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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 새해가 밝았다. 새해에는 희망을 말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새해 첫날 국내외 주요 언론의 굵직한 머릿기사를 장식한 것은 죽음의 소식이었다. 죽음의 주인공은 이라크 전 대통령인 사담 후세인. 또 그의 목에 교수대의 밧줄이 걸리는 사진이 실렸다.

그리고 그의 죽음과 시신 수습을 둘러싼 미국과 이라크 집권 정부(시아파)의 미묘한 대립도 전해졌다. 타당한 비유인지 모르겠지만 과거와 현재, 미래, 그리고 그와 주변을 둘러싼 상황에서 초유의 베스트셀러 '삼국지'가 연상됐다.

후세인의 죽음은 삼국지 최대의 영웅 관우의 죽음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충성과 무(武)를 대변하는 영웅과 학살 주인공의 비교가 어색하지만 후세인도 지지자들에게는 맹목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죽음 그리고 그 뒤

삼국지의 관우는 촉(의형제인 유비의 나라)의 영토 형주를 지키다 오(손권의 나라)의 공격을 받고 패했고 항복을 거부하다 목이 잘렸다. 관우 공격을 주도한 것은 오의 장수 여몽이었다.

괄목상대라는 고사의 주인공이기도 한 여몽은 관우를 이겼지만 관우로 인해 죽는 것으로 돼 있다. 소설에서 그는 승전(형주 탈환)을 기념하기 위해 손권이 마련해 준 잔치에서 관우의 혼령에 의해 사망했다. 관우의 혼령이 씌여 주군 손권의 멱살을 쥐고 흔들다 땅에 넘어져 결국 일곱 구멍에서 피를 쏟으며 죽는 것.

손권은 복수심에 불타는 유비의 눈치를 보다 관우의 시신을 위나라의 조조에게 보냈다. 조조 또한 관 속에서 눈을 부릅뜨는 관우의 혼령에 놀라 병을 얻는다. 조조는 여몽과 달리 병사하지만 병의 뿌리에는 관우가 있었다.

후세인은 지난 2003년 12월 은신처에서 체포된 뒤 3년여간 재판을 받아오다 사형을 선고받았다. 형 확정 나흘만에 교수형 됐고 20여시간만에 고향 마을(티크리트)에 묻혔다. 그의 죽음은 며칠 지나지 않았지만 죽음 이후에도 죽음이 이어지고 있다. 이라크 내에서는 폭탄테러로 인해 수십명이 죽었고 추가 테러 우려도 크다.

그의 제거를 목적으로 한 미국의 이라크 공격(2002년 3월) 이후 부시는 재선이라는 전리품을 얻었지만 최근에는 중간선거 패배라는 끔찍한 상황을 겪고 있다. 이라크전을 주도한 네오콘(럼스펠드 전 국방장관, 볼턴 전 유엔주재 미 대사)들은 여론에 밀려 추풍낙엽처럼 물러나고 있다.

이라크전쟁은 미국의 차기 대통령 선거에서 또다시 주요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공화당은 민주당의 힐러리나 오마바, 고어 같은 예비 경쟁자 외에 반전여론이라는 거대한 장벽과 맞서야 한다.

명성과 십자가(?) 그 이전

후세인은 사실상 미국에 의해 죽임을 당했지만 그를 아랍권의 대표적 지도자로 승격시켜 준 것도 미국이었다. 지난 1969년 이라크 바트당(순니파)의 쿠데타를 주도했던 그는 2인자 생활을 하다 10여년 만에 전면에 나섰다.

국내 적대세력의 관심을 분산시키는 전략으로 그는 이란과의 전쟁(80년9월)을 택했다. 인질사건(테헤란 주재 미국 대사관 점거)으로 이란과 적대적이었던 미국은 이라크를 측면 지원했다.

지난해 이라크전 교착의 책임을 지고 경질된 럼스펠드와 후세인의 인연도 깊다. 럼스펠드는 지난 83년 후세인을 만나 이란을 혼내주는 조건을 내걸고 미국의 군수 지원을 밀약하기도 했다. 아버지 부시는 부통령 시절이던 82년 이라크를 테러지원국 명단에서 해제하고 무기를 제공하는 주요 역할을 맡았다. 후세인을 미국이 만든 괴물이라고 규정한 영국 언론 '인디펜던트'의 표현대로 그는 미국에 의해 명성을 얻었다.

쿠웨이트 침공(1990년8월)이라는 미국 뒤통수 때리기를 시도했던 후세인은 전쟁에서는 패했지만 이후 10년 이상 압도적인 지지로 대통령직을 수행하는 동력을 얻었다.

서당 훈장이던 관우가 무를 뽐내고 명성을 얻은 것은 정작 조조의 밑에서였다. 유비의 부인(형수)을 보호하기 위해 조조에게 잠시 몸을 의탁했던 그는 유비의 소식을 알게 되면서 조조의 곁을 떠났다. 조조에게서 적토마와 금은보화를 얻었지만 오관 돌파(조조의 세력권을 빠져나가기 위한 과정)로 상징되는 사실상의 배신을 감행했다. 그리고 적벽대전 등과 여러 번의 전쟁을 거치면서 조조와 그의 군대를 생명의 위협에 빠뜨렸다.

관우는 죽음 뒤에 군신이 되었고 장수 관우라는 이름 대신 중국과 한국 등의 서민들에게 관왕의 칭호를 얻었다. 후세인은 독재자였고 쿠르드족 등에게는 학살자였지만 이번 정치적 재판으로 신화로 격상될 우려가 있다.

항장불살 고사가 무색하게 그는 일사천리로 사형에 처해졌다. 후세인 처형에 부정적이었던 EU(유럽연합)는 "(사형 집행은)야만적인 행위"라며 "그를 순교자로 만들 수 있다"고 깊은 우려를 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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