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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회에는 민주화 이후 오히려 담론이 사라졌다는 말이 있습니다. 진지하게 논의돼야 할 이슈들이 산적해 있는데도, 아예 쟁점으로 떠오르지 않거나 간혹 논쟁이 벌어지더라도 갈등만 증폭되는 현상도 보입니다. 담론의 복원을 위해 어느 때보다 건전하고 창의적인 언론활동이 요청되는 시기입니다.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은 매체창업 또는 칼럼과 프로그램 제작을 통해 우리사회의 건전한 담론형성과 의사소통에 크게 기여해온 분들이 진행하는 '저널리즘 특강'을 마련했습니다. 강의를 들은 저널리즘스쿨 학생들이 쓴 기사를 이번 학기에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합니다.<기자 주>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그 사이를 사람들이 분주히 움직인다. 어깨엔 공사 자재를 매고 있다. 상암동 디지털미디어씨티(DMC)에 위치한 한국영상자료원. 그곳에선 영화박물관을 만들기 위한 공사가 한창이었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는 곳’, ‘아카이브’를 만들기 위한 막바지 공사다. 아카이브는 필름 수장고, 라이브러리, 박물관, 시네마테크 이렇게 4개가 함께 있는 공간이다. 필름을 보관하면서 대외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이상적인 구조다.
“쿵, 쿵, 쿵, 쿵” 공사장의 울림소리가 번져오는 곳에서 조선희 원장이 나타났다.

세상의 모든 영화를 다 볼 수 있는 곳

조 원장은 영화 필름 자료를 수집하고 보존하는 것이 영상자료원의 첫 번째 기능이라고 했다. 하지만 일반에게 잘 이용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한 목표라고 했다. 그러기 위해 영화 필름 자료 수집에 집중하고 있다. 러시아, 중국 등을 돌아다니며 일제시대 필름 17편 정도를 수집했다. 얼마 전엔 필름으로 보존된 가장 오래된 영화 ‘청춘의 십자로(1934년 作)’를 수집했다. 또 하나 놀랄만한 수집품도 있다고 한다. 4월 중순에 공개할 예정이다.

영상자료원의 역할을 설명하는 조선희 원장. 한국영상자료원을 세상의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게 그녀의 목표다.
▲ 조선희 원장 영상자료원의 역할을 설명하는 조선희 원장. 한국영상자료원을 세상의 모든 영화를 볼 수 있는 곳으로 만드는 게 그녀의 목표다.
ⓒ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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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날로그 필름의 경우 백화현상 때문에 수명이 50년 정도 되는데, 청춘의 십자로의 경우 좀 이상한 게, 우리가 수집한 게 70년도 넘은 시점이거든요. 근데 상당히 상태가 양호했어요. 왜 그렇냐면 소장가가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안 열어 본 거예요. 8캔 중 1캔이 상했는데, 이 사람이 이게 뭔가 하고 뜯어본 거예요. 그것도 70년대에 한번. (웃음)"

영상자료원에 오면 누구나 쉽게 영화를 볼 수 있다. 영상자료원 라이브러리에서 모니터를 통해 DVD, 디지털영화로 만들어진 국내 영화들은 거의 다 볼 수 있다. 해외영화들도 상당수 수장하고 있다. 특히 세계 3대 영화제 수상작은 모두 있다.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영화는 온라인에서도 볼 수 있다.

"작년 11월부터 저작권 문제가 해결된 고전영화 볼 수 있도록 온라인 서비스를 하고 있어요. 1957년 이전 제작영화는 저작권 만료돼 퍼블릭 도메인으로 넘어왔죠. 홈페이지에 접속하면 어디서나 볼 수 있어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영화를 함께 볼 수 있도록 오는 5월 9일에는 시네마테크 3개관이 개관한다. 이후엔 상설프로그램 매일매일 진행된다. 러닝타임이 4-5시간인 아주 긴 영화들을 상영하는 섹션도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청춘의 십자로가 개막작이에요. 옛날 무성영화 상영하는 방식으로 상영할 건데, 변사, 악극단이 나오고 전후로 약간의 엔터테인멘트를 덧붙일 예정이에요. 가족의 탄생을 만든 김태용 감독이 총연출을 맡았죠."

