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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의 젠니꾸 호텔방. 창 밖으로 네덜란드풍 집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일본 속의 네덜란드'라고 불리는 하우스텐보스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
 하우스텐보스의 젠니꾸 호텔방. 창 밖으로 네덜란드풍 집들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일본 속의 네덜란드'라고 불리는 하우스텐보스를 제대로 조망할 수 있는 경치 좋은 곳에 자리 잡았다.
ⓒ 이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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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를 기다리고 있던 어느 해 겨울, 친구들과 태국에 간 적이 있다. 방콕 카오산로드를 한가롭게 거닐고 지친 다리를 쉬기 위해 길가의 레스토랑에 앉았는데, 예사롭지 않은 가족이 들어와 자리에 앉았다. 허리까지 늘어뜨린 머리를 하나로 질끈 묶은 아빠, 랩스커트를 맵시 있게 입은 엄마, 그리고 걷는 아이, 업힌 아이, 유모차에 앉은 아이. 아! 저렇게 여행할 수도 있구나! 그 모습은 그 때부터 나의 로망이 되었다.

하지만 막상 아이가 태어나니 해외여행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어떻게 얘 좀 떼어놓고 나갔다 올까'만 궁리했던 것 같다. 하지만 젖먹이를 떼어놓을 수는 없는 일. 얼마나 여행이 가고 싶었는지, 트렁크 끌고 보딩패스 들고 출구를 찾아 헤매는 꿈도 여러 번 꾸었다.

우연찮게 찾아온 일본 북큐슈 가족여행의 행운

아기를 떼어놓고 가는 여행은 아기가 30개월 때 이뤄졌지만 여행 기간 내내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고, 다녀와서는 엄마를 짐짓 피하는 아이를 보며 눈물이 났다. 36개월이 되었을 때, 드디어 가족이 함께 일본 오키나와에 다녀왔다. 그 때쯤이면 먹는 것이나 자는 것이 별로 어려움이 없어서 데리고 다닐 만했다.

지난해 겨울, 둘째 아이가 태어났다. 긴 여행을 하려면 앞으로 또 만 3년은 기다려야 한다는 우울함을 떨치기 위해 임신 5개월 무거운 몸을 이끌고 친구와 해외 배낭여행을 다녀왔다. 말이 배낭여행이지 트렁크 끌고 살살 돌아다닌 여행이었다. 하지만 이런 예방책에도 불구하고 또 첫째 아이가 젖먹이였을 때의 그 꿈을 꾸고 말았다.

올해도 여름휴가로 일본에 가볼까 생각해봤지만, 이유식도 본격적으로 시작하지 않은 둘째를 데리고 다니려니, 여행이 아니라 노동이겠다 싶어서 포기했다. 순돌이 우리 둘째가 이유식에 익숙해지고 쉬도 몰아서 하게 될 무렵, 우연찮게 기회가 왔다. 지난 9월초, 일본 북큐슈 가족여행의 행운이 찾아온 것이다.

가족여행에서 짐의 대부분은 아이들 옷가지다. 특히 환절기에는 짧은 옷과 긴 옷 모두 필요해 계획적인 짐 싸기가 필요하다. 우리 가족은 여행용 트렁크 하나와 간단한 배낭 하나 정도 가져갈 분량으로 맞췄다.
 가족여행에서 짐의 대부분은 아이들 옷가지다. 특히 환절기에는 짧은 옷과 긴 옷 모두 필요해 계획적인 짐 싸기가 필요하다. 우리 가족은 여행용 트렁크 하나와 간단한 배낭 하나 정도 가져갈 분량으로 맞췄다.
ⓒ 김선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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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렘으로 보낸 2주일이 지나고 드디어 떠나기 전날. 7살짜리와 9개월배기 두 아들이 기침을 하기 시작하더니 급기야는 콧물까지 흐른다. 아기 엄마들은 이런 것을 '푸른 하늘의 날벼락'이라고 한다. 꼭 무슨 날이 되면 흐르는 아이들의 콧물. 아! 고민된다. 아픈 아이 끌고 다니는 것은 엄마들에게 가장 큰 고문이다. 그건 여행이 아니란 말이다. 하지만 어쩌랴. 떠날 일만 남은 것은. 콧물약·기침약·해열제를 모두 챙겼다.

