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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말해보자. '불법체류자'라고 하면 무슨 생각이 떠오르는가? 무섭다. '불법'이라서 불법행위를 저지르고 다닐 것 같고, 이태원에 대한 흉흉한 소문들도 떠오른다. 다가가기 어렵고, 왠지 말도 안 통할 것 같다. 지저분해서 옆에 있으면 냄새가 날 것 같다. 이것이 꾸며내지 않은 솔직한 심정이다.

물론 책에서, 뉴스에서 보고 배운 대로라면 그들은 우리의 '이웃'이지만, 전혀 피부에 와 닿지 않는다. 나는 그토록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주노동자 문제를 알아볼 필요가 있어서 <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 펴냄)를 우연히 펼쳐든 후, 나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숨죽이고 읽어 내려갔다. 무엇이 나를 이토록 끌어들였을까?

<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 책 표지
▲ 말해요, 찬드라 <말해요, 찬드라>(삶이보이는창) 책 표지
ⓒ 삶이보이는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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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읽는 내내 책이 나를 괴롭혔기 때문이다. 나는 불법체류자들의 인권 개선을 위한 업무에 지원해둔 상태다. 그들의 실상을 알아서라기 보다는 막연히 '인권향상'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해서라고 말해야 솔직하겠다. 이 책은 도대체 이주노동자가 '무엇' 때문에 힘든건지 '정말 몰라서' 펼쳐든 것이다.

그들의 삶은 말 그대로 참담했다. 그토록 오고 싶어 했던 한국에서 열이틀 만에 숨진 죠죠묘, 한국인 사장에게 두 손을 위로 묶이고 매달려서 몽둥이로 두들겨 맞은 올리 형, 행색이 초라하고 말이 통하지 않는다고 정신병원에 6년 4개월을 갇힌 찬드라, '너희 줄 돈으로 새 공장 지었다'며 자랑하는 임금체불 사장…. 이 뿐이겠는가. 이 책에 실린 서른 여개의 사연은 매우 적은 일부이리라 싶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본다. 만약 그들이 내 가족이고, 이웃이고, 친구였으면 과연 내가 지금처럼 앉아서 한가로이 글이나 쓰고 있을까? 책을 읽는 이 순간에도 달려나가 그들을 도울 용기는 쉽게 생기지 않는다.

나는 저자를 보면서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의 저자 이란주는 오랫동안 외국인이주노동자를 도와 상담활동을 해온 사람이다. 모른 척하고 살면 더 편하게 안온한 삶을 살 수 있는데, 사서 고생하는 사람이다. 이주노동자를 돕는 활동가라고 해서 괴롭다고 술 먹고 아무데나 오줌을 싸는 사람들, 돈 없다고 도와달라는 사람들, 지저분한 행색을 한 이주노동자들을 돕는 게 쉬울까.

다른 점이라면 저자는 그 사람들에게 책임감을 느끼고 연민을 느끼고, 또 우정을 느낀다는 것이다. 우리가 모르던 사람과 친구가 되면, 기쁨과 슬픔을 함께 나누는 것처럼 말이다.

책을 읽다 보면 곳곳에서 필자의 불평 섞인 목소리가 들리고, 무기력한 자신에게 실망하는 모습도 보인다. 일기장처럼 자신의 감정을 털어놓은 저자의 솔직한 심정이다. 이 책이 진솔하게 읽히는 이유도 그 때문일테다. 하지만 보통 사람 같으면 어느 정도 선에서 그만뒀을 일을, 저자는 '그래도 내가 도와줘야지'라는 마음으로 같이 한다.

이런 안타까운 사정과 이야기에도 불구하고 '다문화사회' 한국은 아직 냉랭하다. 그 이유는 뭘까?

우리가 불법체류자를 두려워하는 이유 중 하나는 범죄 가능성 때문일 것이다. 국내 외국인 수가 늘어나면서 외국인들로 인한 범죄건수도 급증하고 있고, 범죄는 점차 조직집단화 하고 있다. 범죄도 대부분 강력 사건에 집중되어 있다. 불법체류자의 경우 범죄를 저질러도 추적할 길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자신은 '노동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큰 문제일 것이다. 용산참사가 발생했을 때도 그렇고, 쌍용차 파업 때도 마찬가지로 노동자가 길거리로 나서면 많은 '시민'들이 눈부터 흘기는 것이 현실이다. 마치 '시민'과 '노동자'가 서로 다른 계급인 것처럼.

대한민국에서 노동자는 아프다. 2003년에 이 책을 펴내면서 미등록노동자들의 처지가 10년 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저자는 한탄했는데. 6년이 지난 지금은 좀 나아졌을까?

나 자신부터 돌아봐야겠다. 아직도 내 마음 구석에는 그들을 도와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들과 섞이기를 두려워하는 마음이 공존하는 듯하다. 나 자신의 이중성에 다시 한 번 몸서리친다.

덧붙이는 글 | <말해요, 찬드라>(2003),이란주 지음, 삶이보이는창 펴냄



말해요, 찬드라 - 불법 대한민국 외국인 이주 노동자의 삶의 이야기

이란주 지음, 삶창(삶이보이는창)(2003)


태그:#말해요 찬드라, #이주노동자, #불법체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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