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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12월 어느날 반가운 전화를 받았다. 대안초등학교인 산어린이학교(2001년 3월 설립. 교장 조봉호) 풍물교사가 되어달라는 전화였다. 필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풍물을 하기 시작했다. 이후 근 20년 동안 청소년, 노동자, 교사, 시민, 어린이집 등 수많은 강습을 해봤지만, 학교 강습은 처음이었다. 새로운 시작에 대한 기대도 생기고 아이들과 함께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도 되었다. 일단 수업을 하기로 하고 나서는 주변 지인들에게 내가 대안학교의 교사(!)가 되었다고 약간의 과정 섞인 자랑도 늘어놓았다.

3학년 아이들이 풍물 수업 전 직접 재배한 밀을 구워먹고 있다. 내가 도착하자 한 아이가 쪼르르 다가와 "가시고기 밀 한번 먹어봐"하며 구운 밀을 권했다.
▲ 산어린이학교 3학년 아이들과 학교전경 3학년 아이들이 풍물 수업 전 직접 재배한 밀을 구워먹고 있다. 내가 도착하자 한 아이가 쪼르르 다가와 "가시고기 밀 한번 먹어봐"하며 구운 밀을 권했다.
ⓒ 구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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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기대를 안고 간 3월 1일 입학식!

입학식장인 식당에 처음 보는 아이들과 교사, 학부모 사이에 끼어 앉아 있는데, 한 아이가 내 옆에 앉더니 마치 자기 아빠나 친한 삼촌 대하듯 내 몸에 기대는 것이다. 총각 때는 아이들이 딱 1분만 예뻤다. 하지만 이제 나도 아이를 셋이나 키우는 아빠이기 때문에 아이들과 1시간 정도는 잘 놀아 줄 자신은 있었다. 그러나 처음 보는 아이가 나에게 먼저 이렇게 다가오는 것은 아무리 10년 차 베테랑 아빠라해도 당황스러웠다. 

그래도 자연스러운 척 주변아이들과 이야기를 하고 "내가 '딸기' 대신 온 풍물교사 '가시고기'다"고 소개도 했다. 교사 전체 소개 시간에 어떻게 멋지게 내 소개를 할까 고민하고 있는데, 대표교사 달님(이화전. 대안학교에서는 교사의 별칭을 부른다)이 대신해서 소개를 해줘 혼자 멋쩍어 하기도 하며 산학교 식구들과의 첫 만남을 무사히 마쳤다.

입학식 다음 날부터 수업이 시작됐다. 풍물굿은 우리 민족의 농경문화와 직접적인 연관을 가지고 발전 된 전통문화이다. 농번기에 마을 농사를 계획하고 조직하는 농사조직인 두레가 농한기에는 풍물패였고 혹시 국란이 나면 군사조직으로 바뀌었다. 동학농민혁명 당시에 농민군은 두레 조직을 그대로 따왔고 풍물패는 문예패로서 사기를 북돋고 전투시에는 맨 앞에 서는 선봉대였다.

풍물굿에는 민중의 삶과 생활, 문화 모든 것이 녹아있는 것이다. 함께 농사짓고 함께 놀고 함께 근심걱정을 헤쳐 나갔던 공동체의 중심에 풍물굿이 있었다. 풍물 수업을 시작하며 제일 많이 고민했던 것도, 지금도 고민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농경사회의 공동체 문화였던 풍물굿의 공동체성을 현대 도시의 아이들에게 어떻게 느끼게 해줄까?

농경사회 공동체 문화 풍물굿을 도시 아이들에게 가르치기

그런데 내 고민이 너무 앞서갔던가! 풍물수업을 시작하자 그런 철학적인 것보다 구체적인 문제들을 해결해야만 했다. 일단 아이들의 이름을 외우고 성향을 파악하는 것! 45분 수업에 아이들을 집중시키고 딴 짓하고 옆의 친구 괴롭히며 수업 방해하는 아이들 통제하는 방법! 수업 진행에 최소한 필요한 약속 - 악기 아무 때나 안치기, 악기 소중히 다루기, 악기정리 잘하기를 아이들에게 강제하는 방법!

그전까지 내가 해왔던 강습에서 난 풍물굿을 가르치는 일에만 집중하면 됐었다. 나머지 부분은 그 모임의 책임자들이 알아서 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건 말그대로 교사가 된 것이다. 기능을 전수해주는 강사가 아니라 아이들과 함께 수업하는 교사!

수업시간엔 나를 땀나게 하는 말썽꾸러기들이지만 수업이 끝나면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 산어린이학교 3학년 말썽꾸러기 3인방 수업시간엔 나를 땀나게 하는 말썽꾸러기들이지만 수업이 끝나면 가장 친한 친구가 된다.
ⓒ 구자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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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을 외우는 문제는 이름표로 해결을 해나가고 있다. 일주일에 한번 45분 수업이라 아직까지는 몇몇 튀는(!) 아이들 이름 밖에 못 외웠지만 - 진짜로 있는 듯, 없는 듯 하는 아이들도 있다! - 이름 외우는 문제는 조만간 해결될 것이다.

아이들이 수업에 집중하는 문제도 조금 나아지고 있다. 3학년의 경우 자리배치를 다시 하여 꿍짝 맞는 애들을 떼어 놓은 다음, 수업 시간에 다른 선생님들이 함께 들어오게 하니까 내가 혼자 수업 할 때보다 한결 집중력이 높아졌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아이스크림의 공약이 주요했던 것 같다. 휘모리 친 후 어름굿 치면서 먹고 싶은 아이스크림을 외치라고 하니까 난리가 났었다. 천상 1학기 마치기 전에 한번 쏴야 할 것 같다.

기능을 가르치는 강사에서 생활교사로

4, 5학년 선택 수업은 큰 어려움은 없다. 벌써 몇 년씩 풍물굿을 접해보았고 나름 컸다고 수업을 크게 어렵게 하지는 않는다. 다만 아쉬운 것은, 선택수업이라는 데 있다.

"너네 풍물이 좋아서 선택 한 거니? 그럼 2학기 때도 풍물 선택하겠네?"라고 물었는데, 순간 침묵. 두 학기 중 한 번은 풍물을 선택할 수밖에 없는 학교의 규칙 때문에 어차피 맞을 매 빨리 맞아버리자는 심정으로 온 것이라는 아이들의 표정. 그러고 보니 수업 시간에도 그렇게 표정들이 좋지는 않았다. 어떻게든 악기 치는 시간 줄여보려고 노력하는 아이들의 심정이 눈에 선하다.

이제 1학기 수업도 두 번 남아있다. 처음 시작할 때 가졌던 풍물굿 수업에 대한 야무진 목표는 아직 시도도 못 했지만, 그래도 수요일이 기다려진다. "가시고기!" 하며 반갑게 나를 부르는,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들이 있어서 행복하다. 얘들아! 신명나고 푸진굿 올해 안에 할 수 있겠지? 돌아오는 수요일엔 "신명"을 수업 해야겠다.


태그:#산어린이학교, #대안학교, #풍물굿, #필봉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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