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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방문한 마을의 돌담집 앞에서
▲ 이날 방문한 마을의 돌담집 앞에서 이날 방문한 마을의 돌담집 앞에서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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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새 날은 저물고...모든 집마다 이웃집으로 가란다

해가 저물어 간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앞뒤는 도로, 좌우는 산, 산이다!

"앗! 도로 아래쪽에 뭔가가 보인다!!"

시골에 있을 법한 큰 아름드리 나무를 지나 좀 더 아래쪽으로 내려가자 좁은 골목길이 나오고 초등학교가 보인다. 초등학교의 갈색 담벼락을 따라서 왼쪽으로 돌아서니 시야가 트였다. 오른편에는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는 작은 강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고, 왼편에는 큼지막한 돌들을 덕지덕지 붙여서 만든 '돌담 집'이 50미터 가량 길게 이어져 있다.

강 건너 편으로는 작은 집들이 한두 채 보인다. '방을 구해야 한다'는 조급한 마음에 우선 마을의 안쪽에서 바깥으로 나오면서 '집집마다 문을 두드려 보자!'는 생각으로 마을에 들어섰다. 첫 번째 집, 한국 민속촌에나 있을 법한 크고 단단한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왠지 '이리 오너라~' 해보고 싶었지만……. 조심스레 문을 두드려본다. '쿵쿵!' 아주머니 한 분이 나오더니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본다. 말이 통하지 않아 자전거를 타는 시늉을 하면서 최대한 공손하게 말한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국에서 온 대학생입니다. 지금 자전거 여행 중입니다. 혹시, 빈방이……. 없을까요?"
"없어요."

'묵묵무답', 그러고는 강 건너 편을 가리키면서 '있어요!'라고 한다. 아마 강 건너 집에 빈방이 있다는 말 같다. 150미터 정도 되는 강을 건너가는데 벌써 어둠이 짙어졌다. 아주머니가 가르쳐준 집에 도착했다. 소형차 한 대 정도는 쉽게 통과할 만한 문이 있는 집이다. '안녕하세요.' 인사하고 아저씨에게 상황을 설명하자 이전 아주머니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없다'고 말한다. 그리고 역시 강 건너편을 가리킨다. '길에서 야영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으로 터벅터벅 길을 걷다가 한 가족을 만났다. 하루 일과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아저씨와 아주머니, 초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남자아이와 어린 여자아이가 날 보고 살며시 웃는다.

꼬마 친구들에게 사정을 이야기하자 자기가 아는 집이 있다며 따라오란다. 자신감에 가득 찬 꼬마 친구의 표정을 따라 '아는 집'을 찾아 갔지만, 안에서 야단맞는 소리가 문 밖으로 들려온다. 잠시 후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꼬마 친구가 나타났다.

"괜찮아!" 웃으면서 집으로 가보라는 손짓을 했다. 몇 집 더 문을 두드리다 보니 어느덧 마을 초입의 초등학교 앞까지 도착해버렸다. 아마도 추천문화(?)가 발달한 이 동네 사람들은 이웃집 사정은 잘 알아도 이웃 마음속까지는 잘 모르는 것 같다.

어느덧 달이 떴다. 채 10미터 앞이 잘 보이지 않는다. 깊은 숲 속 버려진 저택에 있을 법한 쇠 창살 문이 초등학교 입구를 막고 있다. '끼익~' 하는 소리로 인사를 대신하고 안으로 들어가자 친근한 흙 운동장과 갈색 벽돌의 작은 단층 짜리 초등학교 건물이 날 기다린다. '그래도 건물 안은 따뜻하겠지?' 하는 생각으로 조심스레 교실 쪽으로 가보니 녹슨 자물쇠가 걸려있고 창문은 몇 개가 깨져 있다. 교실에 책상은 거의 보이지 않고, 휑한 공간에 의자만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다.

