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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6·2지방선거 이후 1년이 지났습니다. 6·2 지방선거는 당시 '야권의 역전승'이라는 평가를 받았을 만큼 야권연대를 통한 '깜작 당선자'들이 대거 등장시켰습니다. 야권의 선전 속에 여당이 '소수정당'이 되어버린 지역도 있습니다. 그들에게 지난 1년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6·2지방선거 1주년을 맞이한 그들의 소회를 한번 들어보려 합니다. [편집자말]
나의 꿈은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이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온 몸을 던져 빈민운동도 했고 여성에게 참으로 척박한 토양인 정치판에서의 눈물나게 힘겨운 정치활동도 오랜 기간 했다. 지방자치제가 부활된 1991년 기초의원부터 시작해 두 번의 인천광역시의원과 2004년 17대 국회의원 그리고 2010 민선5기 부평구청장(민주)에 당선되어 1년째를 맞고 있다. 이런 경우를 "그랜드 슬램"을 달성했다고 하지만 내게는 아직도 못 이룬 그 꿈, 특히 인천 부평 달동네 주민들과 약속한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가장 약자를 배려하는 진정한 민주주의 실현을 위한 과정일 뿐이다.

취임사에서 주민을 두렵게 여기고 귀하게 섬기며 혼신의 노력으로 부평의 새로운 아침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취임사에서 주민을 두렵게 여기고 귀하게 섬기며 혼신의 노력으로 부평의 새로운 아침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다.
ⓒ 부평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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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봄. 이 초심에 동의한 사람들이 헌신적으로 선거운동을 했고 더 많은 사람들이 응원하고 새로운 세상, 새로운 부평을 희망하는 사람들이 나를 선택했다. 한나라당 중앙정부 집권 중에 8년간 인천 부평 지방정부를 집권했던 한나라당 후보를 제치고 민주당 여성후보를, 큰 표차로 확실하게 선택한 주민들의 기대와 희망은 내게 감동과 새로운 힘을 주었다.

그래서 취임사에서 주민을 두렵게 여기고 귀하게 섬기며 혼신의 노력으로 부평의 새로운 아침을 열어가겠다고 다짐했고, 몇몇 잘난 사람들이 중심 된 "너희들의 지방자치"가 아니라 모든 주민들이 함께하는 "우리들의 지방자치"를 하자고 부탁했다. 또 "…자기가 태어나기 전보다 세상을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성공이다"라는 랄프 에머슨의 시처럼, 이 지역공동체 부평을 내가 맡기 전보다 "조금이라도 살기좋은 곳으로 만들고 떠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이라 생각하며 훗날 성공했던 구청장으로 기억되길 소망한다고 취임사를 마무리했다.

그랜드슬럼 달성? 텅 빈 곳간 보며 한숨만 났다

그런데 성공하는 구청장되기는 생각보다 만만치 않았다. 무엇보다 재정문제다. 광역시 자치구 재정이 어려운 것은 일반적이지만 부평의 경우는 상태가 심각했다. 첫 추경을 편성할 때 심각한 재정난을 확인하면서 깜짝 놀랐다.

선거 당시 인천시에 수조 원의 빚이 있다는 것은 다 알려진 사실이었지만 부평구 재정난은 은폐되어 있었고 수백억짜리 각종 시설을 지었거나 짓는 중이어서 누구도 겉보기에 부자구청 같았다. 그런데 실제는 부채가 수백억이었고, 예비비는 쥐꼬리만큼 남아 있었다. 가난한 사람이나 장애인 등에게 지급되는 사회복지비는 예산의 50% 이상이어서 사업비는 짓던 건물도 중단해야 할 만큼 모자라는 형편이었다.

성남시장은 취임하자마자 모라토리움을 선언했지만 나는 다른 방식을 택했다. 우선 기자들에게는 간담회를, 주민들에게 설명회를 열어 열악한 재정상태를 공개했다. 어느 한나라당 정치인은 구청장이 '깜짝쇼한다'고 했지만 대부분의 주민들은 이해하고 함께 걱정했다.

