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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회찬 민주노동당 사무총장
ⓒ 오마이뉴스 이종호
국회의원들의 인터뷰를 듣다보면 이해할 수 없는 말들이 수두룩하다. ‘이해하기 힘든’ 말이나 행동 뒤에는 그런 삶을 ‘이해할 만한’ 성장과정이 반드시 숨어 있다. 설탕을 찾아 헤맨 사람과 소금을 찾아다닌 사람의 말맛은 확실히 다르다.

‘저 사람 혹시 실없는 사람이 아닐까’ 의심이 갈 때는 그가 걸어온 길을 슬쩍 들추어보는 게 좋다. 불과 0.18 퍼센트의 차이로 노정객 김종필의 10선을 막고 국회에 입성한 민주노동당 선대본부장 노회찬을 처음 보았을 때도 그런 의문이 들었다.

TV토론프로에 나온 그의 머리스타일과 표정은 ‘코미디 하우스’에 나오는 개그맨 정준하를 약간 닮았다. 정준하가 고생을 많이 하면 20년 후에 그런 얼굴이 될 지도 모르겠다.(정준하가 이 말을 들으면 자신을 두 번 죽인다고 항의하지 않을까?)

관찰이 취미다 보니 사람의 얼굴은 땅의 역사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의 얼굴에는 그가 걸어온 침식과 습곡과 풍화가 그림처럼 드러나 있다. 지금 웃고 있는 그의 얼굴은 성적표라기보다 이정표에 가깝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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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에 왜 왔냐는 질문에 "정신연령 비슷해서 왔다"

그의 순박한 용모가 시청자를 어느 정도 매료시켰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진짜 그를 돋보이게 하는 건 따로 있다. 바로 상대방의 허를 찌르고 문제점이 무언지를 극명하게 드러내는 그의 뛰어난 화술이다.

그의 발언 중에 방청석에선 웃음이 끊이지 않는다. 그의 차례가 오기를 기다리며 채널을 고정했다는 네티즌의 고백은 과장이 아니다. 한 마디로 그는 유머의 달인이다. ‘개그콘서트’의 웃음 강도가 시들해진 요즘 그의 어록이 인터넷상에서 대단한 인기를 끌 정도다.

TV뉴스에서 내가 직접 본 광경 중에 이런 것도 있었다. 그가 선거 며칠 전 어느 대학을 방문했다. 기자가 왜 학교에 왔냐고 물었다. '정신연령이 비슷해서 왔다'고 그는 천진한 표정으로 답했다. 기자도 웃고 옆의 학생들도 웃고 시청자도 웃었다. 그는 선거 기간 내내 웃음을 몰고다녔다.

▲ 15일 오후 6시 방송사 출구조사 결과 민주노동당의 원내 제3당이 유력해지자 노회찬 선대본부장(가운데) 등 지도부들이 희색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김태형
한국정치에 유머는 없고 해머(망치)만 있다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로 국회의원들의 말들은 폭력적이다. 입으로는 상생을 외치면서 실제로는 살생을 하고 있는 풍경을 수도 없이 보아왔다. 뻔하지 않은가. “말 다했어?” 이 말을 한 후에는 곧장 몸싸움이 벌어진다. 싸움질 좀 그만하라는 유권자들의 신신당부를 그들은 철저히 외면해 왔다.

사전을 뒤지면 유머는 해학과 비슷한 말이다. 해학은 익살스럽고 품위 있는 농담이다. 유머는 스스로를 돌아보게 하지만 비난이나 비방은 서로를 다치게 할 뿐이다. 정치인들이 주고받는 말 뒤에 도무지 반성은 없고 강력한 반발만 있는 까닭이 바로 그 때문이다.

실상 말뿐인 정치도 문제지만 그 말이 세상을 떠돌며 사람들을 더 살기 힘들게 만드는 것은 더 큰 문제다. 거친 말과 거짓말은 둘 다 세상을 싫증나게 만든다. 이제 보복을 부르는 말은 그만하고 반성을 가져오는 말을 주고받자.

그러려면 기술을 익혀야 한다. 정치에 대화의 기술이 필요한 건 운전에 기술이 필요한 것과 같다. 물론 대화건 운전이건 기술 이전에 기본을 익혀야 한다. 기본은 나와 남을 다치지 않게 하는 것이다. 그 완충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유머다.

살벌한 말의 정치는 신물... 노회찬의 대화술을 배우자

노회찬의 대화술을 배우자. 살벌한 말의 정치는 정말이지 신물이 난다. 누가 더 심한 말로 상대방의 자존심을 멍들게 하는지를 겨루고 상대방이 증오와 적개심을 얼마나 품는지를 지켜보면서 자신이 승리한 것으로 착각하는 모습을 국민들은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17대 국회에서 그런 화면은 차라리 청소년유해영상물로 분류하자.

노회찬의 말을 유심히 듣다 보면 문득 ‘테마게임’이라는 코미디 프로가 생각난다. 테마를 잃지 않되 게임(오락)하듯이 접근하자는 게 그 프로의 기획의도였다. 그는 할 말 다하면서도 분위기를 명랑하게 만든다. 그의 테마는 말다툼으로 승리하자는 게 아니다. 말로 상대방을 무장해제 시키고 함께 행복해지자는 게 목표다.

그의 어록 중에는 ‘행복해지는 걸 두려워하지 마세요’도 있다. 행복과 공포의 절묘한 대비. 촌철살인은 촌철로 살인하라는 게 아니다. 촌철로 사람을 감동시키고 마침내 행복하게 하라는 의미다.

마지막으로 당부 한 마디. 그가 노동운동에 투신하면서 얻은 첫 번째 증서가 전기용접기능사 자격증이란다. 그가 17대 국회에 들어가 할 일 또한 용접, 즉 다르게 살아온 두 금속을 접합시켜 새로운 주물을 만드는 일(상생)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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