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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군의 한 중대에서 전문하사 13명이 탄생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바로 육군 제11기계화보병사단 오룡대대 2중대다. 이는 중대원 중 10%정도가 전문하사의 길을 택한 것이다. 전문하사란, 지난 2008년에 최초 시행된 유급지원병 제도로, 전역 6개월~2개월 전에 지원하여 약 180만원의 보수를 지급받고 군복무를 6개월~1년간 연장하여 근무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를 시행할 때만 해도 전역을 앞둔 병사들이 과연 얼마나 지원하겠느냐는 시각이 많았지만, 최근 경제난과 맞물리면서, 지난 2008년 시행 이후 전문하사가 3,900여 명이나 배출되었다고 한다.

요즘 대한민국이 경제난국, 취업난국이라는 말은 이런 사례만 봐도 확실히 알아볼 수 있다. 얼마나 힘들면 군복무기간을 연장할까. 군대에서 2년 동안 아무 준비도 할 수 없었던 군인들은 이른바 '사바세계'가 되어버린 현 사회에 도전장을 내밀기가 영 시원치 않다. 복학하기에도 등록금이 겁나서 학교를 못 간다. 때문에 대부분의 갓 제대한 예비역들은 제대하자마자 '알바'를 하기에 바쁘다. 돈을 벌어야 학교든 뭐든 할 수 있을 것이 아닌가.

내 친구와 그의 애마
 내 친구와 그의 애마
ⓒ 정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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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4월에 군을 막 제대하고 '알바'를 하고 있는 내 친구 임상우(23)를 소개한다. 굳이 이 친구를 기사로 쓰려는 이유를 밝힌다면, 이 친구의 알바가 스물 셋 '꼬마'가 하기에는 평범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이 친구는 약 두 달 전부터 택시기사를 한다. 물론 개인택시는 아니고, 회사 택시다. 이 친구가 이 일을 하게된 계기부터, 하면서 겪은 일들이 어떨까 하는 궁금증이 밀려온다.

- 이 일을 하게 된 계기는.
"제대하고 나서 대학에 복학하지 않고, 바로 일을 하기로 한 결정적 이유 중 하나는 '학비'였다. 어머니 혼자서 가족을 부양하시고, 큰 누나와 작은 누나는 대학을 졸업했다. 큰 누나는 이미 결혼도 하고 독립했으며, 작은 누나 역시 곧 결혼한다. 때문에 나만 가족들의 걱정거리로 남는 것을 원치 않았다. 학자금 대출을 하여 학비를 충당한다 해도, '대출하고서도 일해서 갚을 수밖에 없는 학비'는 평생의 걱정거리로 남을 것이다.

제대하기 얼마 전, 모든 말년 병장들이 그러하듯, 나 역시 군에서 나가면 무슨 일을 할까 고민했다. 나이트 클럽 웨이터, 호스트 등 할 수 있을 것 같은 일, 그렇지 못할 일들에 대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놨다. 그러던 중 문득 택시기사를 할 생각을 해봤고, 그 일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했다.

하지만, 20대의 젊은 나이에 돈을 위해서만 일하고 싶지는 않았다. 물론 학비를 벌기 위해서는 돈도 중요했지만, 그러면서도, 언젠가 자신의 큰 재산이 될 다양한 경험을 쌓을 수 있는 일을 하고자 했다. 돈과 20대에 할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의 두 마리 토끼를 전부 잡을 수 있는 일을 원했다.

택시기사란 일은 그런 목적에 매우 잘 맞는 선택이었다. 다양한 사람들과 만나고, 소통하면서 사회를 만날 수 있고, 사람을 보는 눈도 키울 수 있다. 또한 그 만큼 다양한 경험을 얻을 수 있다. 게다가 운전 실력도 늘고, 서울 지리도 잘 알게되니 도랑치고 가재잡는 격이 아닌가."

