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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팔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네팔 지도는 갈색으로 반전시켜 따로 확대해 표시했습니다)
 인도/네팔 이동경로, 스토리에 등장하는 지명을 중심으로 표시 (네팔 지도는 갈색으로 반전시켜 따로 확대해 표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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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함 - 델리의 여행자 거리(빠하르간지)
 복잡함 - 델리의 여행자 거리(빠하르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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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함 - 델리의 여행자 거리(빠하르간지)
 복잡함 - 델리의 여행자 거리(빠하르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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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돈은 안 된다고 했지?'

공항에서 나오기 전, 혹 찢어진 돈이 섞이진 않았는지 몇 번이나 확인하며 필요한 돈을 일부 환전했다. 귀동냥으로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공항에서 델리 시내까지는 택시로 한 시간 거리란다.

'공항도로 타고 한 시간이면 자전거로 하루 종일 걸리는 거리라는 말인데….'

영아랑 잠시 의논을 한 후, 일단 델리 시내까지는 공항버스를 이용하기로 했다. 그런데 여기저기 물어봐도 하나같이 공항버스는 없다는 얘기만 해댄다. 워낙 인도에서는 조심조심 또 조심. 사기꾼 천지라는 말을 많이 들어서인지 사람들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가 없었다.

"정말 없는 걸까? 아니면 속이는 걸까?" 공항 내에 있는 여행사를 여기저기 돌면서 지도도 얻고, 이야기도 나누면서 델리중심가까지 거리가 20k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20km 라니! 게다가 현재 시간은 2시도 안 된 시간. 해지기까지는 4시간이나 여유가 있다.
"그럼 자전거로 여유 있게 갈 수 있는 거리구만." 

일단 자전거로 가기로 결정한 후, 지도를 보면서 가야 할 길을 파악했다. 그리곤 박스를 풀고 즉석에서 자전거를 조립했다. 우리가 자전거를 조립하기 시작하자, 또 약속이나 한 듯 사람들이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한다. 한두 번 겪는 일이 아니기에 사람들이야 보건 말건, 잠시 후 우리는 델리시내로 달릴 준비를 마쳤다.

출발 전 화장실을 들렀는데 1인당 요금이 1루피라고 쓰여 있다. "거슬러 줘" 5루피를 내면서 하는 나의 말에 "일단 먼저 일을 봐"라는 화장실지기의 대답이다. "거스름돈 먼저 줘" 하는 나를 빤히 보더니, '자' 하는 대답과 함께 돈을 내주는데 3루피만 준다.

'요놈 봐라. 내가 처음 온 것처럼 보인다 이거지?'
"1루피 더 내놔"

그제야 아무렇지도 않은 듯 1루피를 더 내놓는 화장실 지기다.

한국인 신혼부부와 관련된 정말 황당한 사건

드디어 자전거를 타고 공항도로로 들어섰다. 좀 휑한 느낌이 나는 도로다. 후에 들은 이야기인데, 지금 우리가 들어서는 이 공항도로에서 한국인 신혼부부와 관련된 정말 황당한 사건이 있었다고 한다.

한국에서 인도로 신혼여행을 온 커플이 있었는데, 인도 도착 첫날 바로 이곳 공항 도로에서 신랑이 두 눈 버젓이 뜨고 신부를 강탈당했다는 것이다. 사고 당일 이 신혼부부는 새벽에 델리 공항에 도착 후 택시를 탔는데 가로등 하나 없는 이 공항도로에서 그 음흉한 택시 기사 놈은 차가 고장 났다며 신랑을 내리게 해, 차를 밀게 하고는 그냥 신부를 태운 채로 줄행랑을 쳐서 신부가 실종됐다는 납치사건이다.

소름끼치는 일이다. 인도에서는 이런 식으로 여자납치사건이 아주 많다고 한다.

하늘에서 내려다 본 델리의 색은 흙색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공항도로를 통해 공항을 빠져나오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역시나 흙색의 황량한 들판이었다. 그 들판 사이로 길이 나 있고, 길을 따라 간간이 가게들이 줄을 서 있다.

자전거로 달리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여기저기서 인도인들이 엄지손가락을 세워 보인다. 낯선 사람들에게 꾸밈없이 손짓하는 그들의 모습과 웃음 띤 얼굴에서 정감이 느껴진다. 아, 이 인도의 냄새. 이제야 우리가 인도에 온 게 실감난다. 드디어 힌두 문화권에 들어온 것이다.

