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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종종 제 앞에서 옷을 훌렁 벗습니다. 아들이니까 부끄럽지 않나봐요. 그때마다 제 눈은 그녀의 가슴에 닿지요. 왼쪽 유방을 자른 후 꿰메진, 호치키스 같은 자국에. 한 쪽 가슴이 없는 엄마를 볼 때마다 조용히 생각합니다. 나, 언제야 당신을 알게 될는지요.

6년 전, 엄마는 죽음과 싸우고 있었어요. 유방암 3기. 회복을 확신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항암치료가 시작되었습니다. 머리가.. 머리가 빠지기 시작했어요. 돌이켜보면 그때의 아침은 그녀에게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잠에서 깬 엄마가, 당신의 머리를 누인 곳에 쌓여져있는 수많은 머리카락을 쓸어만지다가 결국, 흐느꼈던 날들이었습니다. 저는 다만 무기력했지요. 

전 무기력할 뿐 아니라 또한 무책임했습니다. 대학에서 1주일마다 신문을 만들던 저는, 엄마의 아픔을 잘 돌아보지 못했어요. 병원조차 동행하지 못했지요. 그러던 어느 날. 시간을 내어 선심쓰듯 엄마와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때도 저는 기사를 쓰기 위해 책을 읽고 있었네요. 바쁘게 읽어내리다 무심코 옆을 보았는데 아아, 스카프로 민머리를 감싼 울 엄마가, 멍하니 앉아있었어요. 순간 경악하며 책을 떨어트렸습니다. 그 책의 이름은 <다이어트와 성정치>였어요. 갑자기 나 자신이 진실로 역겨워서 토할 것 같았지요. 그 책을 다시는 읽지 않았고, 곧 대학신문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욕망이 하나 생겼네요. 엄마를 알고 싶다는. 왜냐면, 왜냐면요... 언젠가 울 엄마는 죽을 테니까요. 죽는다는 걸 상기하면 소중한 것이 다시 보여지니까요. 떠나기 전에 엄마를 속속들이 알기 원했습니다. 알게 되고 기억한다면, 없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에요.

엄마, 알고 싶어. 엄마의 어린시절은 어땠는지. 엄마의 첫사랑은 누구였는지. 엄마의 꿈은 디자이너였다던데, 꿈에 걸맞지 않게 촌스러운 점순, 이란 자신의 이름이 창피하진 않았을지. 대학에 떨어졌을 때 자살하려고 했다는 엄마의 절망도 듣고 싶어.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엄마, 라고 발음할 때 엄마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누나랑 나랑 매일같이 싸울 때 엄마는 맘이 아팠을까 아님 흐뭇해했을까...... 엄마도 한 여자일 텐데. 황홀한 욕망과 부푼 꿈이 있었을 한 인간일 텐데. 왜 엄마는 태어날 때부터 엄마인 것만 같을까. 알고 싶다, 울 엄마.

다행히 엄마는 회복되었어요. 투병의 기억은 점차 사라지고, 죽음의 두려움도 점점 없어지면서, 제 욕망도 차츰 식어갔죠. 다시, 그녀의 잔소리를 귀찮아하고 성가셔하게 된 거에요. 그러나 가끔씩 저는 혼자 소스라칩니다. 내게 엄마는 공기처럼 자연스러운 것인데, 만약 그 공기가 내일 사라진다면. 그 전에... 엄마를 더 알아야 할텐데.

엄마가 회복된 지 한참이 지난 어느 날. 그녀는 제게 보약을 지어준다며 한의원으로 저를 데려갔어요. 제 진찰이 끝나고, 의사의 권유에 그녀도 진찰을 받았죠. "유산한 적이 있나요?" 진찰이 끝난 후 의사가 던진 질문은 참 생소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대답했어요. "한 번... 한 번 있죠." 전 침묵하며, 다시 조용히 생각했습니다. 나, 언제야 당신을 알게 될는지요.

태그:#엄마, #울 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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