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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안철수 대선후보 간 단일화 논의를 계기로 '정치쇄신'이 대선 정국의 화두로 급부상하고 있다. 대통령 권한 축소, 국회의원 특권 축소, 중앙당 축소, 기초지방선거 정당공천 폐지, 국회의원 정수 축소, 정당 국고보조금 축소, 대검 중수부 폐지 등등. 그런데 하나같이 네거티브하다. 온통 권력을 축소하고 권한을 폐지하는 내용이다. 그동안 권력이 과도하게 대통령과 국회의원들에게 집중되어왔다는 것을 반영하고 있다. 특히, 국회의원의 특권은 '안철수 현상'으로 나타나는 바와 같이 대다수 국민의 지탄 대상이 되고 있다. 국회의원 특권 축소가 대통령 선거의 최대 이슈처럼 비치고 있다.

그런데 뭔가 석연치 않다. 축소하고 폐지해서 그다음에 '어떻게 할 것인가'가 빠져 있기 때문이다. 대통령 인사권을 1/10로 줄인다고 치자. 나머지 9/10은 어떻게 할 것인가? 대통령의 권한을 총리에게 넘겨줄 것인가? 국회의원에게 넘겨줄 것인가? 대안이 분명치 않다. 네거티브의 숙명이다.

19대 국회 개원 직후 여야가 한목소리로 국회의원 특권 축소를 약속했지만, 정작 '어떻게'를 두고 갑론을박하다가 슬며시 '없었던 얘기'가 됐다. 그동안 선거 때마다 정치쇄신을 약속했지만, 선거 후에 지켜지지 않은 이유도 이와 무관치 않다. 막연하게 국민에게 돌려준다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스로 기득권을 버리는 일은 인간세상에 흔치 않은 일이므로 이런 분위기를 타고 국민의 분노에 기초한 네거티브를 제도적 대안으로 정착시켜야 한다. 

대통령제 권력구조 개편, 국회의원 특권 축소와 국회개혁, 공천개혁과 선거제도 개편, 중앙당 축소와 정당개혁, 지방자치선거와 정당공천 폐지, 검찰개혁, 관료에 장악된 정부의 개혁 등등 서로 얽혀있는 다양한 개혁과제들을 어디서부터 풀어나가야 할까? 가장 중요한 실마리는 국회의원 중심의 현행 중앙집권형 정당체제를 분권형 정당체제로 개혁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선 첫째로, 모든 정치쇄신은 국회의원들이 법을 바꿔야 제도적으로 실행가능하기 때문이다. 대통령은 정치쇄신을 '주동'할 수는 있어도 '결정'할 수는 없다. 정부조직법도 국회에서 통과되어야 하며 기초지방자치단체 지방의원 정당공천 폐지도 국회에서 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미국식으로 말하자면, "정치쇄신? 바보야, 문제는 국회의원 늬들이야!"

둘째로, 지방자치를 다시 시작한지 20여 년이 되었고 우리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분권화가 진행되었지만, 유일하게 '일원적인 조직' 그것도 많은 결정권을 독점하고 있는 '국회의원 중심의 일원적 조직'이 바로 정당이기 때문이다. 특히, 정치쇄신의 가장 핵심이랄 수 있는 각종 선거의 공천권을 독점하고 있는 중앙당 중심의 일원적 조직구조가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하고 있다. 당연히 선거 중심의 계파조직이 정당의 의사결정구조를 좌지우지하고 있다. 특히 지방분권시대와는 전혀 맞지 않는 중앙당 중심의 일원적 정당구조는, 이제 지방정치와 지방자치의 발전을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동하고 있다.

먼저 지방분권과 관련하여 살펴보기로 하자.

조금은 낚시성 제목인 '서울시당위원장을 왜 국회의원이 해야 합니까?'를 민주당의 경우를 두고 잘 생각해 보자. 서울시정의 총책임자인 박원순 서울시장은 민주당 소속이다. 서울시의회 의장 역시 106석(교육위원 제외)인 서울시의원의 75%를 차지하고 있는 민주당 소속이다. 하지만, 서울시장이나 서울시의회 의장이 민주당 서울시당위원회에서 어떤 지위를 갖고 어떤 권한을 행사하는지 분명하지 않다.

민주당 서울시당은 '집권 정당으로서 서울시정에 대해 책임지고 있는가?' 민주당 서울시당은 서울시에 지역구를 두고 있는 국회의원 및 국회의원 지망자들로 지도부가 구성되어 있으며, 국회의원 선거구를 단위로 하는 지역위원회(지구당)들의 집합으로 되어있다. 그렇게 구성되어 있는 민주당 서울시당은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의장이 소속 당원임에도 '서울시정'에 대해 정당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는다.