'아, 폐교로구나……'

깨진 창문 사이로 들어갈 수는 있겠지만 으스스한 분위기에 쉽게 잠이 올 것 같지 않다. 그저 '빨리 자고 싶다'는 생각에 건물 구석의 벽에 텐트를 치고 몸을 뉘였다. 슬리핑 백 속에 들어가 눈을 감고 있으니 잠이 오기 좋을 만큼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막 잠이 들려는데 어디선가 사람들의 발자국 소리가 들리더니 점점 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텐트에서 취침..잠이 들려는데 낯선 방문객들이 찾아오다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벽쪽 근처에 텐트를 쳤다.
▲ 잠을 청했던 폐교 운동장 사진에 보이는 오른쪽 벽쪽 근처에 텐트를 쳤다.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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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마 이쪽으로 오는 건 아니겠지?' 마음속으로 제발 발각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면서 소리가 멀어지기만을 숨죽여 기다리는데 불빛들이 텐트 속을 비추기 시작했고 말소리들이 오고 간다. '그냥 자는 척 하고 있을까…, 일단 나가보자!'라는 생각에 텐트 문을 열고 나가니, 중·고등학생쯤 되어 보이는 친구들 7~8명이 텐트 주위를 반원으로 둘러싸고 있다.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장면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대장으로 보이는 한 친구가 다가와 중학교 영어 수업 시간에 회화연습하는 것처럼 또박또박한 말투로 질문을 한다.

"어디서 왔어요? 여기서 뭐하세요? 괜찮겠어요?"
"하하~ 괜찮아요!"

질문을 했던 친구가 잘 자라는 인사를 하며 손바닥만한 큰 과자를 하나 쥐어준다. 안도의 한숨을 쉬며 다시 텐트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과자를 주고 간 친구가 다시 돌아왔다.

"저기 괜찮으면 저하고 같이 가실래요?"
"네? 괜찮아요!"
"그러지 말고, 같이 가시죠!"

막무가내다. 서둘러서 짐을 챙기고 작은 손전등 하나를 의지해서 처음 마을로 진입했던 작은 언덕으로 자전거를 끌고 올라가는데 짐 무게 때문에 움직임이 느리다. 갑자기 자전거 바퀴가 작은 비탈길을 달려 올라가기 시작했다. 친구가 뒤에서 밀고 있었던 것, 거의 달리다시피 비탈길을 올라가자 작은 돌담 집이 보인다. 안으로 들어가자 아까 같이 왔던 친구들이 기다리고 있다.

공핑이 먼저 나서서 필자를 초대해주고 배려해주었다.
▲ 필자를 초대해준 친구들(왼쪽이 리더인 공핑) 공핑이 먼저 나서서 필자를 초대해주고 배려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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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먹었어요?"
"아니요……."
"잠깐만 기다리세요!"

가마솥에 약간의 고기와 야채를 넣고 중국집에서 음식을 하는 것처럼 '슥슥~' 순식간에 요리가 완성되고 큰 밥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준다. 밥을 맛있게 먹자 다들 좋아한다. 보통 밥을 권하면 두 번 이상 먹는다.^^; 식사를 끝내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둥그런 천정에 벽도 바닥도 차가운 시멘트 빛깔이 가득하다. 오른쪽 공간 네 귀퉁이의 부서진 돌 위에 기다란 합판을 올리고 다시 그 위에 수 백 번은 세탁했을 법한 색 바랜 시트가 덮인 간이침대가 구석에 두 개, 통로 쪽에도 하나씩 마주보고 있다. 왼쪽에는 50센티미터 높이 정도에 예닐곱 명은 너끈히 누울 만한 넓이의 돌 평상이 있으며, 천정의 칠은 반 이상이 벗겨져 있었다.

정말 피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곳 같았다.
▲ 친구들이 머물고 있던 공동숙소 정말 피난민들이 머물고 있는 곳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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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 늦은 등교 길 끝에 쑥스러운 마음으로 교실 문을 열었을 때처럼 무수한 눈동자들이 일제히 나를 응시했다. 다행스러운 것은 대부분 눈동자들이 웃고 있었다는 점……. '하하~' 크게 한 번 웃고, 알고 있는 중국어들을 총동원! 나의 어색한 발음 때문인지 다들 즐거워한다. 그만 나가자는 친구를 따라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와서 처음에 알려준 야외 임시막사로 들어가려는데 다른 방 쪽으로 안내한다. 짐을 가지려 가려고 하자 이미 다 옮겼단다. 날 안내해준 친구와 자연스럽게 대화가 이어졌다.

