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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금의 시국을 민주주의, 민생, 남북관계의 3대 위기라고 했던가. 요즘 남북관계와 북미관계를 다룬 기사들을 보다보면 6·15공동선언이 발표되고 까마득히 잊고 있었던 전쟁의 공포가 슬금슬금 되살아난다. 늘 지정학적 위치로 외세침략에 시달렸다는데 언제까지 동포끼리 총부리를 들이대며 으르렁거려야 할까. 우리에게 정말 평화와 통일이란 요원한 문제일까?

그러나 우리가 만난 강화도는 그 험난한 역사의 굴곡 속에서도 '평화와 통일, 그건 쉬운 일이야'라고 속삭이고 있었다. 이시우 평화사진작가와 함께 한 강화도 기행(6월 21일)은 우리에게 역사와 평화통일이란 상상력의 나래를 펼쳐주었다.

기울어짐의 균형, 고인돌의 미학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되어 있는 고인돌은 그 자체로도 충분한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그에 담긴 우리 선조들의 철학과 미학을 곁들이면 아주 새로운 매력으로 다가온다.

세계의 수많은 고인돌 중 한국에서 발견되는 고인돌만 살짝 기울어져 있다. 기울어졌기에 더욱 멋드러진 고인돌의 비밀은 바로 모멘트(기준점)에 있다. 중심을 잡는 기준점을 모멘트라고 할 때 고인돌은 받쳐주는 돌과 상석이 기울어짐으로써 서로 균형을 잡고 서 있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인돌은 기울어짐으로 균형을 이루는 우리 선조들의 미학과 철학을 말해준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된 고인돌은 기울어짐으로 균형을 이루는 우리 선조들의 미학과 철학을 말해준다.
ⓒ 안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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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히 고인돌만이 아니라 통일을 상상할 때도 마찬가지다.

남과 북의 서로 다른 체제와 사상이 존재하는데 이를 무리하게 내 쪽으로 세우려 하면 결국 서로 무너지고 만다.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방의 기울어짐에 맞춰 나도 기울어짐으로 오묘한 역사적 미학을 완성할 수 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통일철학이 아닐까. 바로 그런 점이 6·15공동선언 2항의 철학일지도 모르겠다.

군사분계선이 없는 민통선

"우리는 지금 민통선 안에 들어왔습니다."

검문소 앞에 멈춰 주민등록증을 제시하고 인원을 알려주는 동안 잠들어 있던 기행참가자들이 깨어나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야? 왜 검문하는데?"

검문소를 통과하여 차가 출발하자 비로소 참가자들은 우리가 민통선 안에 들어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사회과 부도에 보면 군사분계선은 서해 백령도에서 끝이 나는데 이는 거짓이다. 정전협정에 의하면 군사분계선은 육지에만 있다. 따라서 한강하구와 바다에는 군사분계선이 없으며 강화도의 민통선은 아무런 근거없이 군에서 일방적으로 만든 민통선에 불과하다. 또한 NLL을 군사분계선으로 규정하는 것도 아무런 근거가 없다.

바로 이시우 작가는 이 점에 착안하여 '평화의 배 띄우기' 운동을 시작하였다. 민간선박일 경우 한강하구에서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다는 법적 근거에 따라 유엔사의 '허가' 없이 북녘으로 향하는 배를 띄운 것이다. 물론 유엔사는 '등록된 선박만 가능'하다는 논리로 이를 막아섰다.

그렇다면 항공은 어떨까? 열기구를 만들어 비행하는 것은 어떤 법에도 저촉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실을 알고 먼저 보수단체들이 북에 삐라를 보내는 열기구를 띄웠다고 한다. 북을 자극하여 남북관계 긴장을 고조시키는 보수단체들의 행동은 법적 문제가 없으니 처벌할 수 없다는 정부의 논리를 그대로 적용한다면 우리가 평화의 열기구를 띄우는 것도 막아서는 안 되지만, 실제로는 막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화전망대에서 왼쪽으로 바라보면 강 한가운데 있는 섬이 보인다. 이 섬이 '나들섬'인데 이명박 대통령은 이 섬을 콘크리트로 발라버릴 계획을 발표하였다. 그럴 경우 북쪽과 영토분쟁, 한강상류의 홍수피해, 한강하구의 오염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한강하구를 평화적으로 이용할 것인가, 아니면 분쟁의 지역으로 만들 것인가가 한반도 평화문제를 좌지우지할 수도 있는 셈이다.

