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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에 눈을 떠보니 닫힌 창문너머로 온통 새하얀빛이 새어들어왔다.

 

"어머…. 눈이라도 온 건가…."

 

나의 중얼거림을 딸아이가 귀신같이 놓치지 않고 '다다다다닥' 소리를 내며 내게로 뛰어왔다.

 

"나도 보여줘요. 나도 보여줘요~"

나는 딸아이를 두팔로 감싸안고 환한 빛이 새어들어오는 창문을 힘차게 열었다.

 

"우와~ 엄마 눈! 눈!"

"정말 밤새 눈이 왔네."

 

"엄마 눈사람 만들러 나가요. 눈사람! 눈사람!"

"아침 먹고 엄마 청소 좀 하고 나가자. 알았지?"

 

"눈사람 만들고와서 밥먹고 청소하면 좋을텐데…."

 

쌀쌀한 가을부터 눈오기를 손꼽아 기다렸던 딸은 꿈에도 그리던 눈이 오자 "배고프다"고 아침부터 나를 조르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린 듯하다. 딸아이의 성화에 밥이 입으로 들어갔는지 코로 들어갔는지도 모르게 후다닥 해치웠다. 그리곤 그릇도 씻지 못하고 설겆이통 속에 그대로 넣어둔 채 장갑과 모자, 두꺼운 외투를 챙겨입고는 밖으로 나갔다.

 

세상은 온통 새하얀물감을 뒤집어쓴 것 같았다.

 

눈사람을 만들겠다며 고사리손으로 눈을 이리저리 모으고 토닥토닥 다지는 모습이 너무 귀여워 사진 한 장 찍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 고향은 전남 여수다. 28년을 그곳에서 살았지만 눈을 본 횟수는 그리 많지 않다. 원주에서 4년을 산 지금보다 눈을 본 횟수가 더 적을 듯하다. 그래서 처음에 원주로 이사왔을 땐 눈을 실컷봐서 정말 좋았었다. 하지만 옛말에도 있지 않은가, 듣기 좋은 꽃노래도 한두 번이라고. 눈은 처음에 볼 때는 좋지만 눈이 쌓이고 녹고 그리고 녹으면서 다시 얼고, 지저분해지는 길과 꽁꽁얼어 거북이 걸음마냥 더디어지는 걸음걸이… 운 없으면 한 번씩 찍어대는 엉덩방아까지.

 

그래도 첫눈이 기다려지는 이유는 눈이 소복히 쌓인 새하얀 세상과 눈만 오면 밖으로 나가자고 졸라대는 딸아이의 들뜬 웃음소리 때문이 아닐까 싶다.


태그:#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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