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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의 끝자락에 걸린 제주 별도봉의 풍경도 여느 아픈 강산 못지않게 쓸쓸함이 묻어 있다. 스산함이랄까. 마지막 겨울의 흔적을 밟고 가는 2월의 잰걸음이 산책로에서도 낯설기만 하다. 봄을 만나러 별도봉을 찾았다면 서둘러 발길을 돌렸을 것이다. 겨울바람을 앞세우고 날아온 바닷내음이 코끝에 머문다. 규칙적인 시간을 따라 산책로를 오가는 인생들에게는 이 황량한 날씨도 짐이 되지 않는가 보다.

10년 전 장수산책로가 만들어지면서 별도봉은 가벼운 흔적을 남기는 곳이 됐다. 자연의 신비에 심취하거나 아름다운 인생을 향해 질주하는 운동코스가 전부인 듯하다. 이 오름의 생명정보와 역사의 상흔이 '산책로'의 가치에 밀려 문명의 뒷편으로 내몰리는 것은 아닌지 아쉬움이 크다.

▲ 제주 화산폭발로 탄생한 제주 별도봉 전경
ⓒ 김동식
제주시 북동쪽 해안에 있는 별도봉은 석양이 아름다운 사라봉 옆에 나란히 붙어 있는 오름이다. 표고가 136m가 되는 자그마한 화산이다. 그러나 이 오름은 겉보기와는 달리 이름값을 하는 자연문화유산이다.

1억7200만년 전의 '쥬라기 화강암'

제주 화산의 비밀을 캘 곳은 섬 곳곳에 많다. 그 가운데 별도봉은 특별한 곳이다. 이 곳에서는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 발견되고 있다. 제주 화산활동 이전의 시대로 시간여행을 할 수 있는 단서가 나오기 때문이다.

별도봉 일대 최하부에는 신흥리 현무암과 별도봉 응회암이 분포한다. 별도봉 알오름 응회암층(화산쇄설암층)에는 반상 현무암과 제주도의 하부 기반암으로 보이는 담홍색의 화강암편이 섞여 있다. 이 암석은 중생대에 해당하는 1억7200만년 전에 만들어진 것이다.

▲ 별도봉 알오름 해안가에는 1억7200만년 전의 쥬라기 화강암이 응회암층에 섞여 있다.
ⓒ 김동식
1999년 발표된 지질학계의 조사자료에 따르면 미르메카이트 조직(myrmekitic texture)과 미사장석이 산출되었으며, K-Ar법(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한 연대측정법)에 의한 절대연령이 1억7240만년(172.4Ma)인 '쥬라기 화강암'으로 밝혀졌다.(다른 연구자의 CHIME 연령측정-우라늄 비평형계 측정법-에서도 173±31Ma의 쥬라기 연령이 확인됐다) 제주도내 다른 지역에서 발견되는 백악기의 불국사 화강암류와 크게 대비되어 연구자들을 흥분시키고 있다. 이 때라면 지중해가 형성되고 대륙이 갈라지던 시대다. 지금도 별도봉 알오름 해안가로 내려가면 별도봉 응회암층에 박혀있는 화강암 조각을 관찰할 수 있다. 제주도의 생성과정을 연구하는데 이처럼 귀중한 정보가 또 어디 있을까.

별도봉의 탄생도 흥미거리다. 사라봉과 별도봉 사이에는 보드라운 알을 품고 있는 오름이 하나 있다. 이 쥐똥만한 오름이 이 곳 3개의 오름 가운데에는 맏형격이다. 이 지역의 최초 화산폭발 때 알오름이 제일 먼저 만들어졌다. 그 뒤를 이어 별도봉 화산활동에 의해 비석거리 하와이아이트(hawaiite : 용암류)가 쌓였고, 이어 별도봉 분석구(cinder cone)가 형성됐다. 그 후에 사라봉 화산활동에 의해 사장석과 감람석이 많은 건입동 하와이아이트가 분출했다. 사라봉 분석구는 제일 마지막으로 만들어졌다.