기초 지방자치단체로 내려가면 이런 사정은 더 심하다.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부천시를 사례로 들어보겠다. 부천시장은 민주당 소속이며, 부천시의회는 아슬아슬하게 민주당 다수당이며(과반은 안 된다), 부천시의회의장 역시 민주당 소속이다. 한편, 부천시에는 4개의 국회의원 선거구가 있으며 4곳에서 모두 민주당 소속 국회의원이 당선되었다. 당연히 국회의원 선거구 중심으로 4개의 지구당(지역위원회)이 있으며, 4개 지구당은 같은 민주당이긴 하되 하나의 조직은 아니다.(물론 정당법 상 광역시도당까지만 법적 지위를 갖고 있다) 사안에 따라 협의할 뿐 부천시정에 대한 정치적 결정을 내리는 단위는 아니다. 당연히 지방의원후보에 대한 공천권도 각자 행사한다(물론 형식으로는 경기도당의 결정을 받는다). 부천시장이 정당 소속으로서 정치적 책임을 질 수 있는 구조가 없다. 굳이 책임지겠다면 4개 지구당에 대해 각각 책임져야 하며 결국은 4명의 국회의원에게 책임져야 하는 구조다.

이런 사정은 지방의 군단위 자치단체의 경우 더 심하다. 가령, 강원도 철원군, 화천군, 양구군, 인제군은 '공직선거법'상 하나의 국회의원 선거구로 묶여있는데, 정당법은 이 선거법을 기준으로 하다 보니, 지역위원회(지구당) 역시 4개 군을 하나로 묶는 '새누리당 철원-화천-양구-인제 선거구 당원협의회'로 운영된다. 새누리당 소속인 철원군수, 화천군수, 양구군수, 인제군수는 결국 한 명의 새누리당 국회의원에게 정당 소속으로 정치적 책임을 지게 되어있다. 어떤 면에서, 철원군수는 결국 정당공천을 받기는 했지만, 책임질 정당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구조인 셈이다.

현재 정당의 구조는 우리 사회에서 지방분권시대에 가장 역행하는 '중앙당과 국회의원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원화된 조직'이며, 정작 선거관리위원회와 같은 행정조직과도 충돌한다. 이 낡은 중앙집권적 일원적 정당구조를 지방분권시대에 맞게 그리고 사회구성원과 권력을 나누는 개방적인 '분권형 정당'으로 개혁하는 것이 정치쇄신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기본 구조는 다음과 같다.

대통령-국회의원-중앙당의 관계와 독립적으로, 광역시장,도지사-광역시도의회-광역시도당, 기초시장, 군수,구청장-기초시군구의회-기초시군구지구당(지역위원회)으로 행정구역 단위로 정당법과 정당운영체제를 정비해야 한다. 서울시당은 서울시장과 서울시의회 의원들 중심으로 구성되어야 서울시정에 대해 정당으로서 기능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하나의 부천시당위원회와 각각 4개의 철원군당, 화천군당, 양구군당, 인제군당위원회로 운영되어야 한다. 그래야 시장, 군수,구청장이 시정운영에 대해 자신을 공천해준 정당(시군구당)에 책임질 수 있다. 물론 중앙당과 광역시도당, 기초시군구지구당은 상하관계로부터, 상호 독립적이며, 상향식 연합정당 체제로 정립되어야 한다. 국회의원이나 중앙당 주요 당직과 시도당위원장 또는 지구당위원장의 겸직을 금지함으로써, 지역당의 독립을 보장해야 한다. 같은 맥락에서 지역에서만 활동하는 지역정당도 설립 가능하도록 정당법을 개정해야 한다.

이렇게 놓고 보면, 기초지방의원과 기초자치단체장 정당공천 폐지는, 사실상 지방선거 공천에 국회의원과 중앙당의 개입과 그로 인한 줄서기가 문제였다는 것이 드러난다. 지금 당장은 유력 대선후보들이 기초지방선거 공천배제를 약속했으니 과도기적으로 정당공천을 배제하더라도, 나중에 분권형 정당체제가 자리 잡고 중앙당의 지방선거 공천개입이 금지되면, 지역당의 자율적 결정에 따른 정당공천은 다시 허용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지방자치와 지방정치에도 정당 책임정치가 자리 잡을 수 있을 것이다.

관련되는 문제들은 같은 원리로 정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당법을 중앙당과 지역당으로 분리하고, 지역당은 해당 지역의 조례로 구체화 할 수 있다. 선거구 획정 역시, 선거법을 분리해서 국회의원 선거법에서 국회의원 선거구를, 지방선거법과 해당 지역조례로 지방의원 선거구를 획정해야 한다. 지금은 국회의원 선거구를 기준으로 지방의원 선거구를 획정하는데, 그러다보니 생활권이 동떨어진 선거구가 묶이는 경우도 있다. 보다 세밀한 고려를 통해 생활권 중심으로 선거구도 조정해야 한다.

현행 국회의원 선거구 중심의 지구당을 행정단위 중심의 지구당으로 전환하면, 선거운동조직 중심의 지구당에서 지역의 의제를 중심으로 정책을 생산할 수 있는 지구당으로 전환하는 것이 가능해질 수 있다. 보다 세부적인 내용들은 아주 나중에 천천히 생각해도 되겠다.

덧붙이는 글 | 김진국 기자는 생활정치연구소 부소장입니다. 필자의 블로그에 게재했음 http://jingookc.net/140172271521



태그:#후보단일화, #정치쇄신, #정당개혁, #분권형정당, #공천개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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