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4일 여자 실업축구 충남 일화가 재정난을 이유로 끝내 해체했다. 여자축구연맹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4일 "충남 일화가 지난달 말 공식 해체됐다. 선수들은 드래프트를 통해 새로운 구단에 입단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충남 일화의 해체를 공식 선언했다.

결국 충남 일화의 소속 선수들은 이번 달 7일 열리는 드래프트를 통해 새 팀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됐다. 소속 선수들 중 FA 자격이 있는 12명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 12명이 이번 드래프트에 참가한다.

충남 일화의 해체가 확정됨에 따라 '2013 여자축구리그'는 7개 팀이 참여하게 됐다. 최근 수원FMC마저 해체 논란을 겪었기 때문에 내후년 리그는 6개팀이 치르게 되는 것이 아니냐는 걱정 어린 의견들마저 나오고 있다.

2010 FIFA U-17 여자월드컵 우승, 2010 U-20 여자월드컵 3위에 빛나는 대한민국 여자축구가 어쩌다 이 지경까지 이르게 됐을까. 그녀들의 찬란했고 화려했던 순간들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지게 되는 것일까.

수원시의 여자축구팀 해체 논란, 축구 버리고 야구로?

지난 10월 22일, 수원시는 수원시설관리공단에 수원FMC의 해체 결정을 공식 통보했다. 2008년 창단한 이래 최근 저조한 성적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으며, 수원 지역 내 초중고 여자축구팀이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이에 수원FMC 이성균 감독과 선수들이 반발했고, 일부 팬들을 중심으로 '수원 FMC 해체 반대 서명운동'까지 벌어지기에 이르렀다.

수원 FMC 이성균 감독과 선수들은 수원FMC가 창단 2년 만에 WK리그에서 우승, 다음 시즌에서 3위를 차지하는 등 신생팀임에도 불구하고 좋은 성적을 거두었다며 성적 부진으로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다는 수원시의 주장은 어불성설이라고 반박했다.

게다가 수원시는 수원 FMC에게 해체를 통보한 다음 날 시청 대강당에서 '수원 야구포럼'을 열기로 해 물의를 빚었다. 프로야구 제 10구단을 수원에 유치하기 위해 여자축구팀을 해체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결국 해체를 통보한 지 하루 만에 수원시는 입장을 변경했고, 팀의 해체를 유보하고 당분간 팀을 계속 운영하는 쪽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급한 고비만을 넘겼을 뿐, 회생은 아니라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연내 해체 입장을 바꿨을 뿐이지, 항구적인 운영을 뜻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박흥식 수원시 문화교육국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부족한 예산 등의 문제 등이 있기 때문에 수원FMC를 계속 운영한다고 약속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인수 기업을 찾는 등 연착륙 시점까지 운영하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꿈은 높은데 현실은...


여자축구계의 문제는 비단 수원FMC와 충남일화 해체로 불거진 문제만이 아니다. U-17 월드컵 우승, U-20 월드컵 3위라는 대단한 성적을 거뒀음에도 불구하고 국내 여자축구계의 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대표팀의 근간이 되는 국내 팀을 살펴보면 초등학교 25개팀, 중학교 18개팀, 고교 16개팀, 대학 6개팀, 실업 7개팀 등 총 71개 팀이 1500명 정도가 선수로 등록되어 있을 뿐이다 .일본 여자축구 등록선수가 3만 6000여 명에 독일은 100만명이 넘는 것과 비교하면 초라하기 짝이 없다.

중요한 것은 실업팀의 전 단계인 대학팀의 숫자가 고작 6개라는 것이다. 대학팀의 부족으로 고교 졸업 이후 축구를 그만 둬야 하는 상황이 펼쳐지게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일선 학교에서는 2002년 한·일월드컵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지원되던 지원금이 줄어 팀 창단과 유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WK리그의 현실 역시 막막하기만 하다. 올 시즌 WK리그 평균관중은 1000명이 채 되지 않는다. 올 시즌 가장 큰 축제이자 히트 상품이었던 챔피언 결정전 역시 관중석은 텅텅 비어 있었다. 반면 2011 국제축구연맹(FIFA) 여자월드컵 우승국 일본의 여자축구 선수는 4만 명에 육박한다. 총 22개 팀이 있는 실업리그의 인기도 높다. 리그 상위팀의 경기엔 평균 1만5000명의 관중이 든다.

