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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 하면 어떤 말이 떠오르세요? 옛 추억의 아련한 기억들, 그리고 기차 여행이라는 감정에 대한 설렘 등이 떠오르곤 하죠. 이들 모두 하나같이 아름답고 행복한 말들이에요.

그런 기차들 중 일 년에 딱 한번 만날 수 있는 기차에 대해 들어보셨나요? '도깨비 열차'가 그 주인공이랍니다. 이름만 들어도 아찔하고 섬뜩하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국내 유일의 논스톱 열차, 마임축제의 난장으로 안내하는 환상특급열차, 그가 어떤 매력으로 사람들을 홀리는지 한번 볼까요? <기자 주>


▲ 세상에 없던, 세상이 기다리던 '도깨비 열차'.
ⓒ 왕보영
'도깨비 열차', 이름부터 범상치 않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지난 6월 2일 청량리역에서다. 벌써부터 역 광장엔 그를 만나기 위한 사람들로 시장통이 따로 없었다.

"올해도 많은 사람들이 저를 찾아왔네요. 일 년에 딱 한번 만나 볼 수 있는 사람들이라 몸도 마음도 설레요."

그는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생각에 벌써부터 들뜬 모양이었다.

▲ 마르코 카롤레이와 북적이는 역 광장.
ⓒ 왕보영
'도깨비 열차'라 해봤자 겉보기엔 여느 기차와 다름없다. 하지만 겉모습만 보고 실망하기엔 이르다. 유리창 곳곳에 붙은 몽돌이들, 기차 입구마다 걸어놓은 무지갯빛 천들, 그리고 그와 함께 춘천까지 동행할 마임인 들로 인해 그는 충분히 특별했다. 기차가 곧 출발했다.

"이 순간을 일 년 동안 기다렸어요. 나를 보러 온 사람들을 태우고 신나게 달릴 수 있다는 것. 그런 점에서 난 정말 행운안 것 같아요."

그의 목소리가 들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기차 안의 분위기가 뜨거워질 것이라 호언장담했다.

'내가 존재하는 이유, 나와 함께하는 이들'

▲ 익살스러운 마르코 카롤레이.
ⓒ 왕보영
기차 안의 사람들은 다들 제각각이었지만 모두 '도깨비 열차'의 매력에 홀린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가진 것은 분명했다. 기차를 더 특별하게 만들어준 내부 장식들, 그리고 기차를 돌며 마임을 하는 이들로 인해 눈이 즐겁고 마음이 즐겁다.

도깨비 열차에서 마임을 하느라 분주한 마르코 카롤레이를 만났다. 이탈리아에서 온 그는 유머와 재치가 넘쳐나는 사람이었다. 어찌나 익살스러운지 그 때문에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그칠 줄을 모른다.

"뽀또"를 외치며 사람들과 함께 사진을 찍어주는 센스를 발휘하는가 하면 촬영하는 기자에게 카메라의 먼지를 닦아주겠다며 붓을 들이대기도 한다. 그렇게 한참을 사람들과 어울려 놀더니 지쳤나 보다.

한 여자에게로 가서 어깨가 아프다면서 "마사지"를 외치며 어깨를 가리킨다. 이에 당황한 여자가 우물쭈물하더니 곧 마르코 카롤레이의 어깨를 주무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안마 솜씨가 맘에 들었나 보다. 사람들에게 아픈 사람들은 그녀에게 가서 마사지를 받으라는 농담을 건네기도 한다.

▲ 마임을 선보이고 있는 츄산.
ⓒ 왕보영
어디 그뿐만인가, 이번엔 일본사람 츄산이 빨간 공으로 사람들을 홀리기 시작했다. "어머 저것 봐, 분명 조그만 공이었는데 어떻게 커졌데? 신기하다 그치?" 여기저기서 탄성이 흘러나온다.

검게 화장한 눈, 코 밑에 붙인 두꺼운 콧수염, 그리고 벙거지 모자에 가슴까지 추켜올린 멜빵 바지를 입은 그의 외모가 귀엽기만 하다. 츄산은 꾹 다문 입 대신 몸짓으로 마음으로 관객들과 소통했다. 그의 말과 마음이 사람들에게 전해졌는지 어느새 기차 안은 그의 쇼로 인해 열기가 뜨거웠다.