떠나기 전날 밤, 짐을 싸기 시작했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기 시작해서, 여름 옷에다 긴팔 옷까지 챙겨야 한다. 날마다 숙소가 바뀔 예정이니 빨래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더러운 옷을 입힐 수도 없으니 아이들의 옷은 충분할수록 좋다.

이것저것 챙기다 보니 둘째 유찬이 옷만도 수북하다. 여기에 하루 5개씩 계산하여 기저귀는 넉넉히 30개, 젖의 양이 부족할 것에 대비해 봉지 분유, 빨대 컵 두 개, 젖병 세정제, 젖병 닦는 솔, 손수건도 충분히. 그동안 모아둔 샘플 아기로션, 바디샴푸, 혹시 필요할까 수건 두 장, 입닦는 티슈와 물티슈...

그동안 쳐다도 보지 않던 인스턴트 이유식도 샀다. 어딜 데리고 다니면 가장 골치 아픈 것이 아기의 밥이다. 이제 9개월이 되어 웬만한 것들은 먹을 수 있지만, 또 어디 그게 그런가.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는 것이 중요했다.

둘째 유찬이 짐을 넣고나니 여행용 가방이 거의 다 찼다. 둘째 찬영이 옷을 넣고 남은 틈바구니에 남편과 내 옷을 챙긴다. 여행 기분 내려면 예쁜 원피스 하나쯤은 있어야 하는데, 이번에는 언감생심이다. 트렁크 지퍼를 올리고 아직 꾸리지 못한 것들은 배낭에 챙겼다.

새벽같이 일어나 집 근처에 서는 공항 리무진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직행하는 버스를 타니, 태릉에서부터 1시간30분 가량 걸렸다.
 새벽같이 일어나 집 근처에 서는 공항 리무진버스를 타고 인천공항으로 갔다. 외곽순환도로를 타고 인천공항까지 직행하는 버스를 타니, 태릉에서부터 1시간30분 가량 걸렸다.
ⓒ 이한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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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에서 제공해준 아기침대에 앉은 둘째 유찬이. 만 2살이 안돼 공짜 손님이다. 이코노미석 맨 앞자리는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어 이코노미의 '퍼스트 클래스'인 셈이다. 이런 자리를 얻은 건 어린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의 보너스다.
 비행기에서 제공해준 아기침대에 앉은 둘째 유찬이. 만 2살이 안돼 공짜 손님이다. 이코노미석 맨 앞자리는 상대적으로 공간이 넓어 이코노미의 '퍼스트 클래스'인 셈이다. 이런 자리를 얻은 건 어린아이와 함께 떠나는 여행의 보너스다.
ⓒ 이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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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한 컷 '찰칵'!
 인천공항에서 후쿠오카행 비행기를 기다리며 한 컷 '찰칵'!
ⓒ 이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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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젖먹이를 데리고 일본여행을 떠나는 날. 새벽 5시에 깨서 씻고 준비해 집을 나섰다. 애들 씻기고 입히느라 시간에 쫓겨서 나는 전날 입었던 티셔츠 쪼가리를 다시 걸친다. 아, 정말 이러기 싫은데…. 집 근처에서 인천공항행 리무진버스를 타고 공항에 도착해 남편은 발권하고 짐을 부쳤다.

둘째 유찬이 짐이 워낙 액체나 젤로 된 것이 많아서 여행용 트렁크에 넣지 않으면 안 된다. 좌석을 배정받을 때 아기가 있다고 하니 이코노미석의 '퍼스트 클래스' 맨 앞자리를 주었다. 이미 아기침대까지 부탁해둔 터였다.

나는 또 우리 아이들 먹일 것이 없나 촉각을 곤두세운다. 스프나 죽이 가장 좋은데, 아침에 그런 것을 파는 곳은 없었다. 그럼 빵인데, 아기가 먹을 수 있으려면 목에 걸리지 않고 부드러운 카스테라가 제일이다. 게이트 앞에 앉아 카스테라와 생수로 유찬이는 아침식사를 했다.

