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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호 기자는 충남대학교에 재학중입니다.

"민현아~"
"쟤, 동현이로 이름 바꿨어요."
 

얼마 전 같은 과 후배 녀석이 이름 바꾼 줄도 모르고, 옛날 이름을 불렀다가 민망한 적이 있다. 며칠 후 그 후배를 만났을 때도 또다시 옛 이름이 튀어나왔다.


"민현아~~"

 

개인적으로 주변에 개명(改名)한 사람이 없었던 터라 마냥 신기하면서도 궁금했다. 그러던 중 우리 과에 개명한 사람이 몇 명 더 있다는 얘기를 듣게 되었다. 김태현(옛날 이름 김인수, 26), 최령련(옛날 이름 최가영, 24), 이동현(옛날 이름 이민현, 23), 김민서(옛날 이름 김열매, 24), 송승주(옛날 이름 송은옥, 23), 한정희(옛날 이름 한주희, 24) 등 일곱 명이나 됐다. 그리고 또 한 명의 친구와 후배가 개명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고 했다.
 

충남대 언론정보학과라는 작은 울타리 안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개명했다는 사실에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대체 왜 이름을 바꿨지? 그럼 앞으로 어떻게 불러야 하는 거지? 내가 옛날 이름을 불렀을 때 어떤 감정이 들었을까?
 

그렇다면 과연 그들의 삶은 어떨까. 김태현, 최령련, 이동현, 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엿들어 보도록 하자.

 

"새롭게 살고 싶었어요"

 

김태현씨는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왔다고 한다. 집안 사정으로 인해 어디론가 정착하지 못하는 세월을 보냈다. 부모 이혼 등 가정불화로 인해 중학교 때부터 많이 방황해 상고(상업고등학교)에 진학했고,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부모에 대한 반항심과 자신에 대한 열등감으로 지냈다. 새롭게 다짐한 것도 수십 번, 그래서 공부를 하다가 말다가 한 것도 여러 번이었다. 지금 다니는 대학에도 많은 우여곡절 끝에 남들보다 조금 늦은 나이에 입학했다. 

 

그러던 중 인터넷으로 이런저런 것들을 보다가 성명학적으로 이름이 너무 좋지 않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름이 인생의 걸림돌이 됐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지푸라기를 잡는 심정'과 '기대감'으로 2006년 여름, 개명을 결심하게 되었고, 마침내 실행에 옮겼다.

 

그동안 살아왔던 기간의 어려움과 순탄치 않았던 삶을 정리하면서 삶의 전반에 걸쳐 쇄신하고, 새로운 마음을 가지고 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그래서 지금은 기분도 많이 좋아졌고, 새로운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완전히 모든 것이 해결된 상태는 아니지만 말이다.

 

이동현 씨는 군대 말년 많은 시간을 자신에 대한 고민으로 보냈다. 특히 지난 날들을 생각하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들을 했다. '앞으로 나가서 어떻게 살아야 하지', '어떻게 하면 나를 바꿀 수 있을까', 이런 생각들. 그러다 문득 새롭게 시작하는 데 가장 근본적이다 싶은 개명을 생각했다.

 

'나'를 하나의 상품으로 생각한다면, '이름'은 하나의 포장지로 볼 수 있어, 첫째는 브랜드 이름을 바꾸듯 나를 리모델링 하는 마음으로, 둘째는 새로운 홍보전략을 짜는 마음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물론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에 중점을 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을 새롭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러다 2007년 5월에 '이동현'이라는 새로운 브랜드로 거듭났다.

 

최령련 씨는 중학교 2학년 때부터 크게 아프기 시작했다. 일 년 간은 아파서 휴학하기도 했다. 그리고 다섯 번이나 재발할 정도로 심했다. 그러다 어머니께서 이름 보는 곳에 가서 알아보니 이름이 좋지 않아 그런 것이라며 이름을 바꿔야 한다고 했다. 그래서 고등학교 진학할 때 이름을 바꾸었다. 처음엔 이름이 맘에 들지 않아 투정도 많이 부렸지만 그 후로는 어쩐 일인지 크게 아프거나 사고도 나지 않아 그럭저럭 괜찮게 잘 지냈다.

