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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서울 중구 태평로 삼성본관.
ⓒ 권우성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에 대한 고려대의 명예철학박사학위 수여를 둘러싼 갈등을 계기로 삼성의 힘이 너무 커진 것이 아닌가 싶더니, 이제는 '삼성공화국'인가라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이에 대해 삼성그룹도 부담을 느꼈는지 지난 1일 그룹 사장단 회의에서 "한국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한 이상 단 1%의 반대세력이 있더라도 포용해 진정한 국민기업으로 정착할 수 있도록 '상생'과 '나눔 경영'에 박차를 가하자"고 발표했다.

그러나 '무노조 경영'이나 경영권 세습과정에서의 불법·편법 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을 하지 않았다. 이런 것은 별로 문제될 것이 없다는 오만한 자세이다.

삼성그룹 문제의 핵심은 수출의 20%를 차지할 정도로 삼성이 국민경제를 지배하고 있는데도, 정작 자신들이 법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기업의 성장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첫째, 삼성전자가 10조원이라는 막대한 이윤을 올린 배경에는 이건희 회장의 경영기술과 함께 첨단 정보기술 제품에 대한 한국 소비자들의 과다한 부담과 삼성 노동자들의 희생이 있다. 자녀들이 수십만원짜리 휴대폰 신제품을 사달라고 조르는데 부모들은 많은 부담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삼성에서는 수익을 많이 올리는 부서 노동자들에게는 보너스를 넉넉하게 주지만 수익을 올리지 못하는 경우에는 보너스도 없다. 심한 경우에는 부서를 아예 없애버리고 노동자를 내쫓아버린다. 노조가 없으니 회사 마음대로 인력을 관리할 수 있는 것이다.

둘째, 삼성재벌은 이건희 회장의 아들 이재용이 삼성그룹에 대한 지배권을 승계하도록 하기 위해 온갖 불법과 탈법을 저지르고 있다. 이재용에게 헐값으로 에버랜드 주식을 양도하여 이재용이 삼성의 실질적 지배자가 되도록 했을 뿐만 아니라, 고객이 맡겨놓은 삼성생명 돈으로 삼성전자 주식을 갖고 의결권을 행사하면서 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금융산업 구조개선에 관한 법률'에서 재벌 금융사 계열사가 다른 계열사 지분을 5% 이상 보유했을 때는 반드시 금융당국의 승인을 얻도록 하고 있는데도 삼성카드는 그룹의 지주회사격인 삼성에버랜드 지분 25.6%를 소유하고 있으면서 금융당국으로부터 어떤 승인도 받지 않았다.

지금 금융당국은 은행의 보험업 겸영(방카슈랑스) 허용에 잇따라 보험회사에 은행업무를 허용하는 것을 검토하기도 했다. 이렇게 되면 삼성은 보험업계의 패권자 삼성생명에다 삼성은행까지 갖게 돼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 및 국민경제에 대한 삼성의 지배가 완성될 것이다.

삼성 영향력, 행정과 정치·사법 영역에서도 작용

▲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셋째, 삼성재벌은 무노조 경영을 위해 온갖 불법을 저지르고 있다. 노조 결성을 시도하는 노동자를 납치하고 휴대폰을 복제하여 감시하기까지 하는 등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르고, 감독당국이 확보한 서류를 탈취하고 컴퓨터 자료를 파기하는 등 법을 버젓이 위반하면서 문제가 되면 벌금을 내고 하급자가 처벌받으면 된다는 자세이다.

노동법을 이렇게 무시하면 어떻게 되는가. 법이란 완전한 것은 아니지만 행위의 상하한선을 규정한 것으로, 지배세력이 이것을 아예 무시하면 그야말로 무법천지가 되고 결국에는 재벌총수의 목숨도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삼성의 무노조 경영과 노조탄압에 대응하여 세계 각국 노동자들이 삼성제품 불매운동을 펴면 어떻게 할 것인가. 삼성은 노동자의 원한이 쌓여가는 것을 정말로 두려워해야 할 것이다.

넷째, 삼성재벌은 중소기업을 압박해서 최대한 이윤을 짜내고 있다. 삼성 계열사 경영진은 수익을 올리라는 그룹 회장의 무자비한 요구에 부응하여 납품 중소기업에게 납품단가 인하를 강요하고 중소기업은 이러한 부당거래를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인다. 그리고 그 부담은 고스란히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세계 각국에서 유례없을 정도로 정규직과 동일한 일을 하는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고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의 임금격차가 확대되는 데는 정규직 조직노동자들의 집단적 이기주의가 아니라 바로 이러한 삼성그룹과 같은 재벌 대기업의 무자비한 초과착취 행위가 있는 것이다.