지척의 거리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지척의 거리를 자유로이 넘나들 수 있는 날은 언제일까.
ⓒ 안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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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통선 안 평화전망대에 올라서면 북녘 땅이 손에 잡힐 듯 보인다. 그 가까운 거리를 가로 막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유유히 흐르는 강물뿐…. 그럼에도 우리는 그 강물이 마치 금단의 선인 양 멀리서 망원경으로만 바라볼 뿐 다가설 엄두도 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강화도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긴 연미정

연미정은 얼마 전까지 민통선 안에 있어 출입이 자유롭지 못한 곳이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곳은 곳곳에 촬영금지 팻말이 서있고 군 초소도 쉽게 눈에 뜨인다. 이곳도 북녘과 지척에 있다.

한강하구를 바라보고 왼편의 논이 우리 역사에서 간척1호인 논이다. 몽골이 침입했을 당시 고려정부는 강화도로 옮겨왔다. 당시 10만 호(10만 세대)가 이주를 했다니 엄청난 인구가 강화도로 몰려온 것이다. 당시 강화도는 바다 위에 삐죽 솟은 산봉우리 사이마다 바닷물이 빠져나가면 생기는 갯벌이 있는 정도였다고 한다. 갑자기 늘어난 인구로 가장 곤란한 것은 식량문제였다. 고려정부는 갯벌간척을 결심하고 갯벌에 제방을 쌓아 바닷물을 막고 무수한 노력을 들여 논으로 개간을 한다. 그것이 지금 강화도의 모습을 만들었으니 강화도 그 자체가 몽골과 항쟁을 위해 만들어진 거대한 역사유적인 셈이다.

몽골은 당시 유럽으로 진출 중이어서 사실 고려에 많은 병력을 집중하지 않았고 따라서 강화에 대한 침략 의지도 별로 없었다. 그러나 그런 유라시아 정세를 꿰뚫어보면서 앞날을 대비할 사람이 우리에게는 없었다. 그저 몽골은 수군이 약하기 때문에 강화를 넘보지 못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에 빠져 있었다.

그러나 결국 고려는 몽골에 굴복했다. 연미정은 고려가 원나라에 항복문서를 바친 곳이라고 한다. 지금도 분단과 대립이 반복되는 한강은 지리적으로 전쟁의 최전선이 될 운명이다. 그런 한강일대에서 전쟁을 꿈꾸는 이들의 상상력을 깨고 평화와 통일의 상상력으로 채워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이시우 작가는 역설하였다.

  연미정
 연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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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재미있는 에피소드도 있다.

물살이 빨라 예전에는 서울로 조공물을 나르는 물길이었다는 이곳은 배를 그냥 띄워놓으면 북쪽을 향해 빠른 속도로 흘러간다고 한다. 어느 날 배 한 척이 밧줄이 풀려 물살에 휩쓸려 북쪽으로 흘러갔다. 그 배 안에는 배 주인이 선실에 잠들어 있었다. 해군은 배 주인을 깨우기 위해 총을 쏘고 포탄을 쏘았다. 강화도 주민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쏘아대도 배 주인은 일어날 줄 몰랐다. 그런데 그 배 주인을 깊은 잠에서 깨운 것은 핸드폰이었다고 한다.

총소리도, 대포소리도 아닌 핸드폰 소리에 잠을 깬 배 주인처럼, 분단의 아픔에 마취된 우리의 감각을 깨우는 것은 무력충돌이나 적대정책이 아닌 바로 조용한 평화와 화합의 실천이 아닐까 잠시 생각해 보았다.

연미정 곳곳에는 사진촬영을 금한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이 자체가 분단의 선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연미정 곳곳에는 사진촬영을 금한다는 푯말이 세워져 있다. 이 자체가 분단의 선을 강요하는 느낌이다.
ⓒ 안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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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론을 통해 본 보수의 의(義) 충렬사

충렬사는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 군대가 강화도로 쳐들오자 김상용을 비롯한 유학자들이 분신폭사한 희생자들의 위패를 모신 곳이다. 이 사건으로 노론은 향후 조선시대의 주류를 장악하였고 그 흐름이 지금 우리 사회의 보수진영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역사적으로 원칙을 지킬 것인가 실리를 택할 것인가 선택에서 흔히 사람들은 실리를 많이 선택한다.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원칙을 높게 평가한다. 그런 의미에서 김상용의 죽음은 큰 역사적 의미를 가졌다고 할 수 있다. 즉, 죽음으로 역사적 승리를 쟁취한 것이다.

김상용의 위패
 김상용의 위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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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용의 죽음은 조선시대 가장 큰 해악이라는 안동김씨세력을 만드는 결정적 역할을 했으나 그 정신이 남긴 철학적 문학적 성과도 있다.

청나라를 거부하는 그들의 반청의식은 조선이 중심이 되어야 한다는 '소중화'사상으로 표현되었다. 이런 정신 속에서 남겨진 문화적 유물들이 있으니 바로 진경산수화와 서포 김만중의 '구운몽'이다. 그때까지 중국의 것만 따라하던 유교적 관점을 깨고 우리의 것을 찾고 우리의 것을 일깨운 역할도 한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의(義)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김상용은 조선시대 이래 대표적인 보수세력의 상징이 되었는데 그의 죽음도 의였다. 그런데 조선을 위해 죽음을 선택한 그의 의는 역설적으로 기득권세력의 기반을 강화시켜주고 말았다.

