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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개의 레이저가 모이게 되는 홀라움 (hohlraum) .
ⓒ NIF,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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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31일, 뉴시스에 흥미있는 기사 하나가 올라왔다.

뉴시스 '美, 北 미사일 위협 와중에 초강력 레이저 공개'



미국의 한 연구소에서 핵무기 저장소를 보호하고 미사일을 요격할 수 있는 웬만한 집채만한 레이저 광선기둥을 쏘아올려 보는 이들의 탄성을 자아냈으며, 이 실험에는 아놀드 슈워제네거 캘리포니아 주지사도 참관하여 환영사를 발표하였다는 것이다.

이 기사는 유명 블로그와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웹사이트를 타고 빠르게 퍼졌고, SF에 나오던 스타워즈 무기가 현실로 다가왔다는 점에 환호와 지지를 보내는 댓글들이 달렸다.

필자는 이 내용에 대해 지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이상하다는 느낌과 함께 석연치 않은 생각이 떠올랐다. 레이저 무기는 기본적으로 작은 면적에 높은 에너지를 짧은 시간 안에 방출하여 공격한다. 그런데 '단면적이 웬만한 집채만한 거대한 레이저 광선기둥'은 무엇인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이다.

초강력 레이저 무기를 개발한 뉴시스 기사.
 초강력 레이저 무기를 개발한 뉴시스 기사.
ⓒ 화면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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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처음에는 구글 뉴스를 통해 영문 기사를 검색했다. 검색 엔진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실험에 관하여 많은 기사들을 내뱉기 시작했으나 그 어디에도 무기 실험에 관련된 내용은 없었다. 의구심은 점점 커져만 갔다. 결국 기사 관련 과거 동일한 구조의 AFP의 기사를 찾아내었고, 그 다음으로는 미주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포털 사이트에서 같은 실험에 대한 내용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코피아 실험실 핵융합시대 열리나?

두 기사를 비교해 본 결과는 놀라웠다. 미 핵무기 저장소 방어를 위해 만들어졌고 공격용 무기로도 쓰일 수 있다는 뉴시스 기사와 달리 무기 실험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레이저 핵융합 실험으로 청정 에너지개발과 천체 물리학의 미래가 밝다는 내용이 유코피아의 기사였다.

뉴시스 기사를 제외한 그 어디에서도 레이저 무기의 실험에 대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기에 실망과 함께 약간 흥분한 상태로 기사 날조에 대해 항의하는 메일을 보내게 되었다. 사실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우리 사회인지라 큰 기대는 하지 않고 있었다.

애초에 이런 류의 기사를 쓰는 사람들이 어떤 사고를 하고 있는지에 대한 생각을 해보지 않아 큰 기대는 하고 있지 않았었다. 그러나 뜻밖에도 답장은 전혀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날아들었다. 마치 철없는 젊은이를 나무라는 듯한 내용이 아닌가?(이 글을 쓰고 있는 이는 30대 중반이다.)

그래서 반박 자료를 수집하기 시작했다. 모 대학 물리학과에서 레이저를 연구하는 후배에게 연락하여 이 내용을 알렸고, 애초에 무기화가 불가능하다는 사실 확인과 함께 실험에 관련된 자료를 받았다. 미국에서 실험을 주관한 NIF에도 기사 내용에 대한 확인 요청 이메일을 보냈다. 심지어 캘리포니아 주지사 사무실에도 레이저 핵융합 실험이 레이저 병기로 소개되었고 그 실험에 주지사가 참여한 것으로 되어 있으니 확인을 바란다는 이메일을 넣었다. 아쉽게도 캘리포니아 주지사 사무실에서는 아직 답신이 없었으나, NIF에서는 얼마 지나지 않아 짧은 답장이 왔다.

The Naitonal Ignition Facility is not a tactical weapon. It is a R&D facility to achieve fusion ignition in a laboraotyr setting. Itcannot be used as a weapon.
"The National Ignition Facility는 전략적 무기가 아닙니다. 이것은 핵융합 점화를 위한 설비를 연구하는 시설입니다. 이것은 무기로 사용될 수 없습니다."

레이저 핵융합이 일어나는 실험실 내부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llnl/3421902499/in/set-72157607099824019/
▲ Inertial confinement fusion 레이저 핵융합이 일어나는 실험실 내부 *출처 : http://www.flickr.com/photos/llnl/3421902499/in/set-72157607099824019/
ⓒ ll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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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의 신뢰성을 확보한 이후, 뉴시스 기자에게 기사의 원문 요청과 내용이 사실일 경우 전화로 사과를 하겠다는 2차 항의메일을 보냈으나 아직까지 답장은 오지 않고 있다.

하루도 지나지 않아 뉴시스에 동일한 내용의 기사가 LA에 있는 기자 이름으로 실렸다.

美, 핵 융합 가능한 세계 최강 '슈퍼레이저' 공개

해외 특파원의 업무는 외국의 소식을 빠르게 모국어로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에 있다. 그 내용을 가감 또는 작문하여 알린다면 이것은 어떤 의도를 가지고 있는 것일까?

이 기사는 뉴시스, 미디어다음을 제외하고 뉴스 사이트로는 유일하게 조선일보에만 실렸다. 이것은 단순 오보인가 아닌가? 이 글을 읽는 독자분들께 이 판단을 맡겨본다.

덧붙이는 글 | *실제 실험 내용을 알 수 있는 관련 링크를 덧붙입니다.
위키피디아 http://en.wikipedia.org/wiki/Inertial_confinement_fusion
Natioanl Ignition Facility https://lasers.llnl.gov/
* 집채만한 것은 시설이며, 실제 실험에서 레이저는 상단의 사진에 보이는 홀라움이라는 부품 내부에 집속되게 됩니다. 실험에 사용된 레이저는 최종 단계에 x-ray 파장에 도달하게 되며 눈에 보이지 않습니다.



태그:#레이저, #핵융합, #북한, #미사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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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과 IT에 관심이 많은 시민입니다. 비과학적인 보도와 작문 기사에 지쳐 반박 기사를 쓰고 싶어서 지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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