하루를 마무리하고 오늘 번 돈을 계산하고 있다.
 하루를 마무리하고 오늘 번 돈을 계산하고 있다.
ⓒ 정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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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면서 배운 것이 있나.
"하기 전에 생각했던 것처럼 운전실력과 서울지리를 아는 눈, 돈을 얻었다. 사실, 가장 기대했던 다양한 경험같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얻었는지 아닌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아직은 그 '보이지 않는 부분'이 피부로 느껴질만큼 강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언제나 보이는 것보다 보이지 않는 것이 더 가치있는 법이다. 이 일을 하기 전에 '이 일을 끝나면 내가 어떻게 변해있을까'를 자주 생각했다. 그리고 일을 하기 전과 후는 분명 다를 것이라 확신했다. 지금, 그 믿음은 아직 유효하다. 일을 하기 전과 후는 100% 다르지 않겠는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배움이 형성될 것이다."

- 가장 힘들었던 경험은 무엇인가.
"맨 처음 사고났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 손님을 태우고 가던 중, 길을 잘못 들어서 매우 당황했다. 일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경험도 부족하고 길도 잘 몰랐다. 안 그래도 손님에게 너무 미안했는데, 손님이 괜찮다고 위로해주셔서, 오히려 미안함은 더 컸다. 당황해서 식은 땀이 나고, 미안해서 몸둘 바를 모르고, 그런 상황에서 길을 거의 다 찾고 손님을 내려주려는 찰나에 사고가 났다.

정차된 트럭에 택시 뒷부분이 스쳤고, 작지만 철렁한 자국이 선명하게 남아버렸다. 처음 겪은 일이었고, 의연하게 대처할 정도로 작은 일도 아니었기 때문에, 매우 걱정했다. 다행히, 트럭 운전사분께서 아들 뻘인 사람에게 어떻게 돈을 받겠느냐며, 굉장히 낮은 가격으로 합의를 봐주셔서, 일은 잘 마무리 되었다. 그 일이 가장 기억에 남긴 하지만, 그것 말고도 힘든 일은 많다. 난데없이 짜증내고 뭐라고 하는 사람들을 맞을 때면 진이 다 빠진다."

- 하면서 가장 재미있었던 경험은 무엇인가.
"반포동에서 광화문으로 가는 여자손님을 태웠을 때가 기억난다. 그때 라디오에서는 '컬투쇼'라는 라디오 프로그램이 나왔고, 그 중 문제를 내고 맞추는 꼭지가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뒷 좌석에 앉은 손님이 진행자가 내는 문제에 소리를 내며 정답을 말했다. 그 손님은 계속 소리를 내며 문제의 답을 말했고, 나는 그 모습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먼저 손님에게 "자주 들으시나 봐요"라고 말을 걸고, 서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면서 목적지로 향했다. 심지어 그 손님이 내릴 때, 나에게 "다음에 뵈요… 아, 볼 수 있음 봐요"라고 말하기까지 했다. 기분 좋은 손님 한 명을 만났을 뿐인데, 그 날 하루가 전부 기분이 좋았다. 이처럼 조금의 배려가, 누군가에게 선명하게 자리남을 정도로, 좋은 추억이 될 수 있다."

그가 하루 12시간 동안 보고 있는 것은 책상이 아닌 이것이다.
 그가 하루 12시간 동안 보고 있는 것은 책상이 아닌 이것이다.
ⓒ 정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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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솔직히 안 힘든가.
"내 영업시간은 새벽 5시부터 오후 5시까지 12시간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것과 손님이 없을 때 스트레스를 참는 것 말고는 딱히 힘든 것은 없다. 다만 손님이 아예 없을 때가 가장 힘들다(그의 월급은 한 달에 90만원이다. 그리고 회사에서 지정한 '하루에 12만원'의 기준이 있어서, 그 날 번 돈이 그보다 적으면, 그 만큼 월급에서 차감되고, 그 이상이면, 그 만큼 본인이 갖는다고 한다). 월급에 맞춘 내 나름대로의 마지노선이 있다. 오전 10시에는 5만원, 11시에는 6만원, 12시에는 7만원이 벌려있어야, 무난하게 12만원을 넘길 수 있다. 그 마지노선을 넘기지 못한 상태에서 계속 손님이 없으면, 그때부터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는다. 때문에 처음 일을 배울 때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일에 익숙해졌고, 요즘에는 매일 흑자기 때문에 스트레스는 거의 없다."

