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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책을 사서 읽게 된 이유는 단순하다.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고 하니, 어떻게 하면 다가올 경제 위기 속에서 우리 가족을 건사할 수 있을까 하는 불안하고 초조한 마음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내가 이런 불안한 생각을 하는 데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1997년 말 나는 대학교 4학년이었고 IMF 외환위기를 온몸으로 체험하였다. 시간이 흘러 현재 내 나이 마흔. 청년실업 1세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2012년 현재. 달라진 것은 거의 없다. 아니 그때보다 상황은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

평범한 공무원이셨던 아버지는 소박하고 우직한 분이셨다. 하지만 내가 대학에 진학한 이듬해 청천벽력과도 같은 비보가 날아들었다. 아버지에게 위암 말기라는 진단이 떨어진 것이다. 휴직 상태에서 아버지는 병마와 씨름하느라 안간힘을 쓰셨고 그런 아버지 곁에서 어머니는 간병을 하며 갖은 고생을 다 하셨다. 그러는 과정에서 가세는 점점 기울어갔다. 나는 등록금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어 휴학을 했고 온갖 아르바이트를 전전했다.

아버지의 투혼과 어머니의 정성으로 채 1년을 넘기지 못할 거라는 아버지의 병세가 호전되기 시작했다. 우리 가족은 다시 안정을 되찾는 듯했다. 그리고 당시 문민정부의 세계화 열풍 속에서 아버지는 남들처럼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막연한 추측이지만 평범한 소시민들이 주식에 손을 대기 시작한 때가 아마도 그때부터가 아닐까 한다. 그러던 1997년 말, 그야말로 "어느 날 갑자기" 외환위기가 터졌다. 아버지를 무너뜨린 건 암세포일까 아니면 거품 붕괴라는 대량살상무기일까?

그때부터 아버지는 다시 과묵해지셨다. 자식들 걱정할까봐, 간병에 지치신 어머니께서 충격을 받으실까봐 아마도 아버지는 무거운 침묵을 택하신 것이리라. 주가 폭락에 의해 퇴직금이 휴지조각이 된 상황을 차마 어떻게 말할 수 있었으랴. 그 무거운 침묵 끝에 아버지는 결국 고인이 되셨다. 그 후 어머니는 오래된 집을 처분하였고, 빚잔치 속에서 남은 잔금으로 가까스로 소형 아파트 전세를 얻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머니는 그때부터 힘든 간병인 일을 다시 시작하셨다. 비정규직으로.

위 이야기는 어쩌면 IMF 금융위기로 인해 한 중산층 가정이 어떻게 고통을 겪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가 될 수도 있겠다. 우리 집은 전세금이라도 건질 수 있어서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일 것이다. 당시 얼마나 많은 가정이 고통을 겪었을지를 생각하면 사회안전망이 미흡한 현재 상황에서 다가올 한국의 빚 붕괴 과정은 감히 그 고통을 상상하기 힘들다. 도대체 왜 반복되는 위험 속에서 우리는 살아가야 하는 것일까?

앞 수레가 벼랑에서 추락하면 뒤따라가던 수레는 멈춰야 한다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 표지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 표지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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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휴대폰 번호를 어떻게 알았는지 하루 걸러 한 번씩 돈 빌려 가라는 대출 상담 전화가 온다. 그 상담사들도 힘들게 먹고사는 임시 계약직이라 하니 귀찮다고 함부로 전화기를 끄기가 쉽지는 않다. 누군가는 돈이 남아돌고 누군가는 돈이 필요하니 어쩌다가 대출거래가 성사되기도 할 것이다. 그렇게 돈과 빚이 동시에 만들어진다.

흔히 돈을 자본주의의 혈맥이라고 한다. 따라서 돈줄이 막히면 실물 자본주의 경제는 혈액순환이 제대로 되지 않아 동맥경화증에 걸릴 것이라 말한다. 돈이 돌아야 시스템이 돌아가기 때문이다. 하지만 돈은 빚에서 나온다. 빚을 져야 겨우 숨통이 트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빚 때문에 숨통이 막히는 사람, 급기야 목숨줄을 끊는 사람도 있다. 빚에서 돈이 나오지 않는다면 이 모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결국 당신 지갑 속의 돈은 누군가의 빚인 것이다.

이자율이 낮다는 것은 돈값이 싸다는 것을 의미한다. 돈값이 싸니 주가와 부동산이 대세 상승할 거라 기대하면서 누구는 주식 투자를 했고 누구는 부동산 투자를 했다. 빚을 져서라도 부동산을 구매하지 않으면 영영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루지 못할 것 같다는 불안감 속에서, 이참에 별장을 마련하자는 부푼 기대감 속에서, 자신도 수많은 성공신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섣부른 환상 속에서 많은 이들이 기꺼이 대출을 감행하였다.