재정극복 토론회도 열어 전문가의 진단과 대안을 들었고 그 자리에서 재정극복 범시민위원회가 만들어졌다. 재정자립도 25% 안팎의 수준에서 인천시에 의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시장에게 찾아가서 돈 10억을 달라고 사정한 일이 한두 번 아니다. 시장뿐이랴, 부시장, 기획관리실장에게도 몇 번씩 사정하고 구걸(?)한다. 국회의원 시절에는 수천억, 예결특위위원할 때는 수십조 원을 다루며 집행부에 큰소리쳤는데 이젠 10억 원 얻으려 사방팔방 쫓아다닌다. 단 1, 2억 원도 죽는 소리하며 얻어낸다.

인구는 많고 면적은 좁은 구도심에서 돈을 벌 방도는 없고 돈 쓸 거리만 태산이다. 남들은 공단이 있고 한국GM 자동차공장도 있으니 세금이 많을 거라 생각하지만 공단의 큰 공장들은 서울에 본사가 있어 그리로 세금내고 자동차공장은 대부분의 세금을 인천시에 낸다. 인구 57만 인천의 가장 큰 도시로 취득세도 다른 구에 비해 가장 많이 걷지만, 그 세금은 고스란히 시에 주고 되돌려 받을 때는 얼마 안 되는 징수교부금과 재원조정교부금이다.

거기에다 중앙정부에서 2006년 이후 사회복지사업을 분권하면서 국비지원율을 줄이고 중앙의 복지사업을 계속 확대하여 지방정부의 복지예산부담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 우리구는 전국에서도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도시여서 그 사회복지비 부담이 구재정의 숨통을 조이고 있는 형편이다. 자치구 예산의 56%가 사회복지비라는 기형적인 재정구조는 인천은 물론 전국에서도 찾기 어렵다.

그런데 갑자기 인천시조차 시재정이 어렵다며 구에 내려보내야 할 교부금 170여억 원을 삭감해버렸다. 2010년도 연말에 취해진 이 조치에 하급기관인 구는 비명도 못 지르고 당할 수밖에 없었다.

이런 형편이니 2011년도 예산은 구청장 공약에 의한 새로운 사업은커녕 1000여 명 공무원 4개월치 예산마저 세우지 못한 극심한 상황이 되었다. 도대체 재정이 이지경이 될 정도로 지난 시기 구청은 뭐했을까 싶어 세세히 조사를 했더니, 지난 2, 3년간 수십, 수백억 시설들을 대책도 없이, 겁도 없이 건설했다.

사회복지비 증가 부담에도 수천억 원의 토건사업을 하는 이유는 선거를 염두에 둔 구청장, 부구청장, 구의원들의 선심성, 전시적 사업 필요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단 몇 년 뒤의 재정상황도 아랑곳하지 않고 지방채와 각종 기금 등 끌어쓸 수 있는 모든 돈을 다 퍼부어 썼다.

당시 그 일을 저지른 누구도 책임을 지지 않는다. 완전히 빈 곳간, 아니 바닥이 무너져버린 빈 곳간을 넘겨받아 어찌 채워 써야 할지, 정말로 아침에 일어나면 그 생각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궁상을 떨 정도로 모든 사업을 축소하고 정비했다. 매년 하는 동단위 축제도 없애고 수억원을 썼던 풍물대축제는 반으로 예산절감하고 다른 축제들과 합쳐서 치르게 했다. 노인 또는 보육단체들이 다른 구와 비교해 어디는 수당 얼마를 더 준다는 데 홍 청장은 왜 안 주느냐 그럴 땐 미안하고 속상했다. 나라고 왜 인심쓰고 싶지 않겠는가.