"공핑! 여기가 네 고향이니?"
"아니, 구이저우 구이양에서 살고 있어. 여기는 일하러 온 거야."
"몇 살이야?"
"15살~"

청결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 친구들이 머물고 있던 공동숙소 청결이란 말은 찾아볼 수 없었지만, 그들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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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돈을 벌기 위해 고향을 떠나다

보통 또래 아이라면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한창 친구들과 뛰어 놀아야 할 나이지만, 이 친구는 가족들과 떨어져 살면서 산 위에 있는 전기회사에서 고된 일을 하고 있었다. 친구는 피곤했는지 '잘자~'라는 인사를 하고 바로 자리에 누웠다. 나도 피로가 몰려왔지만, 왠지 마음 한 구석이 허전한 것이 쉽게 잠이 오지 않았다.

사실 이 집은 마지막에 왔던 집이다. 그 때는 '사람이 많아서' 도저히 재워 달라는 엄두가 나지 않아 그냥 나온 거였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이방인'이 잠 잘 곳을 찾지 못했을까봐 일부러 폐교에 자고 있던 나를 찾아온 것이다. 그런 이들을 잠시나마 경계했던 내 자신이 부끄러워진다. 이곳은 정말 임시숙소라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 마치 전시 때 피난민들이 임시 생활하는 곳처럼 10대부터 40대까지 다양한 연령대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는 모습에 마음이 아파온다. 이곳에서 5개월 동안 그들은 오직 '희망'을 마음에 품고 자본주의의 도구로써 노동력을 제공하러 온 것이다. 이런저런 생각이 계속 가슴을 두드려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옆으로 몸을 돌리자 바로 옆 사람과 어깨가 부딪힌다. 밖에서는 쉽게 잠이 오지 않을 만큼 바람 소리가 들려온다.

저기 맨 오른쪽에 필자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정말 옆으로 몸을 돌리면 옆 사람과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잤다.
▲ 필자가 묵었던 숙소 저기 맨 오른쪽에 필자의 자리를 마련해주었다. 정말 옆으로 몸을 돌리면 옆 사람과 어깨가 부딪힐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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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노트에 희망을 적으면, 정말 희망이 이루어질 것처럼... 
마음을 담아 한자 한자 적고 있는 공핑
▲ 희망노트에 희망을 적고있는 공핑 희망노트에 희망을 적으면, 정말 희망이 이루어질 것처럼... 마음을 담아 한자 한자 적고 있는 공핑
ⓒ 박정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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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말
< 공핑의 3가지 희망 >
1) 더욱 더 노력해서 발전하고, 열심히 돈을 벌어서 30살에는 자리잡고 싶습니다.
2) 부모님께 효도하고, 친구들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고 싶습니다.
3) 착한 여자친구를 만나서 낭만적이고 아름다운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 희망여행 소개 >
* 여행테마: 희망
* 여행기간: 1055일(2006.5.16 ~ 2009.4.7 )
* 주행거리: 27,000km
* 여행국가: 16개국(몽골, 중국, 인도, 미국, 쿠바, 베네수엘라, 콜롬비아, 에콰도르, 페루, 볼리비아
칠레, 아르헨티나, 우루과이, 파라과이, 브라질, 일본)
* 여행경비: 4개월 동안의 막노동과 대학에서 후원 받은 경비로 기본 물품을 준비했고,  '뜻이 있는 곳에 길이 있다.'는 믿음으로, 통장에 200만원, 주머니에 30만원을 들고 자전거 세계여행을 시작했습니다. 감사하게도 부족한 경비의 대부분은 뜻있는 네티즌과 길 위의 천사들이 밥이나 먹고 다니라고 몰래 쥐어준 '사랑의 점심 값'으로 채워졌습니다.

# 자전거 세계여행을 꿈꾸게 된 과정, 여행이 한 여행자에게 준 변화, 여행 이후의 '비전'에 대해 함께 나누고 싶으신 분들은, 아래 링크를 클릭하시면 동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21200510

덧붙이는 글 | 자전거 세계여행은 2006년부터 2008년 했으며, 중국은 2006년 5-8월에 여행했습니다. 이 글은 2006년 여름에 겪은 내용입니다.



태그:#희망여행, #킵워킹펀드, #자전거세계일주, #중국여행, #자전거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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