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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대, 고려대, 경북대 등 24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역사교과서 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 역사 전공 대학원생'은 18일 오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를 규탄했다.
 서울대, 고려대, 경북대 등 24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역사교과서 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 역사 전공 대학원생'은 18일 오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를 규탄했다.
ⓒ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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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하의 한파가 매섭다. 겨울을 재촉하는 칼바람에 광화문 거리는 낙엽들로 수북하다. 쌓여가는 낙엽들을 꾸역꾸역 밟으며 모여드는 한 무리 사람들이 있었다. 이미 출근 시간을 훌쩍 넘긴 18일 오전 11시, 플래카드와 피켓을 손에 들고 교육과학기술부로 향하는 그들은 학생들이었다. 전국 역사학·역사교육 전공 대학원생들이 마침내 행동에 나선 것이다.

역사학자, 역사교사에 이어 이제는 학생들이다. 정부의 역사 교과서 개입으로 촉발된 갈등 국면의 전선이 이만큼 확장된 것이다. 내전으로 촉발된 역사 교과서 문제는 이미 브루스 커밍스(시카고대), 카터 에커트(하버드대) 등이 역사학자 선언에 동참하면서 해외로까지 확산되었다. 뉴라이트의 역사인식에 적잖은 영향을 준 카터 에커트 교수도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 보장’과, ‘정치적 목적 하에 진행 중인 교과서 수정작업 중단’이라는 상식적 주장에 응당 손을 들어준 것이다.

그간 한국이 성취한 근대화와 민주화를 높이 평가해 오던 해외 학자들이 이번 사태를 접하며 어떤 생각을 하게 될지 사뭇 걱정스럽다. 이래저래 MB 정부의 자충수로 다시금 국제적 망신을 산 꼴이다. 정부가 앞장서서 교과서를 수정하려는 작태를 부리는 판에, 일본 우익의 역사 왜곡을 규탄하기도 겸연쩍게 되었다.

서울대, 고려대, 경북대 등 24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역사교과서 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 역사 전공 대학원생'은 18일 오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를 규탄했다.
 서울대, 고려대, 경북대 등 24개 대학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있는 대학생들로 구성된 '역사교과서 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 역사 전공 대학원생'은 18일 오전 세종로 정부종합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의 역사교과서 수정 요구를 규탄했다.
ⓒ 이병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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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어이없는 사태를 접하고, 역사학·역사교육 전공 학생들이 집단행동에 나섰다. 현재 교과서를 집필하고 현장에서 가르치는 당사자가 아니라, 미래의 역사학자와 역사 교육자들이 직접 발 벗고 나섰다는 점이 예사롭지 않다. 학문 연마와 논문 집필에 몰두해도 시간이 모자라는 판에, 모임을 꾸리고 기자회견을 자청한 이들은 "공부만 하고 싶습니다"라는 소박한 바람을 절절하게 피력했다. 한 달 남짓한 기간에 전국 20여개 대학원에서 400여 명의 학생들이 서명과 모금에 동참했다는 사실에서도 이들이 절감하고 있는 사태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다. 기자회견을 위해 몸소 지방에서 참석한 이들도 눈에 띄었다.

이들은 오늘의 기자회견이 일회성 이벤트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모처럼 전국 단위의, 그리고 해외 학계와의 네트워크가 꾸려진 만큼 이를 계기로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진지전을 펼쳐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장기전의 대상은 비단 현 정부만을 가리키지 않는다.

학문의 자율성과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상식을 깨뜨린 MB 정부가 일차적 표적이지만, 그들의 시야 속에는 이미 타성에 젖어든 제도권 학문 자체에 대한 문제의식도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렵사리 발족한 모임이니만큼 기존의 좌와 우를 넘어서는 참신한 전망 속에서 새로운 학술운동의 거점으로 발전시키겠다는 당찬 포부도 들어있다. 역사학 밖의 다양한 인문, 사회과학과의 소통을 주도하겠다는 유연함도 돋보인다.

참으로 오랜만이다. 정부와 기존 학계에 비판적 긴장감을 유지하며 학술운동을 펼쳐나가겠다는 학계의 젊은 피의 등장이.이들의 향후 활동이 주목되는 까닭이다.

미래의 역사 교과서는 20여년의 관성을 떨쳐내고 학생 중심의 학술운동이 귀환한 계기와 그 '배후'로서 MB정부의 난맥상을 지목할 것이다. 현 정부의 몇 안 되는 ‘업적’ 가운데 하나로 서술될 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바로 이들이 이명박 정부를 평가할 미래의 역사학자들이기 때문이다. 미래의 역사학자들이 보내는 무서운 경고에 오늘의 권력은 겸허히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성 명 서 (안)

최근 일부 경제단체와 국방부, 뉴라이트 등이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의 서술 문제를 제기하면서 역사의 해석 문제가 다시 거론되고 있다. 이 문제는 이미 2004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역사학계는 이러한 문제 제기가 과거 사실에 대한 학문적인 해석여부와는 상관없이 특정 당파나 집단의 이익과 관련된 것임을 밝히면서 적극적으로 대처해 왔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가 등장하면서 권력을 등에 업은 이들은 역사학자들을 ‘좌파’로 몰아세우고,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 채택된 역사 교과서를 자신의 입맛에 맞게 강제적으로 수정하려 하고 있다.
그들은 한국 현대사에 있어 가장 소중하게 여겨왔던 민주주의적 가치들을 후진국의 특징인양 폄하하고 있다. 또한 경제성장이라는 잣대로 지난 독재정권의 부당한 권력욕을 미화하기 위해 ‘시대정신’과 ‘대한민국의 정통성’을 운운하고 있다. 이는 과거에 대한 참된 이해를 가로막고 부당한 권력행사의 최대 수혜자였던 자신들의 과오를 감추기 위해 역사학이 진정으로 지향하는 객관성과 다양성을 잠재우고자 하는 것이다. 나아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경제적 이기심으로 가득 찬 역사관을 주입함으로써 인간적이고 민주적인 다양한 가치를 외면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역사적 진실은 권력으로 주조된 죽은 활자로 감출 수 없다. 역사적 평가에 대한 민주적인 절차를 무시한 채 역사학자들의 손에 족쇄를 채우고, 교사들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학생들에게 죽은 지식들을 암기하게 한다고 해서 시대의 진정한 평가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에는 다양한 방식으로 지식이 소통된다. 그럼에도 살아있는 지식이 교과서에서 화석화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저들의 망상은 유치함을 넘어서 시대착오적이다. 또한 이러한 비민주적 시도가 어떤 결과를 맞이하게 되는지 우리는 지난 역사에서 분명히 목격해 왔다. 
이에 역사를 전공하는 우리 대학원생들은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학문적 자율성과 민주적 절차성을 무시하는 이번 조치에 대해서 아래의 사항을 요구한다.
一. 정부는 일부 집단의 정치적 이익을 위해 역사학과 역사교육의 전문성을 훼손하는 행위들을 즉각 중단하라. 
一. 정부는 냉전적 이데올로기와 좁은 경제적 관점으로 역사학자들을 ‘좌파’로 몰아세우고 역사 교과서에 대해 부당한 탄압을 가하는 것을 즉각 철회하라. 
一. 정부는 역사교과서 편찬의 민주적이고 합법적인 절차를 준수하고, 교육과학기술부를 통해 역사교과서 서술을 수정하려는 시도를 즉각 중단하라. 

역사교과서 개악 저지를 위한 전국 역사 전공 대학원생들


태그:#역사교과서, #대학원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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