그렇게 설득하고 아끼며 사는데 올해 3월 20일 즈음해서 정부의 취득세 50% 감면 발표에 또 한번 날벼락을 맞는 듯했다. 인천시 취득세 세입이 반으로 준다면 우리 구 경우, 시로부터 150여억 원을 못 받게 된다. 나비효과라고 하든가. 중앙에서 날갯짓 한번 잘못하면 맨 밑에 있는 기초자치단체는 짓뭉개진다. 중앙정부에서의 지방자치 인식 및 관심 부족에서 이런 조치가 취해지는 것이므로 즉각 다른 구들과 기자회견은 물론 행안부와 보건복지부에 건의문을 공식으로 전했다.

돈 없어도 '더불어 사는 따뜻한 세상'은 가능합니다

돈 없어서 "더불어사는 따뜻한 세상" 만들기 못하는 것은 아니다.
 돈 없어서 "더불어사는 따뜻한 세상" 만들기 못하는 것은 아니다.
ⓒ 부평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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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단체장을 해보니 아직 지방자치가 정착되지 못한 것을 절감할 수 있었다. 이럴 줄 알았다면 국회의원 행자위 시절 더 열심히 지방자치 관련 법과 제도를 손질했을 텐데 아쉬웠다. 당시 그 일을 미처 못한 만큼 앞으로 중앙과 사회에 계속 문제제기와 대안을 제시해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지방 재정이 살아야 풀뿌리 민주주의가 튼튼하게 산다.

돈 없어서 "더불어사는 따뜻한 세상" 만들기 못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돈이 있다면 좀더 빠르고 신나게 그런 세상을 만들겠지만 돈 없이도 할 수 있는 일은 열심히 했다. 네트워크이다.

구청에서 지원하는 지역아동센터와 교육청에서 하는 방과후 학교가 서로 만나게 하고, 관청에서 운영하는 도서관과 주민들이 운영하는 작은도서관이 서로 만나게 했다. 우리 구민과 어린이들에게 봉사하는 사업들인데 서로 협력하면 갈등은 줄어들고 시너지가 높아지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기업이 지역사회 어려운 이웃에게 지원하도록 하고 그동안 지역사회에 관심이 없던 큰 기업에겐 기여할 사업을 제안했다.

또 지역공동체 사업을 지원했다. 의료생협, 자활센터, 희망마을 만들기 사업 등은 신자유주의 도시사회에서 사회약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공동체 사업이므로 적극적으로 관심갖고 격려했다. 근로의욕이 있는 빈민들에게 사업을 통해 빈곤을 탈피하게 하는 자활센타에게 구청 1층 로비에 카페를 설치하여 운영하게 하는 일은 구 예산 없이도 그들을 크게 지원하는 일이다.

또 거버넌스를 중요시한다. 한 예로 1억 원 예산의 자전거 도로만들기 사업을 할 때 구청직원이 결정한 안보다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의논한 안이 훨씬 예산의 효용성도 높고 시민들이 만족하였다. 그런 점에서 주민참여예산제를 적극 실시해나가고 있다. 외국의 예처럼 재정이 어려운 도시에서 시작하여 큰 도움이 되었듯이 우리 구에서도 내년 이후에는 그 효과를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송전탑 지중화는 갈등조정관이 구청 직원과 함께 밤낮으로 주민들을 만나고 회의하고 설득한 아름다운 결과였다.
 송전탑 지중화는 갈등조정관이 구청 직원과 함께 밤낮으로 주민들을 만나고 회의하고 설득한 아름다운 결과였다.
ⓒ 부평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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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공공갈등조정관 도입이다. 30여년 된 한전의 송전탑이 이전해야만 낡은 주택을 재건축과 재개발을 할 수 있는데 그 이전 예정지 주민들이 매우 반대하며 송전탑 지중화를 요구하여 사업시행이 몇 년째 중단되고 갈등은 극도로 심화되었다.
취임 이전에도 해당 집단민원인이 서로를 경찰에 고발할 뿐아니라 구청 도시국장실을 점거했을 만큼 가장 민감한 현안을 떠안았는데 취임 6개월 동안 아무리 각 집단을 설득해도 소용이 없었다.