다섯째, 삼성재벌은 해서는 안되는 일을 돈으로 자행하고 있다. 고려대의 이건희 회장 명예철학박사 학위 수여를 둘러싼 소동은 소중한 가치인 대학의 자유를 돈으로 사버리려고 시도한 것이다. 사법계 인사를 고액 연봉으로 채용해서 탈법 불법을 방어하도록 한 것도 마찬가지이다. 이제 삼성의 영향력은 단순히 경제적 차원을 넘어 행정과 정치, 사법의 영역에서도 작용하고 있다.

삼성가의 사돈인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비리에 대한 처벌이 늦어지고 있는 것도 삼성과의 특수관계가 작용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삼성재벌은 국회에 상주하는 임직원과 삼성 계열사에 근무하는 친지를 통해 개별 국회의원을 접촉, 정보를 수집하고 삼성의 요구를 전달하여 손아귀에 넣고 있다. 최장집 교수가 현재 정부에 대해 재벌이 중심이 되고 하위 파트너로서 국가 정책이 재벌에 봉사하게 되었다고 비판한 것은 정확한 지적이다.

대통령이 J.P. 모건에 호소까지 했던 미국 경제사를 되새기자

삼성재벌은 세계 경제사와 미국 경제사를 잘 연구해보기 바란다. 미국에서도 1870∼1900년 사이에 이른바 '금도금한 시대'(gilded age)가 있었다. 대륙횡단철도가 개설되고 산업화가 급진전되던 시대로서, 돈벌기 위해서는 부정직이 당연했고 정직하면 바보가 되는 시대였다. J. P. 모건의 전신인 루이지에나 시민은행은 1850년대에 노예를 담보로 돈을 빌려주기도 했다. 자본가들은 노조 파괴에 온갖 수단을 동원했고, 심지어는 살인청부업자를 동원해 노조 지도자를 살해하기까지 했다.

매튜 조셉슨은 산업계 거물을 강도귀족(Robber Barons)이라고 부르는 책을 썼다. 이 시기에 J. P. 모건은 상업은행과 투자은행을 같이 경영하고 기업에 이사를 파견해 지배했다. 결국 미국 경제 전체가 모건의 지배 하에 들어가게 되었다. 불황기에 기업과 금융기관을 살리고 죽이는 힘을 사적 금융자본가인 모건이 장악하고 대통령이 모건에게 호소하는 꼴이 되었다.

그 결과 빈부격차와 불황이 심화되었다. 미국 정부는 1913년 연방준비제도이사회를 설립하고 사적 금융자본에 의한 금융산업 조정을 공적 규제로 대신했다. 1929년 주가폭락과 그에 이은 경제대공황 배경의 하나로 금융업 통합이 지적됨으로써 1933년 개혁조치 일환으로 글래스 스티걸법이 제정되었다.

연방예금보험제도 창설, 예금금리 상한설정, 연방준비제도 강화 등과 함께 기업이 발행하는 유가증권 인수업무는 투자은행에만 허용되고 상업은행에 대해서는 일절 금지됐다. 또한 노조 탄압이 대공황을 초래한 원인의 하나라고 지적돼 1935년 와그너법 제정으로 부당노동행위를 금지하는 한편 위반할 경우 무거운 처벌을 하도록 했다.

▲ 장상환
삼성은 글로벌 경영시대로 들어온 지금 시대착오적인 1970년대 무노조 경영을 확실하게 그만두어야 한다. 고(故) 이병철 회장의 유지를 고집하는 것은 너무나도 어리석다. 그리고 리스크를 키우는 산업자본의 금융자본 지배와 금융산업간 통합 시도를 정부정책과 관계없이 중단해야 한다.

정부도 이 점을 확실히 해서 삼성의 불법, 탈법과 국민경제에 대한 지배강화를 막아야 한다. 공룡재벌 삼성이 시대에 맞지 않는 행태를 고집하면 결국 삼성 자체의 몰락은 물론이고 국민경제도 빈부격차 확대와 대공황이라는 파국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국민들은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다.

덧붙이는 글 | 필자는 민주노동당 진보정치연구소 소장을 맡고 있으며 경상대 경제학과 부교수로도 재직중입니다. 이 기사는 진보정치연구소 홈페이지 (www.ppi.re.kr) 에 게재한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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