참여를 통한 기본적인 권리의 보장만이 악을 저지할 수 있다. 희망찬 민주 국가를 건설하기 위한 거보는 27년째 계속되고 있다.


태그:#대자보, #대학생, #코레일, #파업,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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