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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참사를 다룬 다큐 <두개의 문>과 연극 <칠수와 만수>를 보고 글을 쓰고 있었다. 꽤 많은 말을 주절거리며 쓰고 있었는데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날 아침 용산참사 현장이었던 남일당 터에 가보고 나서 그나마 쓰고 있던 글을 모두 지웠다.

4호선 신용산역 부근 남일당이라는 빌딩이 있던 자리. 2009년 1월 20일 5명의 철거민과 1명의 경찰특공대원이 불에 타 죽은 그곳에는 그렇게 급하게(농성시작하고 25시간 만에) 경찰특공대의 진압이 이루어졌음에도 아직 어떤 건물도 들어서지 않았다. 애초의 개발계획에 법률적 문제가 있어서 공사가 진행되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사람이 6명이나 죽어야 할 만큼 급하게 추진된 철거와 진압의 당위성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던 것일까.

천문학적인 개발이익을 노리는 건설자본, 취임하자마자 '무관용 원칙'을 표방한 이명박정부, 도심지 대개발이 이뤄지면 나도 몫돈 좀 만지지 않을까 기대했던 사람들의 욕망이 결합되어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집어 던졌다. 

2012년 5월 현재의 남일당 터
 2012년 5월 현재의 남일당 터
ⓒ 윤용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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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이 지난 그 현장에는 도대체 2009년에 왜 그렇게 높은 곳에서 철거민들이 죽어야만 했는지 아무런 단서도 남아있지 않다. 다만, 남일당 터 뒤편으로 보이는 고층 빌딩의 스카이라인이 불편한 진실을 말해주고 있다.

막대한 개발이익을 노리는 건설자본의 이익을 위해서 도심의 서민들은 그렇게 쫒겨나야 했고 그것을 거부한 사람들은 공권력의 무리한 진압작전 중 불에 타 죽어야 했다. 그 후로도 아랑곳하지 않고 계속되는 자본과 권력의 만행은 아직도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자행되고 있다(급기야 2012년 5월 24일 아침 경찰과 중구청은 대한문 앞에 마련된 쌍용자동차 희생자들의 분양소를 쓰레기차를 동원해 철거했다).

경쟁에 뒤쳐지고 자본에 짓눌리고 부도덕한 정권의 폭압에 신음하는 도시서민들의 애환을 눈물 섞인 웃음으로 풀어냈던 연극<칠수와 만수>가 초연된 지 26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이 땅에는 옥상 위 망루로 내몰리는 '칠수'와 '만수'가 넘쳐나고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 것일까.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다 죽어갔음에도 어쩌면 이렇게도 참혹한 세상이 된 것일까. 우리의 인간성은 모두 어디로 사라진 걸까.

다큐 <두개의 문>은 극장 상영을 위해 모금을 해야 했다고 한다. 그나마 인간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를 지키려는 사람들이 아직 이 땅에 남아있어서 <두개의 문> 같은 작품이 극장에서 상영된다. 탐욕에 가려진 '불편한 진실'을 우리가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연극 <칠수와 만수>포스터
 연극 <칠수와 만수>포스터
ⓒ 스토리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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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칠수와 만수> 역시 뜻있는 예술인들의 노력과 도전에 의해 2012년에 또 다시 우리 앞에 돌아왔다. 작품 속에 그려지는 2012년의 칠수와 만수의 삶은  26년 전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굳이 다른 점을 찾자면, 욕망의 화신으로 회자되는 현직 대통령을 오징어 대신 질겅질겅 씹어주는 상쾌함 정도?

언제 비로소 <칠수와 만수> <두개의 문> 같은 작품들이 공감을 얻지 못하는, 정상적인 세상이 올까. 아마도 그런 날은 순순히 오지 않을 거다. 그것은 단순히 정권이 바뀐다고 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이런 의미있는 작업들을 진행했던 사람들에게 감사해하며 살면 되는 걸까. 나는 이 어려운 문제에 대한 실마리를 남일당 건물이 철거되기 전까지 그 건물 외벽에 걸려 있었다는 현수막에서 찾았다.

'세상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입니다.'

그래, 살자, 같이 살자. 내가 더 가지기 위해 더이상 '칠수'와 '만수'를 외면하지 말자. 내가 계속 그들을 외면하는한, 모두가 잠든 어느 추운 새벽녘에 나 또한 세상 끝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외롭게 내몰릴 수 있을테니까.

내가 '칠수'고 당신이 '만수'다.


태그:#남일당 터, #용산참사, #칠수와 만수, #두개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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