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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는 오늘부터 매주 1회꼴로 '이상수 칼럼 - 풍경과 고전'을 싣습니다. 이상수씨는 전 <한겨레신문> 기자로 베이징 특파원을 역임했습니다. <주역> 연구로 석사를, 중국 고대 논리철학 연구로 박사학위를 마친 중국철학 박사이기도 합니다. 현대사회의 풍경과 고전의 지혜를 씨줄과 날줄 삼아 우리의 삶과 생각을 풍성하게 해줄 성찰의 글을 기대합니다. <편집자주>
애비는 그 길을 아들과 함께 가고 싶지 않았다. 하기야 어떤 애비가 멸망과 파멸과 지옥으로 가는 길을 자식과 함께 가고 싶겠는가. 톰 행크스가 주연한 샘 멘더스 감독의 두 번째 연출 작품 <로드 투 퍼디션>(Road to Perdition, 2002)이란 영화는 '지옥으로 가는 길', '파멸로 가는 길', 또는 '퍼디션이란 곳으로 가는 길'이란 뜻이다. 갱스터 영화였지만, 내겐 울림이 있었다. 그 울림의 소재(所在)는, '아버지의 직업'에 관한 은유에 있었다.

나는 지난 6월 11일자로 17년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었다. 나보다 먼저 '백수'가 된 이들로부터 고마운 조언도 얻었고, 아픈 고백도 들었다. 조금 큰 첫 아이는 아버지가 집에 있는 것에 대해 궁금하다는 기색을 전혀 내비치지 않았고, 조금 어린 둘째 아이는 걸어 다니는 놀이터인 아버지가 집에 있는 게 너무 즐거웠다. 이건 고마운 상황이다. 그럼에도 새로운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강박의 고통이 없을 수 없었다. 지금껏 글만 쓰며 먹고 살아온 벽면서생이 마침내 '다른 직업'을 기웃거려보기도 했다. 그 '다른 직업'의 세계 쪽에 속해 있던 친구 하나는 소주잔을 기울이며 이렇게 말했다.

"너, 이 바닥이 얼마나 험한지 알기나 아니? 이런 직장 다닌다는 게, 겉보기엔 넥타이 매고 멀쩡하지만, 사무라이 노릇하는 거나 다를 게 없어. 가서 저 놈 뒤통수 치고 오라면 치고 오는 거고, 모가지 베어 오라면 베어 오는 거야. 니가 이 짓 하겠니? 넌 쓰던 글이나 써."

그의 말이 수사학적으로 과장법에 해당한다는 걸 모르는 바는 아니나, 새벽 취객이 되어 택시 뒷좌석에 쓰러질 때까지 마음은 우울했다. 그 갱스터 영화가 다시 떠올랐다.

▲ 영화 <로드 두 퍼디션>의 한 장면
ⓒ 20세기폭스
영화 속 이미지가 말끔한 편에 속했는 톰 행크스가 <로드 투 퍼디션>에서는 기관단총을 난사하는 냉혹한 '조직'의 킬러로 나온다. 영화의 배경은 대공황과 금주령의 시대인 미국의 1930년대 초엽이다. 영화에서 잔인한 건 살인 장면보다, 그 애비가 연루된 살인 장면을 우연히 목격한 아들의 눈빛에 있다.

잘 차려입은 정장과 중절모, 미소 띤 얼굴의 완벽한 가장인 마이클 설리번(톰 행크스)에겐 두 아들이 있다. 아이들은 아버지의 직업이 무엇인지 모른다. 마이클은 마피아 보스의 양아들로, 경쟁 조직을 '청소'하는 일을 포함한 '험한 일'들이 일상 '업무'이다. 어느 날 마이클이 경쟁 조직에 경고 메시지를 날리는 '업무'를 수행하던 중, 함께 갔던 보스의 친아들이 우발적으로 살인을 저지른다. 자상하고 든든한 아버지가 하는 일이 늘 궁금하던 큰아들 마이클 주니어는 하필이면 이날 우연히 아버지의 뒤를 밟았다가 피 묻은 아버지의 직업을 목격하고 만다.