의란 자신을 희생양으로 바치는 글꼴을 가지고 있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에도 보수는 스스로 옳다는 신념으로 자신의 몸까지 바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 단순히 나의 희생, 그것만 올바른 것일 수는 없다. 바로 우리의 정신은 정의(正義)이어야 한다.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선택의 순간에 우리는 무엇을 위해 희생할 것인가. 어떤 의를 지킬 것인가 사색을 남기는 곳이다.

시대담론에 대한 사색의 장 광성보

광성보는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역사가 얽혀 있는 곳이다. 병인양요는 1866년, 프랑스군이 강화도를 침략한 사건이다. 이때 당시 프랑스군을 격퇴할 임무를 받고 온 양헌수는 전등사 법당에서 결의를 다지며 기둥과 서까래에 묵서를 썼다. 그리고 그는 정족산성에서 프랑스군을 물리친다. 군사적으로 보면 열세에 있었던 조선군이 승리할 수 있었던 조건은 몇가지 있었다. 우선 양헌수의 지략이다. 그는 프랑스군과 맞서기 위해 정족산성으로 프랑스군을 유인한다. 즉, 유리한 고지에서 적들을 공격할 지략을 세운 것이다. 또 당시 프랑스군이 전면 전쟁을 원하지 않았던 것도 하나의 요인이다.

어쨌든 역사에 길이 남을 승리를 거둔 큰 사건이 병인양요였다.

광성보에서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광성보에서 병인양요에 대한 설명을 듣는 참가자들
ⓒ 안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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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후 있었던 신미양요는 달랐다. 병인양요 후 5년 뒤, 강화도를 침략한 나라는 미국이었고 프랑스와 다르게 조선침략 의지가 강했다. 갯벌로 상륙이 늦어진 미군을 조선군은 밤에 기습하였으나 대패하고 순식간에 초지진과 덕진진을 내주고 광성보에서 결전의 의지를 다졌다. 진무중군 어재연을 비롯한 조선의 병사들은 손돌목 돈대에서 마지막 일인까지 저항하고 전원 죽음을 맞이하였다. 신미양요는 최초로 사진으로 기록된 전쟁이라는데 당시 미군측이 찍은 손돌목 돈대 조선군 주검을 보면 관군이 아닌 일반인들도 포함되어 있다.

병인양요와 신미양요의 승패를 가름한 가장 큰 차이는 무엇일까. 그것은 적을 나에게 끌고와 유리한 고지에서 싸우는가, 아니면 적들이 유리한 고지로 내가 쳐들어가는가 하는 문제라고 이시우 작가는 해석하였다. 즉, 우리 스스로 담론을 형성하고 그 담론으로 상대를 끌어들이지 못하면 결국 우리는 주변을 맴도는 세력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는 것.

사회정치적으로 포지티브냐 네거티브냐 하는 문제가 역사적인 사건으로도 풀이될 수 있는 것이다.

시신조차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참담한 희생을 기리는 신미순의총 앞에서 우리는 근대민족국가의 완성에 대해 생각해 본다. 외세의 침략에 맞서 목숨조차 바치며 싸운 그분들 앞에서 분단의 상황은 너무나 부끄러운 일이다. 그분들이 죽음으로 지키고자 한 민족의 자주를 실현하는 길은 지금의 분단체제를 극복하는 길임을 새삼 느꼈다.

신미순의총 앞에서 근대민족국가 완성인 통일을 다짐하는 참가자들
 신미순의총 앞에서 근대민족국가 완성인 통일을 다짐하는 참가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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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서해안에서 군사적 충돌의 위험이 높아지고 손가락질을 해도 손목을 자르겠다는 강경발언까지 서슴지 않는 상황이 펼쳐지고 있다. 지금 이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길은 무엇일까. 물론 정부당국이 대북정책을 전환하고 다시 6·15로, 10·4선언으로 돌아가는 것이 해답이다. 그러나 그럴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일까. 민주주의의 소중함, 서민경제의 중요성과 함께 이를 뒷받침할 평화와 통일의 담론을 국민들의 상상력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안양본부는 지난 6월 21일 6·15공동선언 9주년 기념행사로 강화도 기행을 다녀왔다. 민통선 사진작가로 유명한 이시우 작가의 해설과 함께 만난 강화도는 새로운 역사적 해석과 평화통일의 상상력을 던져주었다.



태그:#강화도기행, #평화통일, #6.15공동선언, #이시우, #안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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