물론 물가상승률과 대출이자를 넘어서는 부동산값과 주가의 대세 상승이라는 전제에서 말이다. 1990년대 일본이 그랬고, 2008년 미국이 그랬다. 보수주의 정부들이 감행한 감세정책은 부자들의 단기성 투기자본 마련에 일조하였고 금융 규제 완화, 공기업의 민영화를 기치로 한 탐욕적 투기 자본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빚으로 거품의 크기를 점점 키워갔다. 하지만 빚으로 쌓은 모래성은 어느 순간 무너지게 마련이고, 결국 이 거품이 꺼지면서 발생한 금융 위기로 아일랜드, 아이슬란드, 그리스, 스페인이 모두 빚더미에 앉게 된 것이다.

문제는 전 세계가 신자유주의에 대한 반성과 성찰 속에서 주류 경제학인 신고전학파를 비판하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할 때, 이명박 정부는  벼랑 끝으로 떨어지는 국가들을 보고 타산지석으로 삼기는커녕 감세와 규제 완화, 공기업의 민영화 등 실패한 정책마저 추종하는 어리석음을 보였다.

앞 수레가 벼랑에서 추락하면 뒤따라가던 수레는 멈춰야 한다. 하지만 앞 수레가 벼랑에서 떨어지고 그 추락의 결과가 중산층의 붕괴와 사회경제적 양극화라는 것을 목격하면서도 계속 벼랑 끝으로 달려가서 얻은 것은 결국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라는 불명예뿐이다.

내수 버리고 재벌 위주 수출 정책 취한 이명박 정부

수출 지상주의적인 외화 획득 경제 구조는 항상 올바른 것일까? 한국의 경제 구조가 수출 의존도가 높다는 것을 우리는 학교, 언론 등을 통해 귀가 따갑도록 들어왔다. 대기업의 수출길이 막히면 국가 경제가 붕괴될 수도 있다는 막연한 불안과 공포 속에서 말이다. 하지만 수출 의존도가 높으면 글로벌 금융 위기에 매우 취약할 수도 있다는 것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이명박 정부의 경제 정책에 대해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의 저자 박종훈(KBS 경제전문기자)은 다음과 같이 평가하고 있다.

사실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은 16세기부터 18세기까지 유럽 국가들이 경쟁적으로 추진했던 중상주의 정책과 닮았다. 중상주의 시대, 유럽 국가들의 가장 중요한 목적은 당시 화폐 역할을 했던 금과 은을 더 많이 축적하는 데 있었다. 따라서 당시 유럽 국가들은 최대한 수입을 억제하고 수출을 많이 하는 등 더 많은 금화를 벌어오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줄임) 재벌에 대한 정책 또한 중상주의 시대의 정책과 유사한 측면이 있다. (줄임) 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당시 중상주의에 따른 정경유착을 강도 높게 비판했다. (줄임) 즉, 강자를 보호하고 약자를 탄압하는 당시 중상주의 정책 기조에 반발해 정부가 강자만 보호하려면 차라리 시장에 맡기라고 비판한 것이다.(153-154쪽)

수출을 통해 외화를 더 많이 쌓았다고 국력이 더 커지는 것인가. 반드시 그렇지만은 않을 수도 있다. 나라 전체적으로 생산과 소비, 투자가 함께 늘어나야 한다. 그렇지 않고 단순히 돈을 쌓아둔다고 해서 부가 증대된다고 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는 마치 고환율 정책으로 이득을 본 재벌들이 현금성 자산을 쌓아놓고 투자에는 인색한 우리의 현실과 유사하다. 국민소득이 2만 달러를 회복했는데도 중산층의 삶은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언제까지 '선성장 후분배'라는 구호를 외칠 것인가.

