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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느낄 수 없었던 마을합창단의 공연. '마을사람' 100인이 펼치는 무대를 또 다른 300여 '마을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무대와 객석의 경계를 느낄 수 없었던 마을합창단의 공연. '마을사람' 100인이 펼치는 무대를 또 다른 300여 '마을사람'들이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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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미산 살리기 문화행동 3탄으로 기획된 '100인 프로젝트 마을합창단 공연'이 성황리에 개최되었다.

이들은 지난 15일 불교역사박물관 공연장에서 있었던 공연을 통해 마포구 유일의 자연숲 성미산이 그대로 보존되어야 함을 100인의 목소리를 통해 세상에 널리 알렸다. 이틀 뒤인 18일 토요일 오후 2시에는 홍익대 앞 놀이터와 성미산 공사장 펜스 앞에서도 공연을 함으로써 지난 두 달 간 준비해 온 마을 사람들의 소망과 의지를 널리 전했다. 

기온이 -10℃로 뚝 떨어진 지난 15일. 올 겨울 들어 가장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던  그날,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은 하나 둘 조계사 옆 불교역사박물관 공연장으로 향했다. 이미 공사가 강행되어 성미산 한 쪽 능선이 파헤쳐진 상황이었지만, 산자락 아래 모여 살던 사람들은 이 땅에서 여전히 파헤쳐지고 있는 수많은 '성미산'들을 지켜내겠다는 결의를 멈출 수 없었기 때문이다.

공연을 위한 무대 연출에서도 마을합창단다운 발랄함과 참신함이 돋보였다. 흰색 스크린을 중심으로 나란히 팔 벌린 흰색 티셔츠들이 무대 배경의 전부다. 이 무대를 기획한 마을 주민 '조반장'에 의하면 "동네사람들이 기증한 흰 티셔츠들로 꾸며진 무대는 그대로 성미산과 그 아래 모여 살아가는 소박한 삶들의 어깨동무를 표현한다"고 한다.

무대 복장이라 할 만한 것도 딱히 없다. 빨강, 노랑, 주황, 초록, 흰색. 누구나 하나씩 갖고 있는 청바지에 각자의 색깔대로 골라 입은 티셔츠 차림의 모습은 무질서한 듯 자연스레 어울려 살아가는 도심 속 마을공동체의 느낌을 그대로 담기에 충분했다.

이처럼 기획과 연습, 홍보, 공연 등 모든 과정이 순수하게 주민들의 아이디어와 손길로 마련된 이번 무대 위에 드디어 100인의 사람들이 가득 들어찼고, 기대하던 마을의 하모니가 울려 퍼졌다.

마을 주민 엘리스와 그의 딸 정우의 짤막한 열기무대. 지켜보는 사람들의 환한 모습으로 모녀의 포옹이 더욱 따스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 정우야, 사랑해! 마을 주민 엘리스와 그의 딸 정우의 짤막한 열기무대. 지켜보는 사람들의 환한 모습으로 모녀의 포옹이 더욱 따스하고 행복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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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틀즈의 명곡 'Let it be'를 개사한 노래 '냅둬유'는 다소 가볍고 코믹한 가사로, 레미제라블의 명곡 'Do you hear the people sing'은 그 크고 웅장한 멜로디로 성미산을 지키며 싸워온 사람들의 간절한 마음을 담아냈다.

이들 노래는 본 공연의 총감독을 맡은 원창연 선생의 선곡과 개사로 재탄생함으로써 이후로도 성미산 마을 사람들의 특별한 애창곡으로 남겨질 만큼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초대 손님으로 참가한 민중가수 윤선애씨와 아카펠라 그룹 '아카시아'의 공연 또한 산을 지키며 살아가는 성미산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북돋워줬다.

가득 찬 무대, 가득 찬 객석에서 지펴내는 삶의 희망

마을 합창단의 구성을 보면, 명실상부 남녀노소를 망라한 주민공동체의 면면을 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먼저 성미산마을 어린이합창단은 벌써 몇 해째 자체공연과 음반취입을 할 정도의 탄탄한 실력으로 일찌감치 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대표적인 팀이다.

마을노래패를 표방하며 결성된 '진동'은 한 동네에서 자녀들을 함께 키우며 살아가는 부모들의 모임으로, 노래를 통한 자유롭고 행복한 연대를 꿈꾸며 이번 합창 공연에 참가했다. 이들은 이번 공연을 통해 함께 노래하는 어른과 이웃들의 따뜻한 모습이야말로 아이들을 키워내는 가장 따뜻한 정서적 울타리가 될 것임을 확신하고 있었다.

앵콜 요청이 나오자 관중석에 숨어 있던 친숙한 얼굴 하나가 불쑥 등장한다. 바로 영화배우 정인기 씨. 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청중들과 함께 부를 '개구쟁이'를 소개하고 있다.
▲ 숨어 있던 영화배우 1인? 앵콜 요청이 나오자 관중석에 숨어 있던 친숙한 얼굴 하나가 불쑥 등장한다. 바로 영화배우 정인기 씨. 마을 주민의 한 사람으로서 청중들과 함께 부를 '개구쟁이'를 소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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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합창공연의 상징적 중추를 이룬 '드림팀'은 기존의 어떤 팀에서 속하지 않았던 사람들로 사실상 '마을합창단'을 위해 만들어진 주민들로 구성되었다. 검증된 실력보다는 성미산을 지키기 위한 마음 하나로 '급조'된 팀이기에 더욱 큰 관심과 기대를 모았는데, 이들은 '사계'와 '조율' 등의 경쾌하고 진중한 멜로디를 멋지게 소화해 냄으로써 커다란 감동을 선사했다. 청년그룹인 민중의집 합창단 역시 이들 드림팀에 합류해 힘찬 에너지를 더했다.

