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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적으로 우리나라 마당극은 음악과 춤, 재담이 어우러져 양반을 조롱하고 풍자하여 서민들의 애환을 풀어냈다. 양반 나으리 집 안마당에서 서민 등골 빼먹는 양반들, 제 배 불리기 바쁜 관료들을 소재로 한바탕 웃고 즐기는 판이 벌어졌으니 서민들이 느꼈을 그 통쾌함은 상상만으로도 후련하다.

 

그리고 2011년, 양반과 관료들의 욕심과 위선에 고통받는 서민들은 여전한데 한바탕 웃고 즐길 판이 없다. '민주주의의 꽃'이라는 선거가 그 '판'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민주국가에서 선거는 국민들이 주권을 행사하는 중요한 행위다. 당연히 유권자들이 어떠한 걱정없이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고 투표할 수 있어야 한다. 선거가 민주주의의 꽃이고 축제라면 이를 즐길 수 있는 자는 후보자도, 정당도 아닌 유권자가 되는 것이 본래 의미에 부합한다. 하지만 현행 선거법은 행여 선거가 시끄러워질까 우려하며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를 규제하는 내용들을 열거하고 있다. 선거법 뿐만이 아니다.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와 검찰도 애매한 기준으로 유권자들의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고 있다.

 

서울시 선관위는 지난 9월 29일 보도자료를 통해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앞두고 특정 후보자를 비방하는 동영상, 사진을 포털사이트에 게시한 누리꾼 5명을 고발하고, 트위터에 반대하는 글을 올린 2명에게 경고조치를 취했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포털사이트 등에 익명이나 닉네임으로 올려도 게시자의 실명을 끝까지 추적하겠다는 엄포도 빠트리지 않았다. 이제 유권자들은 인터넷 게시글 하나에도 선거법 위반 여부를 두고 노심초사해야 할 형편이다. 선관위는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 열기를 위축시킬 선거법 과잉단속을 중단해야 한다.

 

인터넷,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을 통한 선거운동을 단속하려는 움직임은 검찰도 마찬가지다. 대검찰청 공안부는 10월 10일 '선거전담 부장검사회의'를 개최하여 10.26 재보궐선거 선거사범 대응 방안 논의를 했다.

 

해당 보도자료에 따르면, SNS를 이용한 흑색선전 유포행위와 선거당일의 선거운동 메시지 발송 행위 등을 집중 단속하겠다고 한다. 이는 사실상 SNS 이용자들에게 선거에 대해 언급조차 하지 말라는 것과 같다. 선관위와 검찰이 SNS가 새로운 소통 창구로서 유권자들 사이의 토론과 정보 교환이 가능하도록 한다는 점은 간과한 채, 규제와 단속만을 외치고 있다.  

 

정치 표현의 자유 제약하는 선거법, 이제는 바꿔야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문제는 유권자의 정치 참여 욕구가 날로 높아지고 있는 현실을 반영하지 못하는 구시대적 선거법에 있다. 대표적 독소조항인 공직선거법 93조 1항은 선거일전 180일, 무려 6개월의 기간 동안 후보자, 정당에 대한 지지 또는 비판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후보자의 별명을 부르거나 패러디물을 게시하는 것도 후보자 비방 관련 조항(제82조의4, 제110조)으로 처벌될 수 있다. 또 현행 선거법은 인터넷 언론사에 실명제(제82조의6)를 강제함으로써 여론수렴과 공론형성이라는 언론의 본질적 기능마저 침해하고 있다. 이러한 선거법 하에서 유권자들이 무엇을 할 수 있겠는가. 유권자를 '범죄자'로 내모는 선거법, 이에 대한 유권자들의 공분은 이제 임계점에 이르렀다.

 

지난 6월, 선거법 개정 필요성에 공감하는 시민, 누리꾼, 단체가 모여 '유권자자유네트워크'를 발족하였고 10월 12일 공직선거법 개정 입법청원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지난 10여 년간 인터넷과 SNS에서의 의사표현, 정책 캠페인, 투표독려 캠페인 등에서 유권자의 정치 참여를 제약했던 공직선거법의 주요 독소조항 17개에 대한 개정안이다.

 

주요 내용은 ▲인터넷·SNS 등 정보통신망 선거운동 상시 허용(제59조) ▲선거운동 정의의 명확화(제58조) ▲포괄적인 후보자·정당 비판·지지 금지 규정 폐지(제93조1항) ▲인터넷 실명제 폐지(제82조의6) ▲정책캠페인 주요 수단 규제 조항 개정(제90조, 제101조, 제103조, 제105조, 제107조) ▲후보자 비방죄 폐지(제82조의 4, 제110조, 제251조) ▲투표 독려 행위 규제 조항 개정(제230조) 등이다.

 

이외에도 청원안은 유권자들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가 투표를 통해 발현되는 통로를 확대하기 위해 ▲투표마감 시간 오후 9시로 연장(제155조) ▲부재자 투표소 설치 요건 완화(제148조 등) 등 투표권 확대 방안을 담고 있다.

 

또한 유권자자유네트워크는 지난 10월 9일 홈페이지에 개설한 <선거법 피해 신고 센터>를 통해 선거법의 문제점을 시민들과 공유하고 피해 시민과 누리꾼에 대한 법률지원을 진행한다고 밝혔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현재 국회에 구성된 정치개혁특별위원회는 그 이름에 걸맞게 유권자의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선거법 개정에 앞장서야 할 것이다. 국민들의 정치권을 향한 불신과 무관심, 낮은 투표율이 걱정된다면, 선거 시기 유권자들이 후보자와 정당에 대해 건강하게 토론하고 정보를 교환할 수 있도록 선거법을 개정하시라. 유권자들이 정치에 대해 관심이 높을수록 정치 참여의 욕구가 크고, 더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에 참여할 때 더 나은 정치 환경을 함께 만들어 갈 수 있으니.

덧붙이는 글 | 참여연대 의정감시센터 블로그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태그:#선거법, #유권자, #표현의 자유, #선관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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