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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된 기억이다. 우리가 학교 다니던 70년대 말에는 5시 30분이면 학교 일과가 끝났다. 선생님들도 퇴근하시고 우리도 하교를 하였다. 학교가 일찍 끝났다고 마냥 신난 것은 아니었다. 그 당시 자취 생활을 했던지라 청소, 빨래며 반찬 준비 등 집안 살림(?)을 위해 따로 신경 써야 하는 일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도 집에 와서 느긋하게 할 일 해가며 공부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과거와 비교하면 지금의 현실은 격세지감이다. 10시까지 학교에 있는 학생은 그나마 나은 편이다. 많은 학생이 12시 가까이 밤늦도록 학원가를 전전한다. 아예 학교 기숙사에서 감금(?)생활을 하는 경우도 있다. 숨 쉴 여유조차 없는 아이들이 안쓰럽다. 학교 공부도 부족하다 싶어 학원가로 과외로 밤잠을 설치며 매달릴 수밖에 없는 이유는 뭘까?

찬물로 밥 짓고, 연탄불 위에 물 데워 세수하던 시절과 비교하면 얼마나 좋은 시절인가. 물리적인 학교 환경만 보면 하늘과 땅 차이이다. 체격에 맞는 조절식 책걸상, 전자교탁, 물칠판, 사물함, 냉난방시설, 정수기, 학교급식, 비데, 화장실청소용역 등등 거기다가 몇십 리를 걸어가는 것은 당연하고 콩나물 버스에서 짐짝처럼 떠밀리던 등·하교 길과는 전혀 다른 안락한 자가용 등교.

그런데도 요즘 아이들의 표정은 어둡다. 아이들에게 요새는 학교가 참 천국이라고 부러워하면 오히려 핀잔을 듣게 되는 이유는 뭘까? 무엇 때문에 아이들은 혈기왕성한 청춘임에도 저리 지쳐있는 걸까? 

엊그제 모 교장 선생님께서 자율학습시간 교실을 순회하다 미디어 수업 중이던 교실 상황을 오해하여 'TV 시청금지' 명령을 내렸다는 해프닝을 듣고서 얼마 전 있었던 월드컵팀 한국 축구 대표 감독을 경질하는 사건이 떠올랐다. 그 감독은 체계적이지 못한 축구계 주먹구구식의 이해관계와 축구협회 기술위원회의 횡포(?)에 유감을 표명했다. 학교 현실도 비슷하다. 교장이 잘못 판단해도 그가 지적한 것은 옳은 것으로 접수되어야 한다는 식이다.

학교에는 학생들로 구성된 선수들이 있고 교장과 교감, 행정 실장으로 구성된 감독단이 있다. 밖으로는 교장을 발령하고 학교운영을 지원하는 교육청이 있다. 안으로는 기술위원회격인 기획회의(부장단회의)를 비롯하여 각종 위원회가 있다. 그뿐인가 다양한 교과를 담당하는 코치들과 생활지도를 담당하는 담임교사들이 있다.

대표팀의 성적이 좋았던 때는 선수와 감독단의 호흡이 잘 맞았을 때였을까? 선수와 감독단, 기술위원회가 사심 없이 유기적으로 역할 해 줄 때였으리라. 우선 호흡이 잘 맞으려면 적재적소에 필요한 역할을 배치하고 자발적인 책무감을 스스로 발휘하도록 존중해 주어야 한다. 학교도 마찬가지다. 선수(학생)들이 능력과 적성에 맞는 공부를 하게 하려면 교장과 코칭스텝인 교사들의 호흡이 잘 맞아떨어져야 한다.

선수가 공을 몰고 가면서 감독의 눈치를 보면서 패스할 수 없다. 선수는 평소 쌓아둔 실력에 기초하여 경기장을 누비면 된다. 교사가 교실에서 하는 모든 교육활동은 존중되어야 한다. 교장은 교사가 자율학습시간에 TV를 켜고 있든, 수업을 중단하고 다른 일을 하고 있든 먼저 의심하고 간섭해서는 안 된다.

담임이 교실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있고, 교장은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일선에서 아이들을 움직이는 것은 교사다. 쓰레기를 줍게 하고 지각 결석을 지도하는 일도 교사의 몫이다. 축구에서도 감독이 직접 운동장에 나가 뛸 수 없다. 교장 선생님이 직접 나서면 교사들은 설 땅이 없어지는 것이다. 정말 교사들이 바빠서 일손이 부족해 방치되는 것을 발견하면 조용히 나와 치우거나 상황을 진단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서로의 역할이 역전되거나 뒤섞이면 교사들이 문제가 아니라 아이들이 교실에서 운동장에서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가끔 학습컨설팅 중에 2002년 히딩크 감독식 학습법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가 성공한 원인은 간단했다. 선수 개개인을 존중하고 잠재적 능력을 끌어 내주었다. 거기다가 국가대표팀에 대한 원인추적을 정확히 했다. 기초체력의 부족과 선수단의 온정주의 문화를 바꾸어낸 것이 적중하였다.

그리고 1년 반을 지도한 그는 월드컵 50일을 남겨둔 채 기자회견장에서 충격적인 발언을 하였다. 그동안 팀을 50% 수준에서 완성했노라고 말한 것이다. 왜 그랬을까? 핵심을 붙잡았기 때문이다. 기초실력이 탄탄해지면 매일 1%씩 향상 시키는 응용력은 문제 될 게 없다는 말이다. 결국, 그는 200%의 성공률을 만들지 않았던가. 그래서 명장이다. 학교는 그 같은 명장 교장을 필요로 한다.

학생들도 축구선수와 같다. 어떤 교장이 어떤 마인드를 가지고 학교를 경영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결국, 아이들 실력의 열쇠를 쥐고 있는 사람은 교장인 셈이다. 교실 안 교사들에게 교장이 깊이 개입하는 것이나 기술위원회가 지나치게 감독단에 개입하는 것은 선수(학생)들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축구가 국민의 관심을 받는 방법이나 학교 교육이 국민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일이나 매한가지다.

아! 누가 그랬던가. 평교사들을 교장 공모제로 뽑아 책임감과 견제가 제도화되면 학교가 신나는 곳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과연 학교 권력이 민주화될 날은 언제일까?


태그:#교장공모제, #담임교사, #축구협회, #명장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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