기염을 토하는 화산활동은 침식작용을 거치며 북쪽의 '애기업은 돌'과 '자살바위'와 같은 기암과 주상절리를 빚어냈다. 적어도 100만년 전부터 꿈틀거린 것으로 지질학계에서는 내다보고 있다. 화산의 신비는 이처럼 끝이 없다.

▲ 화산폭발로 세상에 나온 별도봉은 푸른 바다를 향해 엎어질 듯 벼랑을 이루고 있다.
ⓒ 김동식
이별오름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

화산폭발로 탄생한 별도봉은 푸른 바다를 향해 엎어질 듯 벼랑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옛날에는 '베리오름'이라 불렀다. '베리'란 '벼랑'이란 뜻의 제주말이다. 그런데 별도봉이라고는 왜 불렀을까. 당연히 화북마을의 옛이름인 '별도(別刀)'를 딴 것이다. 지명은 그 시대의 삶과 문화를 반영하는 만큼 그 사연도 깊다.

원래 이 오름과 가까이 있는 화북포구는 이별의 상징이었다. 화북마을은 육지나 일본으로 떠날 때 거치는 관문이었기에 더욱 그랬다. 돈 벌러 일본으로 밀항가거나, 먹고 살기 힘들어 사람 사는 서울로, 부산으로 고향을 등지는 서러운 항구였다. 이 곳을 떠난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이 많았다. '끊기 어려운 정을 칼로 베듯이 해야한다'는 슬픈 단념이 필요한 사람들이었다. 별도(別刀)라는 이름은 그렇게 세상에 나왔다. '이별의 슬픔이 칼로 베이는 것과 같다'는 뜻도 이와 다르지 않다.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 오름에서 이별하는 연인들이 많은 것은 별도봉의 슬픈 단념을 믿었기 때문일까.

이별오름에 마음을 놓지 못하는 이유는 화북포구 때문만이 아니다. 때로는 전설로, 때로는 시대의 아픔으로 그 흔적이 쌓이고 있는 것이다.

▲ 망부석 전설이 서려있는 '애기업은 돌'에 까치가 날아와 앉아 있다.
ⓒ 김동식
해안단애를 끼고 푸른빛 바다가 출렁이는 산책로를 따라 길지 않은 능선을 오르면 앞을 가로막는 기암이 있다. 별도봉 벼랑 끝에 우두커니 서있는 '애기업은 돌'이 그것이다. 이 바위에는 고기잡이 나간 남편이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않자 아기를 업고 이 곳에서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기구한 전설이 서려 있다. 섬사람들이 안고 살았던 이별에 대한 아픔이 망부석 이야기를 만든 것이다. 애기업은 돌 위에는 까치가 날아와 앉아 있다. 말 못하는 날짐승에게도 기다려야 할 영혼이 있는지 모르겠다.

애기업은 돌을 끼고 바다 쪽으로 내려가면 장승처럼 서 있는 또 하나의 기암과 마주친다. 보이는 그대로 풍광을 받아들였다면 바다로 곤두박질치는 해안단애에 솟구치는 감흥을 주체하지 못했을 것이다. 끝없이 펼쳐진 망망대해, 깎아지른 기암절벽, 그리움을 실어 나르는 파도너울에 혼을 빼앗길 수 있기 때문이다.

▲ '다시한번 생각하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는 별도봉 자살바위
ⓒ 김동식
그것도 잠시다. 바위에 새겨진 "다시 한번 생각하라"라는 글귀가 사람의 넋 나간 마음을 할퀼 때면 오싹할 정도다. 이곳이 제주 섬사람들의 아픈 기억으로 남아있는 자살터다.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서러운 인생들이 죽음으로 나들던 곳이다. 삶으로부터의 이별을 감행하던 자살바위에는 아직도 슬픔을 깨물며 천길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은 뭇 생명들의 영혼이 떠도는 듯하다. 이곳에서 죽었다는 어느 처녀의 무덤이 이승과의 인연을 떼지 못한 채 자살바위를 배회하고 있다. 20여년 전, 여기서 긴 이별을 했던 새내기 대학 후배 여학생도 강의실에 앉아 창문을 바라보던 그 눈빛으로 창백하게 다가와 가슴 언저리에 머문다.

