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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과 초록의 공기가 피부에 물들어 버릴 것 같은 날이다. '그'를 만나기 위해 화천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싣고 가는 길은 나른하고 평화롭다.

소설가 이외수 혹은 예술인 이외수. 혹자는 그를 기인이라 하기도 하고, 그를 트집잡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고정수의 독자를 지닌 상업작가가 아니냐고 묻는다. 과연 인간에게 부여되는 '정의(定義)'란 것이 있을까.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벌써 이외수가 살고 있는 감성마을에 다다랐다. 몇 채의 가옥이 있지만 주변은 온통 산과 물. 다듬어지지 않은 굽이굽이 흙길이 올라올테면 올라와 보라며 나를 약올린다.

지난 27일 가진 이번 인터뷰에서는 자연과 함께하는 소설가 이외수와 함께 마임축제 20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다음은 소설가 이외수와 나눈 일문일답.

이외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천진하고 고요한 모습을 보였다.
▲ 강원도 화천, 자택에서 만난 이외수 이외수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언제나 천진하고 고요한 모습을 보였다.
ⓒ 김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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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 근황은 어떠신가.
"한가롭게 시간을 보내는 중이야. 술도 2005년부터는 끊었지. 난 어쨌든 명색이 작가고 글써서 밥먹고 사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프로 아냐? 프로는 프로 다워야지. 글을 방해하는 것이면 모든지 끊어야해. 술이든 담배든. 어쨌건간에 내 글을 쓰는데 장애가 되는 것들은 모두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해."

- 글을 쓰는데 술이나 담배가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측면이 있지 않을까?
"하수 때는 그런 생각도 들지, 근데 문학이 생활화 되고, 그것이 영혼의 깊은 곳까지 닿아있게 되면 오히려 술이나 담배를 빌어서 문학의 길로 들어서는 게 아니라 맨 정신으로도 충분히 들어갈 수 있는 감성을 지니게 되지. 술이나 담배는 의존성과 습관성이 강하긴 한데 끊는다고 해도 영향이나 지장을 미치지는 않아. 나는 하악하악을 쓰는 도중에 끊었어. 지장을 초래하면 다 쓰고 끊었을 텐데."

- 마임니스트 유진규와의 인연은 어떻게 맺게 됐나.
"마임축제와 유진규씨는 내가 태동기부터 같이 손잡고 살아온 셈이지. 마임이란 것은 말이 필요 없는, 몸짓으로 마음을 전달하는 행위라고 정의하는데 유진규씨와 내가 그런 사이였어. 우리는 만날 때부터 말이 필요 없는 사이였지. 얼굴만 봐도 소통이 가능했으니까.

유진규씨는 마임을 대중들에게 알리기 위해서 그야말로 혼자서 악전고투했어. 그래서 곁에서 지켜보면서 털끝만큼이라도 도움이 될 수 있다면 돕고 싶었지. 큰 힘이 되어주지는 하고 단지 곁에 있어준 정도야. 유진규씨는 마임을 공연하기 위해 서울에서 춘천으로 귀농했는데 벌면 마임 때문에 쏟아붓고, 내가 알기론 아파트, 카페도 몇 번씩 날렸지.

작년에 유진규의 인터뷰에서 '사람들이 이외수와 헷갈려해서 머리카락을 잘랐다'라고 했는데, 그건 내가 생각할 때 유진규씨의 유머라고 생각해. 예술인들이 외모에 많이 신경 쓰는 편은 아니지. 내면을 어떻게 가꾸느냐가 중요할 뿐이야. 외모는 편한 상태를 유지하면 그만인거지. 유진규는 짧은 머리가 편한 것이고, 이외수는 긴 머리가 편한거야. 요는 나는 방치해놓고 있는 거고. 유진규씨 역시 그 머리가 자랄 때까지 방치하는 것이고.

유진규씨와 나는 대조적이면서도 그 본질이 같아. 마임은 귀에는 들리지 않는 수없는 문장이 내포되어 있고, 문학에는 눈에는 보이지 않는 수없는 몸짓이 내포되어 있어. 하지만 그 본질은 다르지 않아. 둘 다 우리에게 인간답게 아름답게 살아가자는 메시지를 담고 있지. 결국 표현하는 방식이 다를 뿐이지 그 본질은 다르지 않아. 그렇기에 우리는 말하지 않아도 서로를 알 수 있는 것일테지."

- 춘천마임축제와 몽도리에 대해 말해달라.
"소설 지망생 전에 화가 지망생이었어. 그것도 서양화가 전공이었지. 지금은 먹을 쥐고 있지만말이야. 그림을 그릴 때는 제법 상도 타기도 하고 주목도 받아봤지만 그게 다 부질없는 일이더라고. 몽도리는 춘천의 의암호를 거점으로 활동하는 애기도깨비의 이름이야. 도깨비 난장이 마임의 하이라이트가 되면서, 몽도리가 캐릭터로 각광을 받기 시작했지."