장기보존을 위한 노력도 한다. 아날로그 필름을 디지털 자료로 변환시키는 작업이다. 한국영화사 연구에 적극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해 콘텐츠 부가가치를 높이기 위해서다. 지금 1,000편의 영화를 디지털화 했다. ‘하녀’(김기영, 1960년 作)는 세계영화제단 지원으로 복원하고 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의 지원도 이끌어 냈다.

"아직까진 한국영화 통사가 깔끔하게 정리된 게 없어요. 우선은 수집된 자료를 바탕으로 영상자료원에서 ‘필름 스토리 총서’도 출간할 계획이에요. 4월부터 6섯 권 나올 예정이에요."

'치매 걸린 한국 영화사'

역사를 기록하는 일은 대중과 함께하기 위한 기초를 다지는 일이다. 그러나 자료를 수집한다고 해서 그 모든 게 역사가 되진 않는다. 역사의 채가 얼마만큼 촘촘하냐에 따라, 또 기록의 기초가 되는 사실을 모으기 위한 노력의 크기가 얼마냐에 따라 역사가 달라질 수 있다. 영화의 역사도 마찬가지. 모든 영화가 역사가 되는 건 아니다. 하지만 한국 영화사엔 사라진 퍼즐 조각이 많다. 조 원장은 그 빈구석을 메우기 위해 뛰고 있었다.

1934년 作,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수집한 영화 중 하나다.
▲ 청춘의 십자로 1934년 作, 최근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수집한 영화 중 하나다.
ⓒ 안종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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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론가 정성일씨는 그걸 가지고 '치매 걸린 한국 영화사' 이런 표현을 쓰거든요. 지금까지 한국에서 만들어진 장편 상업영화를 6,800여 편쯤으로 치는데 3,900여 편, 한 65%정도를 우리가 가지고 있다고 그래요."

1974년 필름 보관소가 생겼다. 1996년 개봉영화는 6개월 이내에 납부해야 하는 ‘의무납본제’ 시행되었다. 이런 수집제도가 생기기 전의 영화들은 사실상 거의 유실된 상태다. 잃어버린 한국 영화를 찾기 위해 노력하던 그녀는 혹시 최초의 흥행작 ‘아리랑(나운규, 1926년 作)’이 북한에 있지 않냐는 생각에서 신상옥 감독의 부인 최은희씨에게 아리랑이 있는지 물었다고 한다.

"저한테 그러더라고요. 김정일 위원장이 자기한테 '아리랑을 백방으로 찾으려고 노력했는데 못 찾았다. 혹시 남한에 있지 않느냐'고."

그녀는 아리랑이 '지구상엔 없는 것 같다'고 했다.

8년 만에 밝혀진 절반의 진실

자신은 기본적으로 '글 쓰는 이(writer)'라고 밝힌 조선희 원장. 기자로, 영화잡지 편집장으로 그리고 소설가로 대부분의 삶을 쓰는 일을 하며 산 그녀는 기록과 역사에서 '진실'의 중요성 강조하며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들려줬다.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선희 원장 저널리스트로서의 자신의 경험을 들려주며 '진실'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 이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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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대 말, 외화수입이 자유화 됐어요. 영화인들은 한국 영화 시장이 모두 무너질 거라고 반발했죠. 직배 영화가 개봉됐을 때, 극장에다 뱀을 풀거나 불을 지르는 사건이 벌어졌어요. 언론은 그들을 민족주의 시위대로만 그렸고 저도 그녀도 그런 줄로만 알았죠."

그때로부터 3~4년이 지난 후 영화 제작과 배급을 도맡고 있던 양대 메이저사의 사장이 모두 구속되는 사건이 벌어졌다. 그들은 극장 방화사건을 배후조종한 혐의를 받았다. 직배영화 배급권을 둘러싼 영화 배급업자들 사이의 이익다툼이 '민족주의 시위대' 뒤에 감춰져 있었던 것이다. 완전한 진실이 밝혀지기까지는 그 후로도 4년이 더 걸렸다.