▲ 10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서러운 인생들이 죽음으로 나들던 곳이다.
ⓒ 김동식
심란하기 이를 데 없다. 자살바위를 빠져나와 해안선이 끝없이 펼쳐진 화북마을을 바라보는 마음도 그렇다. 생이별을 아쉬워하던 그 옛날 섬사람들도 이와 같은 심정일까. 운동화를 질끈 동여매고 좁은 산책길에서도 감각적으로 추월하는 사람들 때문에 당황할 새도 없다. 뒤따라가며 운동하는 사람들의 속도를 재는 버릇도 오늘은 잠시 버리고 싶다.

▲ 세월이 흐른 뒤에도 이별오름은 시대의 아픔을 따라가는 것일까.
ⓒ 김동식
태평양전쟁의 상흔, 진지동굴

이번에 찾아간 곳은 별도봉 남쪽 기슭에 있는 식민역사의 수난현장이다. '전진거점진지'로 파놓은 진지동굴이 그 것. 눈으로 확인한 것만 모두 10개에 이른다. 태평양전쟁 때 일본제국주의는 최후의 항전을 위해 제주 섬 전역을 옥쇄지역으로 선포하고 요새화하기 시작했다. 1945년 2월, 미군의 일본 본토 상륙을 저지하기 위해 그 길목을 차단하는 결호작전(決號作戰)이 수립되고, 제주도는 결7호 작전지가 됐다.

▲ 화산이 빚어낸 자연의 속살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야욕이 생생히 남아 있다. 진지동굴 내부 전경.
ⓒ 김동식
구멍이 숭숭 뚫린 자연의 속살에는 일본제국주의 야욕이 생생히 남아 있다. 이것도 역사와 이별을 강요하는 오욕의 흔적임에는 분명하다. 우리 역사를 단절시키고 제국주의의 불바다로 이끌고자 했던 전쟁의 상흔이기 때문이다.

이곳에도 아쉬움은 남아 있다. 강제 동원된 제주민중들이 삽과 곡괭이로 파놓은 역사의 현장이 행정기관에 의해 소통을 차단해 버린 것이다. 삼나무를 엮어 만든 철책 때문에 동굴 안을 들여다 볼 수도 없다. 산책을 즐기는 저기 저 사람들에게 부끄러운 치부를 감추고 싶었던 것일까. 아픈 과거를 생생히 보여주어 다시는 이러한 비운의 역사가 반복되지 않도록 세상에 떳떳이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뭐란 말인가.

▲ 별도봉 진지동굴 10개가 모두 삼나무 철책으로 봉쇄돼 있다.
ⓒ 김동식
여태까지 방치한 이유도 또 알 수 없다. 진지동굴을 알리는 안내판 하나 없이 산책로만 뻔질나게 닦아 놓은 행정을 보면서 역사를 대하는 그들의 태도를 탓하지 않을 수 없다. 여기서도 지난 역사와의 결별을 준비하는 것은 아닌지 별도봉의 이름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봄이 오는 길목을 찾아 어둠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이 제법 늘고 있다. 오름 능선에는 아직도 겨울을 벗지 못한 흔적이 또렷하다. 사람은 봄을 향해 올라가고, 별도봉에 서린 기운은 여전히 겨울이다. 이별오름이어서가 아니다. 제자리를 찾지 못하는 오름 팔자가 안타까운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역사와 문화의 교차점에서 한 몸으로 만나 단절된 거리를 좁혀야 하겠다. 이 겨울을 잘 달래서 희망꽃을 피워야 하지 않겠는가.

▲ 사람들은 봄을 향해 올라가고, 별도봉에 서린 기운은 여전히 겨울이다.
ⓒ 김동식

덧붙이는 글 | <찾아가는 길>
제주시 북동쪽 우당도서관 옆으로 올라가면 사라봉과 별도봉 산책로 입구가 나온다. 또 제주시 화북동 오현고등학교 옆 도로에서 좌회전 한 후 오현고체육관 뒤로도 올라갈 수 있다. 

<주변 가볼만한 곳>
사라봉, 국립제주박물관, 삼사석, 해신사, 삼양동선사유적지, 삼양해수욕장, 불탑사 5층석탑, 원당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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