- 지금까지 마임축제 행사 중에 가장 인상 깊었던 해가 있다면?
"마임축제는 해마다 다 특징이 있어. 춘천마임축제는 나날이 새롭지. 예전에 세계적으로 마임니스트들이 왔을 때 논쟁을 벌인 적이 있었어. 영국의 마임이 최고냐, 춘천의 마임이 최고냐하고. 결과는 춘천의 마임축제가 최고라는 것이었지. 영국의 마임은 극장에 국한하지만 춘천은 도시 전체가 마임의 공간이니까. 춘천 마임 축제는 세계 제일의 마임축제야. 그런데 재밌게도 그 사실을 춘천 시민만 모르고 있지. 도시 전역에서 마임을 하는데 그것을 체감하지 못하는 거야.

춘천마임축제는 해마다 인상적인 부분이 달랐어. 해마다 마임에 주목하는 각도가 달라지고 주어지는 주목도가 달라지기 때문에 어떨 때는 체코 연기자들에게, 또 어떨 때는 독일이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지. 장소 역시 거리에서도 극장에서도. 늘 공간은 자유롭고 변화무쌍했어. 그래서 특별히 인상적인 공연을 꼭 꼬집으라고 하면 곤란해."

- '도깨비 난장'과 '무아지경'에 대해서.
"지금은 춘천 마임축제의 하이라이트가 된 도깨비 난장의 모태는 텐트촌이었어. 마임축제에 참여한 독자들과 '무아지경'이라 하는 텐트촌을 만들었는데 거기서 공연도 하고, 밤새도록 문학과 인생, 예술과 문화 그리고 삶과 죽음을 이야기하는. 그야말로 진지한 화두를 걸고 술을 퍼마시는 그런 곳이 무아지경이었어. 독자들과 밤을 새워 시단(始端)을 가지기도 하고, 공연들도 보고, 직접 공연에 참여하기도 하고, 밤에 텐트촌에서 술도 마시고, 이야기도 하는 굉장히 자유로운 공간이지. 그리고 바로 그 자체가 마임을 즐기는 거야. 최근에는 도깨비 난장 개막 때 먹과 붓으로 퍼포먼스를 하고 있지. 올해가 여섯번째인데 올해는 동영상이라도 촬영할까 해."

- 마임축제,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해줄 말은?
"마임축제는 초기에는 어린이회관에서 공연했었는데 어린이회관을 교회로 임대하는 바람에 계속 진행하기가 곤란해졌어. 그래서 유진규와 내가 둘이서 물색한 새로운 장소가 고슴도치 섬이야. 그래서 거기 사장하고 만나 무료로 섬 전체를 마임 공연장으로 문화발전을 위해서 빌려줄 수 없겠느냐 간곡히 부탁했지. 서로 의견조율 끝에 결국 고슴도치 섬에서 오늘날까지 마임축제를 하게 되었는데 관객 수가 해마다 늘어나고 지금은 명약관화한 대표축제가 되었어.

지금은 관공서에서도 많이 신경 쓰기도 하고, 시민들의 관심을 받게 되어서 기쁘지만 그 중에서도 특히 젊은이들이 예술에 대한 관심을 기울이고 축제를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어. 나도 큰 힘이 되지는 못했지만 매년 축제에 동참해 왔는데 젊은이들이 함께 즐겨주지 않으면 예술은 힘을 잃어버리게 되어있거든. 젊은이들이 축제에 동참하는 습관을 길러줬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

예술은 즐기는 습성을 가져야 해. 그래서야 축제와 예술에 익숙해지는거야. 익숙해지기 위해서는 축제에 참여해야하고. 우리는 즐겨야 하는데 즐기지를 못해. 다들 의식이 경직되어 있기 때문이지. 예술은 물질문화가 아니라 정신문화인데 물질에 귀속되어 있어. 그래서 예술을 즐길 수 있는 대상이라 생각하지 않고, '모르니까', '내 무식이 탄로나니까'라고 생각해서 역행적인 것으로 예술을 잘못 판단하는 거야.

마임이 발전되기 전에 춘천이 발전해야 하고, 춘천이 발전하려면 시민의식이 발전해야 해. 이제 경치만 팔아먹고 사는 시대는 지났거든. 아름다운 도시의 정서와 예술이 접목되어야만 춘천의 위상이 높아지고 경제력이 향상 될 수 있는거야. 그런데 사실 춘천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낮은 편이야. 그리고 사실은 춘천만 그런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전역이 그런 풍토지. 예술에 대한 관심, 축제에 대한 관심을 높여야만 다 함께 발전 할 수 있을거야."

이외수의 집에는 자연이 가득하다. 돌틈에 피어난 풀 한포기도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게 없다.
▲ 돌틈에 피어난 생명 이외수의 집에는 자연이 가득하다. 돌틈에 피어난 풀 한포기도 어느 것 하나 소중하지 않은게 없다.
ⓒ 김새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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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집을 나왔을 때 비로소 주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숲과 초록빛만 보이던 시야를 벗어나 작은 꽃 하나하나, 돌맹이, 풀포기 하나 의미가 있고 생명이 있음을 실감하게 되었다. 처음 산 속 깊은 곳에 자리한 그의 자택으로 향하며 숲이란 감옥에 가둔 것이 아닌가 생각했던 마음은 잊은지 오래다. 무성한 숲은 단절이 아니었다. 자연을 병풍과 같이 두른 그가 진정 이 시대의 신선(神仙)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강원일보 인터넷판과 춘천마임축제 공식 웹진에 동시 게재되고 있습니다.



태그:#이외수, #춘천마임축제, #몽도리, #마임, #축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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