"일간지는 하루라는 시간을 이길 수 없고, 주간지는 일주일을 이길 수 없어요. 그런 건 어쩔 수 없이 역사에 기록 될 뿐이지 저널리즘은 그걸 비켜가죠. 그걸 참 '아이러니' 라고 느꼈어요. 참 역사라는 게, 저도 그때 기자였지만 반쪽의 진실을 알았다는 걸 나중에 깨달았죠."

신문은 하루만의 진실이지만 그것을 부정하지는 않는다고 했다. 신문 기사도 결국엔 시간 위에 존재하는 것. 어떤 것들은 진실이고 또 어떤 것들은 오보다. 그것이 걸러져 진실이 된다. 이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저널리즘 자체를 부정하는 것이다.

"하루하루의 신문이 쌓인다고 역사가 되진 않아요. 하지만 저널리즘마저도 없다면 역사의 기초가 없어지게 됩니다."

그녀는 연합통신의 기자로 처음 ‘정글’에 뛰어들었다. 영화 잡지의 불모지에서, 고급 영화 잡지 그것도 한국영화를 주로 다루는 씨네21를 창간했다. 성공할 수 있겠는가라는 주위의 우려를 무색하게 만들며 씨네21을 최고의 영화잡지로 만들었다. 그리고 소설 쓰기에 전념하기 위해 성공한 잡지의 편집장 자리를 버리고 광야로 나갔다. 그런 그녀가 다시 ‘정글’로 돌아왔다.

"영화감독이자 소설가 선배가 영상자료원장 공모에 응해보지 않겠냐는 거예요. 처음엔 ‘소설가를 실업자로 아는 것 아냐’ 왜 내가 직업이 없다고 생각하느냐. 내가 그렇게 장래성이 없어 보이나? (웃음) 근데 막상 직장생활을 해볼 거냐는 말을 듣고 나니 마음이 쏠리는 거예요."

그녀는 정글을 마다하지 않는 듯하다. 아니 어쩌면 체질적으로 정글을 좋아하는 지도 모른다. 정글에선 가끔 하이에나가 된다던 그녀. 그러나 지금 그녀는 '썩은 고기'를 찾아 산기슭을 해매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맛있는 풀'이 있는 곳을 찾아 동료들에게 알려주기 위해 위치를 기록하는 톰슨가젤처럼 보인다.

아카이브, 영화 문화의 구심점

2003년 유네스코는 ‘디지털 유산 보존 헌장’을 만들었다. 디지털 유산은 후손에게 물려줄 가치가 있는 것들을 총망라한다. 현 세대와 미래 세대를 위해 보호하고 보존해야 하는 유산이다. 프랑스는 1537년 도서에 관한 ‘납본법’을 만들어 ‘아카이브’(보존소)를 구축했다.

아카이브, ‘최선의 경우, 한 나라 영화문화의 구심점 역할’을 할 것이란다. 그녀가 앞으로 써 나갈 기록과 역사, 그리고 한국 영화사는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까. 그녀를 만난 날 봄비가 내렸다. 짧은 시간의 만남 때문이었을까. 사라진 한국영화사의 조각이 많아서일까. 봄비. 감자밭을 적시기엔 부족해 보였다.

덧붙이는 글 | 한국언론의 새로운 표준과 가치를 모색해보려는 '저널리즘 특강'에 독자 여러분, 특히 언론인과 언론인이 되고자 하는 분들의 많은 관심을 기대합니다. 서울에서 진행되는 특강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분은 사전에 연락해주시면(043-649-1148) 제한적이나마 자리를 마련해 드리겠습니다. 특강일정표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 홈페이지(http://journalism.semyung.ac.kr)에 게시돼 있습니다.



태그:#조선희, #한국영상자료원, #한국 영화, #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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