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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지대학교 학생회관 1층에 강경대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 강경대 열사 20주기 추모 명지대학교 학생회관 1층에 강경대 열사를 추모하기 위한 자리가 마련되어 있다.
ⓒ 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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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와 '분신정국'
1991년 4월 26일 명지대학교 앞에서, 이틀 전에 연행된 총학생회장의 석방을 위한 구출대회가 진행되던 중 명지대 경제학과 1학년 강경대가 백골단이라 불리는 사복 경찰관들에게 붙잡혀 쇠파이프로 두들겨 맞은 뒤 사망하였다.

학생들은 노태우 대통령의 사과와 책임자 처벌 등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였다. 4월 29일 전남대학교 학생 박승희가 강경대 사건 규탄집회 중 분신하였고, 이어서 5월 1일 안동대학교 학생 김영균, 5월 3일 경원대학교 학생 천세용, 5월 8일 전민련 사회부장 김기설, 5월 10일 노동자 윤용하 등이 잇따라 분신하여 이른바 '분신정국' 이 조성되었다.
명지대 총학생회관은 오는 26일 열릴 강경대 열사 추모제 준비 때문에 각종 홍보 포스터와 국화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1991년 학원자주화 투쟁을 하다 전경의 집단 구타에 죽임을 당한 강경대 열사. 그의 죽음은 10여 명의 학생과 노동자가 노태우 정권 퇴진과 민주화를 요구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분신 정국'으로 이어졌다.

어느덧 시간이 흘러, 그가 산화한 1991년에 태어난 아이들은 스무 살 새내기 대학생이 되었다. 강경대 '선배'를 위해 20주기 추모제를 준비하는 명지대 11학번 학생들을 만나 이들이 생각하는 열사의 모습에 대해서 인터뷰했다.

왼쪽부터 이혜주(21,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씨, 한진희(20, 명지대 경영학과)씨.
 왼쪽부터 이혜주(21, 명지대 디지털미디어학과)씨, 한진희(20, 명지대 경영학과)씨.
ⓒ 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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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대 열사에 대해서 어떻게 알고 추모제에 참여하게 되었나?
이혜주(21, 디지털미디어학과) : "대학 들어와서 강경대 열사에 대해 알게 되었고 총학생회 일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추모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

- 이번 행사를 준비하면서 강경대 열사에 대해 어떤 생각이 들었나?
이혜주 : "대학생들도 '지식인'이라고 할 수 있는데,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것을 행동으로 옮겼다는 면에서 진정한 지식인이라고 생각한다. 또 나는 지금 내 나이 때에 하고 싶은 게 너무나 많은데, 강경대 열사는 20대에 개인이 누리고 싶은 것들을 버리고 친구, 학교, 나라를 위해서 몸소 운동한 것이 놀랍다. 그런데 이런 일이 생각보다 잘 알려져 있지 않아서 아쉽다."

한진희(20, 경영학과) : "나는 1970년대, 1980년대 시위했던 분들과 비교했을 때 강경대 열사가 더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사실 1990년대는 1970년대, 1980년대처럼 다 같이 민주화 운동을 할 때가 아니었기 때문에 그러한 시기에 오히려 나서서 활동하신 것이 훨씬 더 멋있다."

- <연합뉴스> 보도(4월 18일자)를 보니 강경대 열사 부모님께서 "투쟁과 희생 속에서 얻어진 민주주의인데 (사건이) 잊혀지니까 한편으로는 서운하다. 젊은이들은 지금 만끽하는 자유가 저절로 얻어진 줄 아는 것 같다"라고 말씀하셨는데, 이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나?
이혜주 : "나 역시도 뒤늦게 알게 되어서 아쉬운 점이 많다. 중고등학교 때부터 '열사'들에 대한 교육이 제대로 이뤄져서 우리가 그들의 정신을 이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국 이러한 추모제들이 더 알려져야 하는데, 그것이 너무 우리 학생 쪽에서만 이루어지고 있다. 정부나 언론에서도 함께 나설 때 많은 사람들이 열사들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한진희 : "우리 사회가 1970년대, 1980년대 민주화운동 하신 분들에 대해서는 기억을 많이 하고 있다. 하지만 1990년대 운동의 경우 크게 활동했음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알지는 못해서 아쉽다. 지금 얻어진 자유를 쉽게 생각하는 것이 문제다. 이렇게 대학 다니면서 공부에만 집중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어찌 보면 축복이다.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자유를 위해 투쟁하는 것은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강경대 열사 20주기 추모 준비 현수막
▲ 강경대 열사 20주기 추모 준비 현수막 강경대 열사 20주기 추모 준비 현수막
ⓒ 정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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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경대 열사가 그 당시 처한 대학의 상황과 20년이 지난 후 지금 여러분이 마주하고 있는 상황은 어떻게 다르다고 보는가?
이혜주 : "예전에는 민주화 항쟁과 같이 정치적인 문제들이 많이 거론되었다면, 요즘에는 대학의 모든 문제들이 돈과 결부되어 있다고 본다. 졸업하고 나서도 결국 사람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돈이다. 또한 예전에는 집단이 되어 함께 행동하는 움직임이 있었다면 지금은 사람들의 개인화 경향이 심화되면서 자신의 일이 아니면 잘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

한진희 : "사실 꿈꾸던 대학생활의 '로망'이 있었는데, 막상 대학에 와보니 다들 학점관리에 토익을 공부해야 하더라. 환상이 많이 깨졌고 1학년 때부터 학원 다니는 것을 보면 진짜 삶이 팍팍해진다는 느낌이다. 고등학교 때는 대학교를 잘 가야 좋은 것이고, 또 막상 대학 가면 취직이 잘 되어야 한다. 옛날에 민주화운동을 할 때는 대학 들어가서 학문을 배운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큰일이었는데, 이제는 단순히 돈 많이 버는 것이 삶의 목표가 되어 버렸다."

- 그렇다면 이러한 상황을 어떤 식으로 변화시켜야 할까.
한진희 : "나는 한 개인의 영향력이 크다고 생각한다. 이한열, 강경대 열사처럼 한 분에 의해서 사회운동이 일어났듯이 나도 다른 사람들에게 좋은 사회적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여러 명에게 말하는 것도 좋겠지만 주변의 한 사람에게 말하는 것도 중요하다.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늘어날수록 우리 사회는 바뀔 수 있다."  

이혜주 : "예전과 많이 다른 사회이기 때문에 폭력적인 시위는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계속해서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가지고 소모임이나 자신의 의견을 반영할 수 있는 단체 활동을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내고 평화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내세우는 문화가 조성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강경대 열사가 살아 있다면 전하고 싶은 이야기는?
이혜주 : "20년이 지났는데도 여전히 부당한 상황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다. 등록금 인상에 대한 문제나 카이스트 문제와 같은 상황들이 사라지고,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를 더 잘 찾을 수 있게 선배님과 함께 행동하고 싶다."

한진희 : "살아 계셨으면 지금 세대가 사회문제에 대해 좀 더 적극적으로 변하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위의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아래 세대들도 바뀔 수 있기 때문이다. '멋있다. 강경대 선배님처럼 하고 싶다'라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인터뷰를 마친 후 이들은 강경대 열사의 추모제 준비를 위해 바쁘게 자리를 떠났다. 추모영상 준비와 중간고사 시험을 함께 준비하느라 이혜주씨는 며칠 밤을 샜다고 했다. 힘들지 않냐고 물으니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해서 기분이 좋다"고 빙그레 웃으며 말하는 그에게서 강경대 열사의 정신을 잊지 않으려는 마음이 엿보였다.


태그:#강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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