여자축구, 그 치열한 도전

지난 11월 10일부터 11일까지 경기도 가평에서 '케이리그컵 여자축구클럽대회'가 열렸다. 한국프로축구연맹과 숙명여대가 공동으로 주관한 이번 대회에는 경희대, 이화여대, 숙명여대, 동덕여대,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한국외대, 중앙대, 국민대, 한국체대, 건국대 등 12개 학교 240명의 여자대학생 아마추어 축구 동아리 선수들이 참가해 그동안 갈고 닦은 기량을 겨뤘다.

올해 대회 우승자는 경희대 여자축구 클럽인 '경희 LIONS', 경희대는 결승전에서 조다혜 학생의 결승골로 이화여대를 1-0으로 꺾고 2010년 초대 챔피언에 등극한 이후 2년만에 왕좌를 되찾아 왔다.

 '2012 케이리그컵 여자축구클럽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기뻐하는 경희대학교 여자축구클럽 선수들

'2012 케이리그컵 여자축구클럽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하고 기뻐하는 경희대학교 여자축구클럽 선수들 ⓒ 문병헌


'경희 LIONS' 역시 여자축구부 해체의 아픔을 공유하고 있다. 지난 1992년 창단되어 여자축구계의 대들보 역할을 톡톡히 해오던 경희대 여자축구팀이 2004년 예산 부족으로 해체된 것이다.

그러나 팀 해체가 그녀들의 축구 열정까지 끊을 수는 없었다. 경희대 여자축구부의 마지막 세대였던 정지영 감독이 여자축구 명맥을 이어가고자 아마추어 동아리를 창단했고, 결국 '경희 LIONS'는 케이리그컵 여자축구클럽대회 우승에까지 이르게 됐다.

국내 여자축구의 활성화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인프라 구축이 가장 절실하다"며 운을 뗀 정지영 감독은 "가까운 일본과 달리 여자축구의 인구를 유지하지 못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깝다"고 말하며 아쉬움을 전했다.

한편 프로축구연맹 안정환 명예 홍보팀장은 대회장을 직접 찾아 선수들을 격려하며 "이 대회가 여자축구 부흥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며 여자축구 부흥에 대한 바람을 전했다.

희망은 가까운 곳에

한국여자축구연맹은 내년부터 실업팀과 대학팀을 포함해 대학 동아리 및 동호인 클럽까지 모두 아우르는 여자축구 FA컵을 창설할 예정이다. 이 대회의 창설로 최근 수원FMC의 해체보류와 충남일화의 해체로 뒤숭숭한 여자축구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 것이라는 전망이다.

또한 지난 10월 말 대한축구협회와 한국여자축구연맹이 올해 처음 마련한 '2012 여자축구 활성화 워크숍'이 열려 국내 여자축구의 현실 파악과 발전 방향을 찾는데 힘을 모았다.

오규상 한국여자축구연맹 회장은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워크숍을 통해 실현 불가능한 장밋빛 희망만을 품어선 안 된다. 현실을 바로 보고 우선 순위를 정해 급한 것부터 하나씩 차근히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마추어의 발전으로부터 여자축구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아마추어의 발전으로부터 여자축구의 발전이 이루어질 수 있지 않을까 ⓒ 문병헌


대덕대학교의 여자축구부 재창단 소식도 반가운 소식 중의 하나이다. 지난 2008년 예산부족으로 해체됐던 대덕대학교 여자축구부가 4년 만에 다시 창단했다. 대덕대학교는 지난 11월 14일 오후 교내 인문사회관 세미나실에서 여자축구부 창단식을 가졌다. 선수단은 2011년 국가대표 GK였던 유보배를 비롯, 올해 전국체전 여고부 준우승 팀인 충남인터넷고의 주전 수비수 이다희를 비롯 25명으로 구성됐다.

희망은 가까운 곳에 있다. 충남 일화의 해체와 수원 FMC의 해체논란으로 뒤숭숭한 여자축구계에 새로운 바람이 불 수 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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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축구 충남일화 수원F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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