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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북 영덕군 창포 해돋이 공원 장모님과 집사람입니다.
ⓒ 이강원
지난 7월 15일 셋째 주 휴일, 아내와 기말고사 시험을 끝낸 아이들이랑 모처럼 경북 영덕에 살고 계신 장모님을 뵈러 처가에 갔습니다. 며칠 전부터 처가에 가기로 하였지만 장마와 태풍 마니의 영향으로 토요일 저녁에 집사람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당연히 가야한다는 집사람의 마음과 태풍 마니의 진로가 불투명하고 바람과 빗속에서 운전하기가 불편하고 위험하다는 저의 의견으로 약간의 충돌이 있었지요. 딸과 사위의 차이점이기도 하지만 가족의 안전과 운전을 담당한 기사로서는 당연함(?)이라 우겼지요. 약간의 실랑이 끝에 일요일 아침에 최종 판단하기로 하였습니다.

이른 일요일 아침! 빨리 일어나라고 우리 집 마나님 성화가 보통 아닙니다. 비도 오지 않고 태풍도 일본 쪽으로 비켜가니까 빨리 가잡니다. 애들 깨우고 짐 챙기고, 수다는 집사람 혼자 다합니다. 아침은 생략이고 우유 하나씩만 먹고 처가에 가서 아침을 먹잡니다.

처가는 '대게'로 유명한 경북 영덕군 강구면 오포리 포구 맞은편 산밑 아담한 곳에 있습니다. 재작년 장인어른이 돌아가셨고요, 큰 처남은 양산에서, 작은 처남은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하는지라 지금은 장모님 혼자 시골에 계십니다. 일평생 자식을 위해 정말 법이 없어도 사실 분이지요.

▲ 산자락밑 아담한 처갓집 입니다.
ⓒ 이강원
집(양산)에서 강구 처가까지는 쉬엄쉬엄 가도 2시간 반이면 도착하구요. 오전 8시 30분경 출발하여 태풍 끝자락인지라 고속도로가 한산했습니다. 동해안 바닷가 파도 구경을 하고도 오전 11시경 처가에 도착했지요. 가는 날이 '초복'인지라 처가 근처 슈퍼에서 잘 익은 수박 한통과 육계 2마리, 장모님 좋아하시는 반찬 몇 가지를 같이 샀습니다.

처가에 도착하니 장모님 반가움에 주름진 얼굴 활짝 펴며 "아이고∼ 왔는가" 하시며 반기고요. 이젠 집사람 표정이 달라집니다. 홈그라운드인 게지요. 표정엔 자신 만만하고,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정신이 없습니다. 시집가면 그만이지만 아직 어릴 적 살든 때묻은 곳곳이 변함없는지 확인하고자 하는 것 같습니다.

▲ 장가간 지 18년차. 아직도 식량을 처가에 의존 합니다(장모님이 대장이고, 집사람과 딸도 구경 중입니다).
ⓒ 이강원
요즈음은 한 달에 한번은 짬을 내어 처가에 갑니다. 나름의 바쁜 일상이지만, 친가 부모님이 안 계신지라 혼자 계신 장모님 뵙는 일도 소흘히 않으려 하고요, '효도'란 어려운 것 아니라 여깁니다. 시간 내 손자, 손녀, 앞세워 얼굴 보여주고, 따뜻한 말 한마디, 형편에 맞게 약간의 용돈이면 안 되겠습니까?

쉽게 쉽게 살려고 합니다. 돈 벌어서 나중에 형편 나아지면… 하고 생각했는데, 살아보니 그놈의 형편 50보 100보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렇게 합니다. 형편 것, 작은 것이라도 '지금' 매사에 적용하고 살고자 합니다.

▲ 장모님댁 논 옆 텃밭입니다.
ⓒ 이강원
아침 겸 점심을 맛나게 먹었습니다. "우리 사위 땜시 초복 고기랑 수박 잘 먹는다"는 장모님 칭송과 함께. 하지만 어른이 음식이 맛있겟습니까? 외손녀, 외손주 앞세워 당신 찾아줬다는 그 마음이 맛나는 게지요.

집사람에게 빨리 설거지를 하라 재촉하여, 애들은 집을 지키라 하고 장모님과 집사람을 태워 태풍 마니의 끝자락을 음미하러 차를 타고 영덕 창포해맞이공원에 갔습니다. 시원한 바람과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를 보며 마음껏 심호흡했습니다.

귀갓길에 장모님께서 논 구경가자고 하십니다. 당신이 애정을 가지고 자식같이 길러는 곳을 보여주고 싶음이지요. '아그들아 너그들이 없으니 이게 내새끼다…'라고 하시는 것 같습니다. 논과 밭 천천히 둘러보시고 밭에서 애숭이 호박을 따십니다.

"너거 가지고 가서 묵어라." 귀하고 소중한 마음이지요. 호박 한 덩이, 쌀 한 줌에서, 장모님의 마음과 냄새가 스며있는 것 같습니다.

저녁 맛나게 지어 먹고 집으로 가려고 하니 장모님께서 바쁘십니다. 이것저것 비닐봉지에 챙기시고, "돈 들여 사먹지 말고 내 몸 움직일 동안 생전 너거들 '쌀' 걱정 말 거라" 하십니다. 우리가 효도를 하러 간 건지…. 사랑을 받으러 간 건지…. 불 분명하지만 마음은 따뜻하고, 아늑하기만 합니다.

"어머님… 건강 챙기이소, 식사 걸러지 말고예…."
"오냐, 조심해서 내려가거라."

또 말씀은 안 하시지만 "내 딸 고생시키지 말거라" 하시는 것 같습니다. 내 느낌에 말입니다.

▲ 강구시장 입구.
ⓒ 이강원

태그:#처가, #장모님, #효도, #영덕, #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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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뉴스의 오랜벗이 시민기자를 신청하게된 동기고요,하루한두번 검색을 통해서 오마이팬이 됐네요. 내가보는 세상의논높이를 표현하다는 생각이구요, 자신있는 쓰기는? 배우면서 도전하렵니다.. 기회가 있으면... 능숙한 글솜씨는 아니지만 ... 체험과 현실감있는 글을 만들어 보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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