'앞으로 이 인도 사람들 속에서 우리가 어떻게 여행을 해 나갈 것인지? 잘 해낼 수는 있을까?'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휘감아 왔다. 이제까지 우리가 보아온 사람들의 생김새나 생활환경, 문화와는 완전히 다른 세상에 들어왔다. 낯선 곳에서의 불안함과 더불어 새로운 것에 대한 기대감이 가슴을 벅차게 한다. 일단은 델리 시내를 향해 달리면서 생각하기로 했다.

'인도에서는 적어도 다섯 사람 이상에게 물어본 후 판단해 움직여라'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워낙 사람마다 말을 다르게 하기 때문에 낭패를 볼 수 있으니까 조심하라는 얘기였지만, 인적이 드문 공항도로를 타고 달리기 때문에 다섯 사람은커녕 한 명을 만나기도 힘들었다. 그래도 간간히 만나는 현지인들에게 한 번씩만 물어보고도 별다른 어려움 없이 제대로 방향을 잡았다.

"뭐야. 얘기하고 틀리잖아. 사람들 눈빛도 징그럽지 않고. 친절하구만."
기가 살고 자신만만한 국이의 얘기다.
"그래도 안심하긴 일러. 우리 아직 제대로 된 신고식도 안 했잖아."

오후 내내 델리의 중심가를 향해 달리면서, 왜 사람들이 20km 남짓 밖에 안 되는 거리를 택시로 한 시간이나 걸린다고 말했는지 알 것 같았다. 지독한 매연, 엄청난 인파, 그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이 인도만의 분위기. 물길에 흔들리듯 인파에 이리저리 휩쓸리며 달리고 또 달려도 거리가 빠지질 않는다. 그렇게 헤매면서 달리길 4시간 가량. 시간은 흐르고 해 질 무렵이 되서야 우리는 델리의 중심거리에 들어설 수 있었다.

인도의 복잡함
▲ 바라나시 인도의 복잡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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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사람 정신 쏙 빼놓는 곳은 처음"

서유럽 전체 땅의 크기와 비슷한 영토, 세계인구의 6분의1에 해당하는 10억의 인구를 가진 땅. 지방마다 다른 풍토조건과 공인된 언어만 15개에 방언까지 합하면 약 600개의 언어가 통용되는 곳. 힌두교, 회교, 불교, 자이나교 등 서로 다른 종교의 번성, 극심한 빈부차이와 교육수준 차이, 수천 년을 내려온 신분제 카스트로 갈라진 서로 다른 계급을 인정하는 사람들. 수많은 서로 다른 생각과 생활방식,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섞여서 살고 있는 땅 인도.

단편적이고 막연하게 생각하는 건 오기 전과 똑같지만, 직접 그 장소에 왔다는 생각에 감회가 새롭다.

"세상에나!  태어나서 이렇게 무질서하고, 이렇게 시끄럽고, 이렇게 복잡하고, 이렇게 사람 정신을 쏙 빼놓는 곳은 처음이다."

정말 우리가 인도에 와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중국이 복잡하다고?' 하긴 사람도 많고 자전거도 많지! 그러나, 인도와는 비교 자체가 안 된다.  

어느덧 해는 뉘엿뉘엿 넘어가고 어둠이 깔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원했던 목적지, 빠하르간지를 찾지도 못한 채 우리는 일단 근처에서 눈에 띄는 호텔을 잡아 짐을 풀었다. 첫날부터 무리하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우리는 인도에서의 첫 테이프를 끊었다.

바라나시의 무슬림거리
▲ 복잡함 바라나시의 무슬림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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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국이랑 영아의 자전거로 가는 세상구경 - 긴 여정(이란,인도/네팔,터키편) 2003년 10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자전거로 인도와 네팔, 파키스탄, 이란, 터키를 여행한 이야기 입니다. 작자의 홈페이지(http://www.bikeworldtravel.com/)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그리고 SLR CLUB(http://www.slrclub.com/)에서 연재가 이루어 집니다. 오마뉴스는 매주 토요일에 업데이트 됩니다.



태그:#국이랑영아, #자전거여행, #자전거세계여행, #인도여행, #세계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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