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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신종플루 환자가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10월28일 오전 서울 양천구 이대목동병원에 의심환자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루고 있다.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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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거나 만지지 말랬지?"

감기에 걸린 세 살짜리 아이와 함께 병원에서 돌아오는 길, 10여 분이 몇 시간은 된 듯 길게만 느껴졌다. 아들 녀석은 넘치는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에 들어오는 모든 것에 관심을 뒀다. 관심을 두기만 하면 차라리 좋기나 하지. 기어이 만져봐야만 직성이 풀리는지 보이는 것마다 손 먼저 뻗었다.

인도와 차도를 분리하는 분리대를 만지작만지작, 인형 뽑기 게임기도 만지작만지작, 세워져 있는 오토바이 바퀴도 만져보고, 와플 가게에서 매달아놓은 닭 모양 인형도 만져보고, 문방구 앞에 놓인 뽑기통에서 뽑기를 하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그러는 동안 아이 손은 점점 새까매져갔다. 내 눈이 절로 찌푸려졌고, 입에서는 연신 '안 돼', '만지지 마', '손, 입으로 가져가지 마', '제발' 등등 잔소리가 끊임없이 새어 나왔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 걸음을 재촉해 집으로 돌아와서 옷을 벗기고, 손까지 씻기고 나니 진이 다 빠져버렸다. 그러면서 다짐했다.

'다시는 요놈이랑 같이 외출하나 봐라.'

느긋하던 나를 '안절부절 엄마'로 만든 신종플루

아이와 외출하는 게 늘 이렇게 힘든 것은 아니었다. 나에게도 어느 정도의 더러움을 허할만한 아량은 있었다. 유치원에 다니는 큰 놈이 놀이터에서 신나게 놀고 들어와 주머니에서 모래를 한 무더기로 내어놓고, 새까매진 손발을 내밀어도 신나게 놀았겠구나 싶어 흐뭇해했다.

또 작은 녀석이 산책길에 만나는 사물들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만져볼 때도 '그래 그 나이 때는 손으로 만져봐야 궁금한 게 풀리지'하며 내버려 두었다. 함께 간 옆집 아이 엄마가 '애 좀 말려요'하는 소리에도 '내비둬~ 나 어렸을 적에 우리 동네 애들은 저보다 더 했는데도 잘만 컸어'하면서 적당한 더러움이 면역력을 길러준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때는 그랬다.

하지만 고 녀석, 신종플루가 우리 주변을 덮치고부터는 내 마음도 안절부절이 되어 갔다. 학교 갈 시간이 넘는 시각에 몇몇 아이들이 아파트 단지를 돌아다녔고, 그로부터 얼마 후 인근에 있는 초등학교가 휴교를 했다. 친하게 지내는 이웃 아이네 유치원이 휴원을 했다는 소식이 들려왔고, 결국 며칠 전에는 우리 아이가 다니는 유치원마저도 신종플루 확진자가 있어서 휴원 한다는 연락이 왔다. 언론에서는 신종플루로 인한 사망자 수를 연일 보도했고 그 중에는 고위험군에 포함되지 않는 이도 있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우리 아이라고 안심할 수 없었다.

몇 달 전에 샀다가 아무렇게나 내버려둔 손소독제를 꺼내놓았고, 아이가 기저귀를 뗀 뒤로 구입하지 않았던 물티슈를 다시 사다놓았다. 외출할 때는 앞에 두 가지 것과 손 세정제를 꼭 챙겼다. 아이를 감시하는 눈초리도 늦추지 않았다. 행여나 뭔가를 만진 손을 입으로 가져갈까봐 손만 유심히 쳐다봤다. 그러다 아이가 손을 입 근처로 가져가기라도 할라치면 최대한 빠르게 아이 이름을 불러 제동을 걸었다.

느긋하던 마음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외출해 있는 동안은 늘 조바심이 났다. 어서 빨리 일 보고 집에 가야지 하는 마음만 가득했다. 그렇다보니 자연 아이와 함께 외출할 기회가 적어졌다. 서점을 데리고 가고 싶어도 망설여졌고, 도서관이나 놀이터를 향하는 발걸음도 줄었다. 큰 놈이 마트라도 가자고 하는 날에는 신종플루 핑계를 댔다. 아이도 유치원에서 교육 받은 게 있어서인지 신종플루 얘기를 꺼내면 마지못해 수긍을 했다.

신종플루가 몰고 온 텔레비전 괴물

그런데 집에만 있다 보니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큰 아이가 텔레비전만 보려 든다는 것이다.

"엄마, 나 심심한데 뭐 해?"

대한의사협회와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지난 8월2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책과 감염시 대처방법 등을 홍보하기 위해 '신종플루 안내 및 상담센터'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손 씻는 요령 및 치료거점병원에 대해 안내를 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와 서울시의사회 소속 의사들이 지난 8월27일 오후 서울 시청광장에서 신종 인플루엔자 예방책과 감염시 대처방법 등을 홍보하기 위해 '신종플루 안내 및 상담센터'를 설치해 시민들에게 손 씻는 요령 및 치료거점병원에 대해 안내를 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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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은 텔레비전을 보고 싶다는 뜻. 짐짓 모른 채 하고 '책을 읽든지 그림을 그리든지'라고 말해 보았지만 먹히지 않았다. 계속 '심심한데 뭐 해?'하며 목청을 돋웠다. 그때부터 텔레비전을 보려는 아이와 그걸 막으려는 나의 실랑이가 이어졌다. 그게 자꾸 반복되다 보니 아이는 아이대로 불만이고 나는 나대로 짜증이 일기 일쑤였다. 거기다가 아이 둘이 하루 온종일 어지르는 통에 집안일은 줄지가 않았다. 피로가 어깨를 묵직하게 눌러왔다.

할 수 없이 집에 있는 시간을 줄이기로 했다. 그리고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 그래서 조금은 안심할 수 있는 곳을 떠올렸다. 아이들 탈거리를 차에 싣고 한강공원엘 가기도 했고, 서오릉 숲길을 걷기도 했다. 집에서 멀지 않은 청와대 앞길도 아이와 함께 찾은 곳 중 하나였다. 몸이 좀 고달프기는 했지만, 텔레비전 앞에서 아이를 떼어놓자니 어쩔 수 없었다. 물론 거기라고 신종플루의 위협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사람들과의 부딪힘이 적은 곳이라 조금은 안전하게 느껴져서였다.

피할 수 없다면 맞서라고 했던가. 그러기에는 내 아이들이 너무 어리고. 그렇다면 친구가 되는 것은 어떨까? 그래서 가끔은 그런 생각도 한다. 차라리 신종플루에 살짝 노출이 됐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아주 작게, 아주 가볍게, 본인도 모를 정도로 약하게 앓고 지나갔으면 좋겠다고. 역시 무모한 생각인가?


태그:#신종플루, #유치원 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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