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걸려온 김용길 선생님의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출근길 아무래도 이상하다 싶어 전화를 걸었습니다. 저 너머에서 들여오는 가벼운 떨림의 목소리
"선생님, 서현수 선생님이 오늘 새벽 돌아가셨습니다."
갑자기 뜨거운 눈물이 흐르고 목이 메어왔습니다. 36세 젊은 나이의 참교사 한 분이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그를 처음 만난 건 광명의 한 고등학교였습니다. 10년 전 신규티를 벗지 못한 제 옆자리에 막 신규교사로 발령받았던 선한 모습이 생각납니다.
조급해 하는 저와 달리 여유 있고 항상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있던 그와 학급에서 일어나는 여러 가지 일들을 상의했습니다. 나이가 어렸지만 상대방의 처지를 배려하면서 조용히 행동으로 아이들을 이해하고 사랑했던 그였습니다. 누구보다 침착하고 품성이 훌륭해 주변 많은 이들이 좋아했고 따르고 존경했습니다.
그에게 전교조 활동을 같이 하자고 권유했습니다. 당시 학교장의 독선적 학교운영에 교사들의 불만은 높았고 인격적 무시로 상처를 입는 이들이 많았습니다. 다수 교사들은 침묵했고 답답한 학교 분위기에 젊은 교사들이 모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함께 하게 된 그와 학교를 옮기면서도 10년을 같이 했습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전교조 광명지회 활동을 같이 했습니다. 비평준화 탓에 학부모들과 학생들이 보이지 않는 차별로 고통받는 것을 이해하고 지역의 고교평준화를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교사의 교육 및 체험활동에 관심을 가져 지역 선생님들을 위한 교육과 연수에 열과 성을 다했습니다. 특히 환경과 생태에 관심이 많아 지역의 교사모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며 자신부터 앞장서 실천하기 위해 노력했던 모습이 지금도 선합니다.
수업, 학생상담, 야간자율학습 등 바쁜 일과 속에서도 항상 주변 사람들을 배려하고 편하게 해주려 했던 그가 이제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죽음을 앞두고도 주변인들에게 알리지 않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하려 했던 그에게 늘 그러하듯이 바쁜 일과를 핑계로 제대로 얼굴 보며 이야기하지 못하고 떠나보냈습니다.
서현수 선생님. 미안하고 송구하고 죄송합니다.
세상에 혼자 오셔서 흔적 없이 떠난 당신을 내 생애 마지막까지 기억하겠습니다. 품고 계셨던 그 뜻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이제는 아픔도 고통도 없는 좋은 곳으로 가셔서 행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안녕히 편히 가세요
2009.9.4
노용래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