이제는 수출만 잘 되면 경제가 성장하여 고용을 창출하고 이에 따라 소비도 증대될 것이라는 안일한 수출 지상주의적 정책에 대한 성찰이 필요할 때가 되었다. 그리고 '하우스푸어', '렌트푸어'로 중산층의 소비가 침체된 상황에서 어떻게 하면 내수를 늘릴 것인가를 보다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 위기가 곧 기회이고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가장 빠를 때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복지국가의 상징 스웨덴은 한국보다 두터운 중산층을 갖고 있다. 하지만 세전 소득만 놓고 보면 스웨덴은 멕시코만큼이나 부의 편중이 심한 나라라고 저자는 분석한다. OECD 자료를 기초로 저자가 분석한 자료를 보자


2000년 후반 북유럽 복지국가들은 조세와 사회보장제도를 통한 이전지출로 불평등도가 약 64-67% 정도 감소되었다. 반면 한국의 불평등 감소율은 고작 9%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한국은 사실상 소득재분배 효과가 없는 나라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경제 관료들이나 재벌 대기업들은 조세 부담률이 매우 높다고 아우성이다. 법인세도 소득세도 매우 높기 때문에 세금을 더 낮춰야 한다고 주장한다. 정말 한국의 부유층들은 세금을 더 많이 내고 있을까? 저자는 이 문제에 대하여 '아니오'라고 말한다.

한국은 소수 부자들에게 소득이 지나치게 편중되어 있다는 점, 대표적인 간접세인 부가세의 비중이 OECD 국가들의 평균이 40% 정도인 것과 비교할 때 2010년에는 53.1%까지 높아졌다는 점, OECD 회원국의 80%가 주식 투자에 대한 양도소득세를 매기고 있는 데 반해, 일부 대주주를 제외하고 한국에는 주식 투자라는 자본이득에 양도소득세가 없다는 점, 미국의 대부분의 주가 1%가 넘는 부동산 보유세를 물리는 데 반면, 한국은 부동산에 대한 실효세율이 고작 0.16~0.33%에 불과하다는 점 등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한국의 부자들이 세금을 많이 낸다고 주장하는 것은 "교묘한 진실의 왜곡"이라고 비판한다.

조세정책 정상화하고 복지에 투자... 중산층 붕괴 막아야

부자감세와 금융 규제 완화, 약탈적 대출 등으로 미국발 글로벌 금융 위기가 왔을 때 최소한 한국의 경제 정책 담당자들은 근본적인 정책 변화를 모색했어야 했다. 하지만 부자감세와 규제 철폐, 공기업의 민영화 등을 경제공약으로 내건 이명박 정부는 반값등록금 같은 복지공약은 철저히 무시하면서, 위의 세 공약뿐만 아니라 국민의 여론을 무시한 채 4대강 사업마저 철저하게 관철시켰다. 게다가 7% 성장률을 외치면서 당선된 이명박 정부는 고작 3%대의 성장률에 그쳤다.

시장 근본주의적인 신고전파 경제학을 이론적 토대로 하면서 철저하게 시혜적 복지로만 일관해온 미국의 맥락에서 한국을 바라보지 말아야 한다. 특히 복지가 강화되면 노동자의 근로의욕이 저하된다는 교과서적 통념은 실증적 근거가 있는 사실이라기보다는 보수주의자들이 증세정책을 막기 위한 낡은 신념의 위장 전술일 뿐이다.

신자유주의적 논리로는 복지가 탄탄한 북유럽 국가들이 금융 위기 속에서도 사회적 안전망을 통해 내수를 진작시키고 경제성장을 달성한 결과를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이러한 면에서 하버드대에서 일어난 다음의 일화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2011년 11월, 대표적인 주류 경제학자인 하버드 대학교 맨큐 교수의 경제학 수업이 시작되자 학생 70명이 일어나 일제히 강의실을 나갔다. 그들은 수업 거부 전, 다음과 같이 항의하였다. "제대로 된 경제학 수업이라면 신자유주의와 다른 경제학 모델의 장단점을 모두 소개하고, 비판적인 시각에서 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만일 대학이 학생들에게 넓고 비판적으로 경제학을 이해할 수 있도록 교육하지 않는다면 또 다시 글로벌 경제 시스템을 망치게 될 것"이라고 강력히 경고하면서.

이 책은 표지 디자인만 보면 흔한 재테크 책으로 여겨지기 십상이다. 하지만 이 책이 담고 있는 날카로운 비판과 전망은 방대한 자료 분석과 '복잡계 경제학'이라는 최신 경제이론으로 무장되어 있다. 공부하는 경제 전문기자가 집필해서인지 다양한 일화와 함께 간결한 문체로 서술되어 있어 경제에 관한 지식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읽기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정책이 대선의 뜨거운 이슈가 되고 있는 이 시기, 부디 대한민국의 미래를 이끌어갈 청년들에게 일독을 권해본다.

덧붙이는 글 |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 박종훈 씀, 21세기북스 펴냄, 2012년 11월, 307쪽, 1만5000원



2015년, 빚더미가 몰려온다 - 최악의 시나리오로 내달리는 한국경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

박종훈 지음, 21세기북스(2012)


태그:#박종훈, #부자감세, #글로벌 금융위기, #복지국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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