영화 이야기는 여기까지만 하기로 하자. 나는 이 잔인한 영화를 보면서 <맹자(孟子)>에 실려 있는 그 만큼 잔인한 우화를 떠올렸다. 맹자의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제(齊)나라 사람 가운데 아내와 첩을 하나씩 두고 사는 이가 있었다. 그 남편이 밖에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은 뒤에 집에 돌아오곤 했다. 아내가 궁금해 "누구랑 그렇게 먹고 마셨느냐"고 물으면, 남편의 입에서 나오는 이름들은 모두 부유하고 존귀한 사람들이었다. 그 아내가 첩에게 말했다. "남편이 밖에 나가기만 하면 반드시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은 뒤에 집에 돌아오기에, 누구랑 그렇게 먹고 마셨느냐고 물으면, 모두 부유하고 존귀한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그렇게 뛰어난 인물들이 도대체 집에 찾아오는 것은 일찍이 보지 못하였으니, 내가 장차 남편이 가는 곳을 몰래 따라가서 엿보겠다."

아내는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남편 가는 곳을 샛길로 질러가며 몰래 따라갔다. 남편은 온 성내를 두루 다니도록 누구 하나랑 마주 서서 얘기를 나누는 법도 없었다. 마침내 성 동쪽 외곽의 공동묘지로 가더니, 무덤 사이에서 제사 지내는 이들에게 제사 지내고 남은 것을 얻어먹고, 그걸로 부족하면 또 다른 곳을 두리번거리다 가서 얻어먹었다. 이게 그가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고 들어오는 방법이었다.

그 아내가 돌아와 첩에게 말했다. "남편이란 자는 우리가 하늘처럼 우러러보면서 평생 모시고 살아야 할 사람인데, 지금 하고 다니는 꼴이 이러저러하다." 아내와 첩은 남편을 원망하며 뜰 한가운데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울음보를 터뜨렸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밖에서 기고만장해 돌아온 남편은, 언제나처럼 아내와 첩에게 돼먹지 않게 거들먹거렸다.

맹자는 이 우화를 소개한 뒤 이렇게 말했다. "군자의 눈으로 볼 때, 오늘날 사람들 가운데 부귀와 영화를 구하는 자들의 행태를 그 아내와 첩이 엿본다면, 부끄러워 서로 부둥켜안고 울지 않을 이들이 거의 드물 것이다."

(위에 인용한 <맹자>의 글은 전통시대에 생산된 언어인지라, 여성이 읽기에 불편한 대목들이 있었을 것이다. 앞으로도 이런 대목은 늘 양성평등의 언어로 바로잡아가며 읽어주기 바란다.)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보통 가장들의 운명

<맹자>의 우화에 나오는 이 젯밥 킬러는 갱스터 킬러 마이클 설리번의 반 토막도 안 되는 물건이다. 마이클은 그래도 가족을 먹여 살리려고나 그 '짓'을 했다지만, 이 작자는 제 입에 처넣을 걸 위해 집안사람들에게는 숨겨야 할 '짓'을 하고 다녔으니 말이다.

어쨌든 그 갱스터 영화도 <맹자> 이야기도 둘 다 애비의 직업에 관한 은유일진대, 너무 모진 나머지 애비의 흉부를 뻐근하게 만든다. 아버지의 직업이라는 게 아들에게 발각 나서는 안 될 일이며, 남편의 하루 일과라는 게 아내에게 들통 나서는 안 될 일이라고 말하는 건 이 세상의 가장들에게 너무 잔인한 어법 아닌가.

군자의 눈으로 볼 땐 맹자의 말과 같겠으나, 범용한 우리의 눈으로 볼 땐, 비루하고 허접하지만 총질을 하고 구걸을 해서라도 사랑하는 자식들을 길러내야 하는 게 힘없고 가진 것 없는 보통 가장들의 운명인 건 아닌가. 그 갱스터 영화의 부제는 '마이클 설리번을 위한 기도'였다. 이걸 보더라도 준엄한 설교로 못난 우리들을 두들겨 패며 우화를 끝맺은 <맹자>보다는 영화의 은유가 조금 더 인간적이고 조금 덜 아프다.

분명한 건, 이런 생각이나 하고 앉아 있다 보면, 17년 만에 찬바람 부는 거리에 선 이 백수가 '다른 직업'을 구하기는 난망할 것이라는 냉혹한 사실이다.

태그:#가장, #직업, #맹자, #로드 두 퍼디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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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기자가 되려는 이유는 오마이뉴스를 통해 글을 쓰고 싶기 때문입니다. 관심 분야는 교육, 문화, 고전, 정치, 통일, 중국, 동아시아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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