"어때요? 조금은 소박하긴 하지만 이 순간이 나를 존재하게 하는 이유예요. 어떻게 말로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이 순간의 벅찬 감동과 행복을…."

그의 얼굴은 환한 미소로 넘쳐났다. 그는 국내 유일의 열차라는 자랑 대신 겸손함을 보였다. 그리고 그를 존재하게 해 주는 사람들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연거푸 반복했다.

지난 2000년에 태어나 올해로 7살 먹었어요

▲ 마임은 몽돌이와 함께.
ⓒ 왕보영
그가 태어난 지 벌써 7년이 지났다.

"벌써 7살이나 먹었네요. 처음엔 남들과 다르다는 생각에 마냥 좋고 행복하기만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하면 사람들을 더 즐겁게 해 줄 수 있을까라는 책임감이 더 큰 것 같아요."

그의 말에 성숙함이 성큼 배어났다.

그의 첫 시작이 생각한 것만큼 좋지는 않았다. 세상에 처음 태어나 이만큼 자리 잡기까진 숨은 사람들의 공은 물론이고 노력해야 할 점이 한둘이 아니었다.

"제가 특별하다는 생각에 대한 압박감도 크긴 컸죠. 하지만 나를 만들어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힘을 내야만 했어요."

여기저기 홍보도 해보고 부족하지만 이것저것 특별한 공연준비도 하고 사람들을 맞을 준비에 매년 최선을 더 했다고 한다. 그의 노력이 결실을 맺을 걸까. 지금은 일 년에 한번 그를 만나기 위해 사람들이 알아서 발걸음을 한다.

"내가 이만큼 컸다는 것을 생각하면 마냥 뿌듯하죠. 하지만 아직 일러요. 더 많이 성장해야 하고 더 많이 특별해져야 하니까요."

그의 열정은 한여름의 태양빛처럼 뜨거웠다.

2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여행, 그리고 아쉬운 이별

▲ '도깨비 열차' 일 년 뒤에 다시 만나요.
ⓒ 왕보영
'도깨비 열차' 안에서 시끌벅적하게 공연을 즐기다 보면 어느새 종착역인 남춘천역을 향한다. 종착역이 가까워질수록 그의 얼굴엔 희비가 교차한다. 그 표정은 무엇일까. 올해도 해냈다는 성취감? 아니면 또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하는 아쉬움일까? 아마도 그 비슷한 감정일 것 같다.

"올해도 아무 사고 없이 무사히 도착했네요. 어때요? 즐거우셨어요?"라고 기자의 감정을 묻는다. 그의 말엔 씁쓸한 무언가가 남았다. 아마도 지금 느낀 이 기분, 이 희열을 위해 또다시 일 년을 기다려야 한다는 아쉬움이 분명했다.

국내에 단 하나뿐인, 그리고 가장 소중한 열차 '도깨비 열차'. 그의 매력을 다 알기엔 2시간이 채 안 되는 시간이 너무나 짧았다. 그 시간 그와 동행하면서 느낀 그의 매력은 1년이라는 적지 않은 시간을 이 짧은 순간을 위해 노력하는 숭고미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열정을 다 보여주기엔 그 시간이 너무 짧다는 것도 말이다. 그래서 '국도대장정'을 하는 도깨비 열차가 있다면 어떨까 하는 엉뚱한 생각을 해보기도 했다.

비록 그는 상상했던 것만큼, 그의 이름만큼 아찔하지도, 스릴이 넘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와 함께한 모든 이들은 잊지 못할 것이다. 도깨비 난장으로 안내하는 동안 물씬 풍기는 그의 매력과 그의 뜨거운 열정을 말이다. 그리고 내년을 기약하며 그렇게 하나둘씩 도깨비 열차를 빠져나와 밖으로 향한다.

"내년엔 어떻게 사람들을 맞을지 지금부터 생각해봐야죠. 내년엔 또 어떤 사람들과 함께할지, 어떻게 나를 꾸미고 치장할지를 궁리하고 생각하다 보면 일 년, 그까짓 거 아무것도 아니죠!"

덧붙이는 글 | '철도와 함께 떠나는 여행' 응모글.


태그:#마임축제, #도깨비 열차, #환상특급열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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