 

최씨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인데 중국에선 개명하는 데 상당히 많은 돈이 든다고 한다. 개명 당시 들어간 비용을 한화로 환산하면 100만 원 이상이라 한다. 그 후로 공부를 잘 하거나, 대학에 진학하거나, 좋은 일이 생길 때면 뭐든지 어머니는 이름을 바꾼 덕이라고 한다. 어떤 것이 선후인지 그 관계는 잘 모르겠지만, 무엇보다 지금은 아프지 않아서 좋긴 하다는 것이 그의 얘기다.

 

웃지 못할, 하지만 웃었던 일들

 

이름 때문에 생긴 에피소드는 없을까. 이들의 웃지 못할 이야기를 살짝 엿들어보도록 하자.

 

동현 : 이름을 바꾸니까 무엇보다 바꿀 것이 굉장히 많은 것 같아요. 학생증, 주민등록증, 통장, 병무청 기록, 인터넷 개인정보…. 왜 이렇게 많은지 모르겠어요. 통장은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라서 더 귀찮고.

 

태현 : 그러게 말이야. 무슨 증(證)이 그렇게도 많은지…. 그래서 난 아직 안 바꾼 것도 많아. 언제 한 번은 지갑을 놔두고 잠깐 화장실을 갔었는데 친구가 지갑을 봤었나봐. 원래 친한 친구끼리는 지갑도 보고 그런 게 예사잖아. 근데 화장실 갔다 오니까 너 정체가 뭐냐고 대뜸 그러잖아. '인수'인지, '태현'인지 당황스럽다고. 지금도 그렇지만 학생증하고 운전면허증은 '인수'로 남아 있는데, 통신사카드랑 주민등록증은 '태현'으로 바꿔놨거든. 다른 건 귀찮아서 그냥 필수적인 몇 가지만 바꿨지 뭐.

 

 

동현 : 하하. 그렇군요. 증(證)은 몇 개 안 되서 괜찮은데 사이트는 왜 이렇게 많이 가입돼 있는지 귀찮아 죽겠어요. 그래서 싸이(미니홈피)는 여전히 '이민현'이예요. 한꺼번에 바꿔주는 사이트는 없나?

 

령련 : 전 이름을 두 번 바꿔서 졸업장 보면 이름이 다 달라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올라갈 때마다 이름이 바뀌었거든요. 중국에서는 어디 가든 이런 것들을 다 인정받기 위해서 개명했다는 증거를 가져가야 하거든요. 앞으로 사회생활 하면서 이런 것들을 다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니 벌써부터 걱정이 앞서네요.

 

태현 : 그렇구나. 난 이런 일도 있었어. 고향 친구가 4대 4 미팅을 주선해 줬는데, 다른 친구들은 '태현'으로 불러서 상대 여자들이 나를 '태현'으로 알고 있었어. 처음 소개도 그렇게 했었고. 그런데 고향 친구는 자꾸 '인수'로 부르는 거야. 옛날부터 '인수'로 부르는 게 더 익숙했던 거지. 그래서 '야, 태현, 태현' 이렇게 속삭여도 그게 잘 고쳐지지가 않나봐. 참 난감했었지.

 

동현 : 형은 별 일도 다 있네요. 저는 얼마 안 돼서 아직은….

 

새로움, 그 시작

 

우리는 항상 새로움 속에 산다. 곧 다가올 내일, 새로운 주, 새로운 12월. 그리고 12월이 지나면 2008년 새로운 해가 밝아온다. 우리는 항상 새로움 속에서 산다. 새로운 계획들과 마음가짐 속에서 산다.

 

새로움에는 '시간'이라는 기점이 존재한다. 하지만 '이름'을 기점으로 삼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의 삶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어떤 이유든지 이름을 바꾸는 것은 하나의 도전이며, 노력이므로. 김춘수의 '꽃'에서 이름은 하나의 존재를 의미하고, 불릴 때 가치가 있다. 이들은 동일한 존재에 다른 가치를 부여한 어떤 '잊혀 지지 않는 하나의 눈짓'이 아닐까.

 

새롭기 위해 모두가 이름을 바꾸라는 것은 아니다. 새로움은 바로 나로부터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에.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성경의 한 구절이 생각난다.


태그:#개명, #이름, #이름 바꾸기, #새로움, #시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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