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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점상도 사람이다!" 한양대학교 정문 앞, 노점상들의 천막 농성장 모습. 지난 8일부터 노점상들은 용역의 강제 철거에 대비해 천막에서 밤을 보내고 있다.
ⓒ 최훈길
"새벽에 용역이 들이닥친다. 그러니까 천막에서 이부자리 펴고 자고 있어야 한다."

벌써 천막 농성 8일째(15일 기준)다. 한양대학교(서울시 성동구) 정문 앞에는 지난 8일부터 '노점상도 사람이다, 인간답게 살아보자'는 펼침막을 내건 천막이 등장했다. 한양대 주변의 노점상들이 서울시의 녹지사업 시행과 더불어 실시될 것으로 보이는 노점상 철거에 대비해 만든 천막이다.

서울시는 대학교 담장 허물기 사업의 일환으로,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에서 한양대 정문까지 담을 헐고 학교와 협의해 공원을 만들 예정이다. 이에 따라 성동구청은 한양대 주변 노점상들에게 8일까지 자진 철거할 것을 요청했지만, 노점상들은 생존권을 주장하며 농성에 들어갔다.

그러나 노점상들이 학교 정문 앞에서 1주일 넘게 천막 농성을 했지만 한양대는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는 말만 반복할 뿐이다. 또한 서울시와 성동구청도 '노점상 철거나 이전 외에는 방법이 없다'며 타협 가능성에 선을 긋고 있다.

불법이란 이유로 노점상들에겐 보상도, 이전 부지 제공도 없다고 한다.

"세상에 길바닥에 나오고 싶은 놈이 몇이나 있겠어"

▲ 노점 모습. 한양대학교 정문에서 지하철 2호선 한양대역까지 노점이 줄지어 있다.
ⓒ 최훈길
"노점상 불법이라는 것, 우리도 인정해. 그런데 우린 어쩔 수 없이 나올 수밖에 없는 상황이야. 나도 몇 군데 일자리 구하러 다녔어. 그런데 받아주질 않아. 집에 가면 고지서 나와 있고 내 새끼 기다리고 있는데, 뭐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 세상에 길바닥에 나오고 싶은 놈 몇이나 있겠어. 나도 지금 우리 자식에게 노점상 한다는 말 못하고 나왔어."

며칠째 천막에서 밤을 새고 있는 노점상 노성관(48)씨. 지난 11일 밤 천막에서 만난 노씨는 노점을 할 수밖에 없는 현실을 사람들이 이해해주길 바랐다. 노씨는 "노점상만큼 힘이 없는 곳도 없다"고 말하고 "그렇지만 노점상만큼 '뭉치면 산다'는 것이 명백히 적용되는 곳도 드물다"고 덧붙였다.

마장동에서 온 이정란(가명, 55)씨도 노씨와 사정이 별반 다를 바 없다. 장애가 있는 남편과 아들 둘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이씨는 하루에 불과 3~4시간만 자며 생활하고 있었다.

"장애자라고 해서 국가에서 혜택주는 것은 전화 요금 30% 할인해주는 거랑 TV 시청료 안받아가는 게 다입디다. 내가 안 벌면 우리 가족의 생계는 어떻게 되겠어요? 요즘은 우리 시대와 달라서 가르쳐야 해요. 부모가 가난해서 공부 못 시키면 나보다 더 가난한 자식이 되니까. 난 지금 힘들고 어려워도 자식도 똑같이 힘들라고 말을 못해요."

'일방적인 철거' 때문에 노점상들은 더욱 힘들다고 했다. 황수열 전국노점상총연합 광성지역 연합회 한대지부장은 "11월 2일에 계고장이 나왔는데 8일에 나가라고 통지가 온 거여, 1주일도 안 돼서 나가라는 거지, 이건 용역 풀어서 해결하겠다는 거야, 공무원은 과장 퇴직하면 다 밥 먹고 잘 사는데 우리는 어떡하나"라며 분통을 터트렸다. 황 지부장은 "무슨 일이 있어도 난 죽을 때까지 이 사람들과 함께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노성관씨도 서로 대책을 강구하고 합의점을 찾아갈 것을 주문했다. 노씨는 "녹지정책, 우리도 환영해, 담 허무는 것을 반대하는 것도 아니야, 오히려 학교 측이 우리에게 관심이 없고 우리를 무시하는 사고방식 때문에 그런 거야, 사람 살아갈 방도는 만들어줘야지"라고 말했다. 또한 동대문, 숭실대 등 노점상들의 생계가 곳곳에서 위협받는 현실을 언급하며 이런 상황이 계속되면 "이것이 불씨가 되어 전국적으로 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양대학교 측은 '공원 주변에 노점상을 위한 공간은 없다'고 밝히고 있다. 이상열 한양대 관제과 관리처장은 14일 인터뷰에서 "벤치, 분수대를 넣으면 다른 것을 넣을 공간이 없고 학교 공간도 부족한데 이 안에 노점상을 들일 수는 없다, 공원은 노점을 위한 환경이 아니다"라며 노점상에게 "학교에서 해줄 수 있는 건 없다"고 말했다.

또한 이 처장은 "학교는 부지만 제공할 뿐 녹화사업은 서울시에서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와 관련, 서울시 관계자는 "녹지공원을 설계할 때 한양대와 협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서울시의 이러한 방침을 제시하며 다시 묻자, 이 처장은 "서울시에서 주관하고 학교는 필요 사항을 요구할 뿐"이라며 말을 바꿨다.

노점상 철거 후 대책?... 서울시와 구청 "없다"

서울시는 지난달 16일 '한양대 담장 개방 녹화 사업 계획서'를 성동구청에 보내며 녹화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정주섭 성동구청 도시관리과 가로환경팀장은 "서울시에서 지난달 27일부터 녹화사업을 착공하는데 (한양대 정문에 있는) 노점상을 치워달라고 요청했다"고 밝혔다. 또한 "늦어도 11월 15일 이전에 하면 좋겠다"는 말까지 덧붙였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구청 측은 여러 차례 노점상 측을 만나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다. 그러나 오화철 서울시 녹지사업소 주임은 "노점상 때문에 이렇게 (착공 지연이) 될지는 몰랐다"며 '서울시에서 요청했다'는 정주섭 팀장의 말을 부인했다.

한편 노점상 철거 후 대책과 관련, 서울시와 구청이 아무 것도 마련해 둔 것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동구청의 정주섭 팀장은 "노점상에 대한 월동 대책은 쉽지 않다, (월동 지원을) 해줘야 할 데가 성동구에만 400여 개가 넘는다, (노점상들이) 춥다고 해도 도로관리부서에서 뭐라 말씀드릴 건 없다, 가장 좋은 방법은 노점상 (스스로) 이전만 해주신다면 용역을 쓰지 않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녹지사업소의 오화철 주임은 "나무 심고 분수대를 만들어 공원을 조성하는 것은 조경시설이지 노점상을 위한 게 아니다, 노점상과 함께 할 구조가 안 된다"며 철거를 하든, 이전을 하든 공사 여건을 갖추는 게 우선이라고 말했다.

"여기서 나가면 우린 어디서 밥 줄 데도 없는 노숙자 신세야"라고 말하는 노점상 노성관씨의 말은 벼랑 끝에 떠밀린 그들의 현실을 말해준다.

"마음만큼 실행을 못하고 있다"는 신재웅 한양대 총학생회장의 말처럼, 학생들도 노점상 문제에 쉽사리 관심을 보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노점에 자신의 생존권을 걸고 추위에도 뜬눈으로 지새우는 사람들. 이들의 천막 농성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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