잘 울지 않고 낯도 안 가리는 유찬이는 스튜어디스 이모들에게 인기 만점이다. 이륙하자마자 아기침대를 달아주신다. 벽에 꽂았을 뿐인데 튼튼한 것이 좋아 보인다. 덕분에 나도 손을 좀 쉴 수 있었다. 큼큼한 냄새가 나서 유찬이를 데리고 화장실에 갔는데, 스튜어디스 한 분이 친절하게도 변기 위에 달린 베이비 베드를 펴주신다. 그게 거기 있는지 꿈에도 몰랐다. 또 아기들 먹는 병 이유식과 여행용 크림 파우더 등 여러 가지를 살뜰하게 챙겨주니 고마울 따름이다.

100엔스시집에서 유찬이 밥 먹이기 비결은

2시간도 채 안돼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했다. 지난해 왔을 때와 같이 조용하고 깔끔한 느낌이다. 지난해에는 여기서 버스표를 사 나가사키로 직행했는데, 이날은 택시를 타고 하카다역으로 갔다. 거기서 기차를 타고 하우스텐보스로 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표를 끊고 점심을 해결하기 위해 요도바시카메라 건물에 4층에 있는 100엔 스시집에 들어갔다. 여행자들에게는 유명한 곳이었다. 일본의 초밥은 역시 달랐다. 열을 지어 행진하는 초밥들이 유혹한다. 그러나! 엄마에게는 또다른 임무가 있었으니, 바로 유찬이 밥 먹이기다. 초밥들 사이로 '차완무시'가 지나간다. 찻잔에 쪄낸 일본식 계란찜.

찾았다! 차완무시에 초밥에서 떼어낸 쌀밥을 조금 으깨 섞어주니 유찬이도 한 그릇을 다 비워낸다. 둘째 찬영이는 소시지가 턱 올라앉은 어린이용 초밥에 어린이음료 쿠우까지 먹고나니 기분이 최고다. 신선한 생선살과 탱탱한 쌀알의 조화를 즐기다가, '타코 와사비'라는 새로운 초밥의 맛에 홀딱 반하고 말았다. 타코와사비는 문어(또는 낙지)를 잘게 썰어서 고추냉이에 절여 냉장고에 몇 시간 숙성시킨 것인데, 그 초밥 맛이 일품이었다.

히카타역 부근 요도바시카메라 4층에 있는 100엔 스시. 날 생선을 낯설어 하는 아이들도 소시지 초밥과 계란찜 등은 맛있게 잘 먹는다.
 히카타역 부근 요도바시카메라 4층에 있는 100엔 스시. 날 생선을 낯설어 하는 아이들도 소시지 초밥과 계란찜 등은 맛있게 잘 먹는다.
ⓒ 이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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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오카~하우스텐보스 특급열차 안. 좌석을 앞뒤로 마주보게 할 수 있어 편안한 가족여행에는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은 버스보다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후쿠오카~하우스텐보스 특급열차 안. 좌석을 앞뒤로 마주보게 할 수 있어 편안한 가족여행에는 안성맞춤이다. 아이들은 버스보다 기차여행을 좋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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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역에 도착.
 하우스텐보스역에 도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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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부른 초밥 점심을 먹고 하카타역으로 가 하우스텐보스행 열차를 탔다. 아침에 입힌 긴팔 옷이 더워보여 기차 속에서 애들 옷부터 갈아입혔다. 하우스텐보스역에 내리자 햇볕이 쨍쨍이다.

하우스텐보스(Huis Ten Bosch)는 17세기 네덜란드의 왕궁과 거리를 재현한 '일본 속의 네덜란드'로 불리는 곳이다. 네덜란드어로 '숲속의 집'이라는 뜻. 북큐슈 나가사키현 사세보에 있는 테마형 리조트 공원이다.

역 앞의 다리를 건너, 암스테르담역을 본 떠서 지었다는 젠니쿠 호텔로 갔다. 이 곳에서 하루를 묵을 예정이다. 방에 들어서자, 찬영이가 좋아서 어쩔 줄 몰라한다.