또 하나 눈에 띄는 그룹은 망원동 새민족교회 팀이다. 이들은 '마을교회'를 꿈꾸며 최근 망원동으로 이사해 온 작은 교회로서, '평균연령 50세'의 구성으로 마을합창단의 '뒷배'를 든든히 받쳐주는 어르신의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이들은 이번 공연에 함께 함으로써 지역교회로서 주민들에게 더욱 친숙하게 다가가는 교회로, 생명과 평화의 가치를 삶 속에서 실천해 내는 든든한 벗으로서의 모습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아카펠라로 연주된 어르신들의 아름다운 하모니에 문정범(성미산학교 7학년) 군은 특히 큰 박수를 보냈다.

"할아버지 같으신 분들이 부르는 노래는 듣는 건 처음이에요. 이렇게 감동적일 줄은 몰랐네요. 오늘 노래한 사람들 중 가장 멋진 것 같아요."

합창의 추억, 그 후에 남겨진 것들

한겨울 추위를 녹인 마을 100인 합창단의 '냅둬유'와 '모두 들어보거라'가 다시 한 번 울려퍼졌다.
▲ 홍대 앞 거리공연 한겨울 추위를 녹인 마을 100인 합창단의 '냅둬유'와 '모두 들어보거라'가 다시 한 번 울려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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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와 270여 객석을 가득 메운 공연은 자연과 더불어 평화를 지키며 살아가고자 하는 건강한 시민들의 행복하고 건강한 놀이터로서 유쾌하게 펼쳐졌다. 두 시간여의 공연을 마친 후 무대 뒤에선 본 공연의 감동을 잇는 절정의 감동이 연출되고 있었다.  

"성공이지? 우리가 정말 해낸 거죠?"
"정말... 수고들 하셨어요."

고이는 눈물을 애써 참으며 서로를 얼싸안고 등을 두드리는 사람들. 무언가를 함께 해냈다는 묵직한 감동이 이전보다 더 강한 연대와 자신감으로 분출하는 순간이다. 수요일 공연에 이어 토요일 오후에는 홍대 앞 놀이터에서 거리공연을 열었다. 성미산 공사의 발주자, 홍익대학교의 육중한 정문을 배경으로 선 이들은 다시 한 번 '냅둬유'와 '모두 들어 보거라'를 외치며 차가운 겨울바람을 날렸고, 이어 성미산 공사장 펜스 앞으로 자리를 옮겨 마지막 합창의 대미를 장식했다.

"이게 과연 될까?... 연습하는 두 달 내내 걱정이 떠나지를 않았는데, 무대 위에 선 우리들  모두 대단했던 것 같습니다. 서로를 바라보는 따듯한 시선은 물론, 함께 어우러져 만들어내는 하모니는 정말 두고두고 잊지 못할 감동이고 아름다움이었습니다."

단원으로 참석한 연수아빠 '햇살'이 전하는 감동이다. 주민 '고도기'는 "그동안 행복한 꿈을 꾸다 깨어난 듯하다"며 "이제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라고 공연 소감을 밝혔다. 소프라노에서 활약했던 '시원' 역시 "소리의 하모니도 인간관계의 하모니도 이제 시작"이라며 공연이후에 대한 희망과 기대를 내비쳤다. 

공연이 끝난 지금, 성미산 마을 사람들은 일말의 공연 후유증으로 술렁이고 있는 중이다. 시장을 보러 가는 엄마의 손을 잡고 '냅둬유, 냅둬유~성미산과 살게 냅둬유'를 흥얼거리는 어린아이에, 자다가도 노래를 흥얼거리게 됐다는 주민들의 행복한 피로감까지, 사람들은 당분간은 더 100인 합창의 여운을 즐기게 될 듯하다.

각박한 도심 한가운데서 작은 뒷산 하나 지키는 일에 뜨거운 마음 한 자락씩 합칠 줄 아는 사람들은 이렇게 행복한 마음으로 2010년 한 해를 마무리하고 있다. 앞으로 100명에 이어 200명, 300명이 함께 할 더 큰 삶의 무대에서 이들은 생명과 평화의 공동체를 굳건히 지켜 내기 위한 노래를 멈추지 않겠다는 다짐이다.

100인합창단 발걸음의 최종 도착지가 된 성미산 훼손의 현장. 마을의 노래 '냅둬유~' '모두 들어 보거라'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간절하게 울렸다.
▲ 성미산 공사장 앞 공연 100인합창단 발걸음의 최종 도착지가 된 성미산 훼손의 현장. 마을의 노래 '냅둬유~' '모두 들어 보거라'가 그 어느 때보다 크고 간절하게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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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성미산대책위원회 소식지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성미산마을, #마을합창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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