- 꿈은 무엇인가.
"외과의사, 그것도 흉부외과. 고등학생 때, 난 막연하게 이과는 의대, 문과는 법대를 가야한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연하게 시작했던 그 꿈이 지금은 어떤 순간에도 나를 지탱해주는 강건한 힘이 되었다. 처음에는 마냥 돈 때문이었다. 솔직히 의사라면 우리나라에서 돈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직업 아닌가. 하지만 그 일에 대해 더 깊게 생각하고, 더 많이 알아갈수록 다른 이유들이 추가되었다. 하얀 가운의 권위를 얻을 수 있는, 그리고 가장 소중한 사람의 생명을 다루는, 그것도 그 부분에서 가장 중요한 심장을 다루는, 일이 흉부외과의사이기 때문에 그 일이 하고 싶다.

- 너무 교과서적인 대답이다.
"어느 순간부터 '흉부외과의사'라는 꿈을 부적처럼 달고 살았다. 고등학생 때, 미치도록 공부에 매진하게 해준 이유도 그것이었고, 힘든 일이 있어도 일어설 수 있게 해준 원동력도 그것이었다. 물론 그것이 전부는 아니지만, 인생을 굴곡지고 다양하게 살고 싶다."

- 앞으로의 계획은?
"의학전문대학원을 목표로 하고 있다(그는 현재 고려대학교 보건행정학과에 재학 중이다. 공식적으로, 대학교의 학사일정만으로는 의사가 될 수 없는 처지다). 때문에 앞으로 의학전문대학원에 입학하기 위해서라도, 그리고 졸업해서 의사자격증을 따기 위해서라도, 엄청나게 공부를 해야한다. 그러나 그런 식으로 자신의 젊음을 불태우고 싶지는 않다. 공부에 돌입하기 전에, 대학생활도 즐겨봐야하고, 굴곡진 경험도 겪어 봐야 한다.

일단 1년간은, 학비도 있고 해서, 일을 할 것이다. 게다가 남다른 특이한 일들을 할 것이다. 택시 일도 다음 달까지만 하고 그만할 예정이다. 일을 배우는 첫 달, 적응하는 두 번째 달, 익숙해지는 세 번째 달이면 알바는 충분하다. 이제 적응해서 보다 쉽게 돈을 벌 수 있는데 왜 그만두느냐고 누군가 말할지 모르겠지만, 그 만큼 돈보다는 일을 통해서 내가 얻게 될 다양한 경험을 중시한다."

꿈을 향한 티켓을 들고 있는 친구.
 꿈을 향한 티켓을 들고 있는 친구.
ⓒ 정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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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달부터 그는 야간 택시를 몰게 된다. 그리고 7월부터는 다른 일을 알아볼 것이다. 현재 그는 자동차정비시험을 준비하고 있으며, 상황에 따라서는 공사판에서 일을 할 수도 있고, 돌잔치 MC를 볼 수도 있고, 길거리에서 장사를 할 수도 있다. 그런 식으로 일을 한 후, 내년에 복학해서 일과 알바를 병행하여 학교를 졸업할 예정이다.

이렇게 사회는 혹독하지만, 죽으란 법은 없다. 돈에 치이고, 취직에 차이는 젊은이가 사회에 맞서 대응하려면 꿈을 꾸는 수밖에 없다. 짙은 안개가 깔린 듯 한 치 앞도 안 보이는 길을 가려면, 일단 등불을 켜야 한다.

지금 하는 일이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더 중요한 법이다. 무엇을 해야하나 누가 알려주길 기다리고 있으면 안 된다. 뭐든 해서 뭐든 배우는 것이 젊음의 특권이 아닌가.

문득 인터뷰를 마무리하면서 그가 했던 "내 택시를 타는 사람 하나하나가 나를 반죽한다고 생각해"라는 말이 떠올랐다. 꿈을 향한 확신이 있다면 모든 길은 그 꿈을 향할 것이다.


태그:#20대, #젊은이, #꿈, #택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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