창문을 여니, 창밖으로는 네덜란드가 아닌가 착각에 빠질만한 풍경이 펼쳐졌다. 동화 속에나 나올 마을과 멀리 범선이 떠 있는 바다까지 보인다. 찬영이는 호텔방에서 계속 있자며 종이와 색연필을 꺼내 창밖 풍경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우스텐보스 안에는 곳곳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유모차가 비치돼 있다.
 하우스텐보스 안에는 곳곳에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유모차가 비치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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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텔에 짐을 풀고, 하우스텐보스 안으로 들어갔다. 운하를 따라 여기저기 만들어진 17세기 네덜란드풍 마을들은 그 예쁜 모습이 마음을 설레게 했다. 꽃으로 장식된 배(캐널 크루저)를 타고 운하를 따라 유람을 시작한다. 미리 빌린 유모차에 유찬이를 태우고 여기저기 산책에 나섰다. 곳곳에 아기를 위한 수유실이 있어 기저귀를 갈거나 젖을 물리는 일도 쉽게 할 수 있었다.

날이 저물어 어둑해졌을 때 사세보의 명물로 손꼽히는 사세보버거를 먹었다. 버거킹에서 파는 햄버거보다도 컸다. 햄버거를 좋아하는 남편과 찬영이가 기대했던 것인데, 역시 맛있었다.

서울에선 엄마 때문에 먹어볼 수 없었던 버거 한 개를 다 먹어치우는 찬영이. 워낙 여행 다니는 걸 좋아하는 녀석은 완전 신이 나서 계속 웃음꽃 만발이다. "너무 좋아, 소시지 밥도 있고, 햄버거도 맛있어" 하며 이리저리 뛰어다닌다.

해가 저물자 날이 쌀쌀해진다. 호텔로 돌아오려고 서두르는데,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찬영이가 행복에 겨워 길가에 세워둔 돌기둥을 툭툭 치고 가다가, 부러져있던 돌기둥에 다리가 깔리고 만 것이다. 자지러지는 울음 소리에 소스라쳐 아이를 데리고 의무실로 뛰었다. 다행히 문이 열려 있었고, 긴급 처치를 받았다. 뼈가 부러지진 않았고 타박상이라고는 하는데,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는다. 의무실에선 타박상용 파스를 붙여줬다.

순조롭던 가족여행이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의무실에서 불러준 순찰차를 타고 호텔 방으로 돌아와 보니 찬영이 다리가 많이 부어올랐다. 조금만 움직여도 자지러진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행복 최상이었는데,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졌다. '만약 뼈가 부러졌다면….'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상황에 따라서는 이후 여행일정이 말짱 도루묵이 될 수도 있다. 아니, 일본여행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다니. 잘 믿겨지지 않았다. 찬영이는 그날 밤 밤새 뒤척이며 잠을 설쳤다. 아니, 망가진 기둥을 그렇게 방치하다니. 순조롭던 가족여행이 뜻밖의 복병을 만난 것이다.

(※ 다음 편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하우스텐보스 입구에서 캐널 크루저를 타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배를 타고 한 바퀴 돌면 25분 가량 걸린다.
 하우스텐보스 입구에서 캐널 크루저를 타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이 배를 타고 한 바퀴 돌면 25분 가량 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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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우스텐보스의 밤 풍경. 저녁 8시30분께에는 불꽃놀이도 벌어진다.
 하우스텐보스의 밤 풍경. 저녁 8시30분께에는 불꽃놀이도 벌어진다.
ⓒ 이상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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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나와 남편, 그리고 찬영이와 유찬이 4명의 일본행 가족여행은 우연찮은 행운처럼 다가왔다. '값싸고 친절한' 가족여행 상품을 찾다 지친 남편이 여행박사쪽에 가족여행 상품 개발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그 뒤 여행박사는 그 아이디어를 현장에 접목시켜보려고 했고, 아이디어를 제공했던 우리 가족에게 직접 '모델'이 돼 줄 것을 부탁했다. 이렇게 '좌충우돌 가족여행'은 여행박사(www.tourbaksa.com)의 도움으로 이뤄졌음을 밝혀둔다.



태그:#가족여행, #하우스텐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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