송전탑 지중화는 구에서도 요구하는 사안이지만 한전과 인천시에서 예산 400억을 마련할 때까지는 지금 당장 추진할 수 없는 일이어서 답답하기만 했다. 결국 공공갈등을 전문적으로 공부한 주민활동가 출신의 전문인에게 3개월간 조정관으로 역할을 맡긴 후 그 깊은 갈등은 일단락되었다.

4월 초 송전탑 이설 추진 재건축, 재개발 측 주민대표와 이설반대 측 주민대표가 구청장인 나를 중심으로 양쪽으로 앉아 "상생협력 약속" 용지에 모두 서명을 했다. 그 자리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갈등조정관이 구청 직원과 함께 밤낮으로 주민들을 만나고 회의하고 설득한 아름다운 결과였다.

이 갈등해결에 들인 예산은 불과 250만 원. 갈등조정관의 땀과 눈물의 수고에 비해서는 너무 적어 미안했다. 관련 조례와 예산이 없기 때문인데 앞으로 보완하여, 재개발 사업 50군데가 진행되고 각종 민원이 끊이지 않는 우리 구에서 잘 활용하면 구청직원들과 시민들의 고통이 줄어들 것이다.      

25년보다 더 바빴던 1년, 57만 부평 주민이 희망입니다

당선과 취임 1년을 즈음하여 지난 1년을 되새겨보면 정말 바쁘게 살았다. 나이 30살 이후 빈민운동 시절, 11년간의 지방의원과 4년간의 국회의원 시절 포함하여 25년간 살던 어느 때보다 바쁘고 열심히 살았다. 그간 주민들이 내게 준 관심과 신뢰에 보답하기 위해서도 그동안 쌓은 노하우로 최선을 다해야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내가 최선을 다해도, 지방자치 퇴행 속에 기초자치단체의 한계, 지난 8년간 구청의 전시적 토건사업의 후유증, 장애인과 가난한 사람들이 많이 사는 구도심의 문제 등 주어진 여건의 한계가 많아 아쉽기 그지없다. 게다가 최근에는 60년간 수십만 평을 차지했던 부평 요지의 캠프마켓 미군기지에 고엽제 오염물질 의혹 건이 터졌는데도 부대내 조사해 달라고 중앙정부에 하소연하는 처지일 뿐이다. 완전한 지방자치의 실현을 위해서는 풀뿌리 기초자치의 실현이 전제되어야 한다.

1년간 열심히 해도 어려운 일, 안 되는 일에 부딪쳐 많이 힘들 때 호치민 시를 옆에 두고 그 책임과 역할을 상기했다.

"…그대는 그저 길가에 서있는 보잘것 없는 이정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바른 방향을 일러주어 길을 잃지 않게 한다/  그대의 노고가 가볍지 않으므로 사람들은 그대를 기억하리라."

그리고 어느 성직자의 기도문으로 하나님께 기도한다.

"어찌할 수 있는 것을 받아들이는 평온함과 어찌할 수 있는 것을 바꾸는 용기와 그 둘을 구별하는 지혜를 주소서"    

열악한 재정으로 주민들을 당장 행복하게 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대해서는 논어 위정편에 있는 "주민들을 정치술로 이끌지 말고 덕으로 이끌고 예로 다스린다면 감동하여 통하게 된다"는 글로 위로 삼는다. 내가 진심으로 우리 주민들을 위하고 올바른 행정을 한다면 감동하여 통할 수 있을 것이라는 믿음으로.

그리고 끝으로, "조금이라도 살기 좋은 곳으로 만들어 놓고" 떠난 성공한 구청장이 되도록,  "더불어 사는 따뜻한 부평"의 꿈을 이루도록 앞으로 남은 3년간 또 열심히 주민들과 함께 일할 것이다. "사람이 희망이다. 57만 주민이 희망이다"라는 믿음으로.


태그:#6·2지방선거, #부평구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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