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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해도 얼마 남지 않았다. 연말이 되면 한 해를 정리할 필요를 느낀다. 그러면서 뒤돌아보게 된다. 그러나 연로하신 어른들은 젊은이들에게 충고한다.' 뒤돌아봄은 정녕 시간 낭비이니, 앞만 보고 살라!' 그 말씀 속에는 지나온 날보다 살아갈 날의 짧음을 한탄하는 속내가 짙게 배어 있다.

정작 중요한 뉴스는...

▲ 한 해를 보내면서 평범한 삶이지만 한 가정의 '10대 뉴스'를 정리해 보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 윤승원
언론에서는 매년 <국내외 10대 뉴스>를 발표한다. 물론 역사에 기록될만한 국가적인 사건도 되새겨 볼만하다. 그러나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정작 중요한 뉴스는 따로 있다. 수능이 끝난 고3 둘째 아이와 진로를 고심했던 일이며, 벽 하나 사이의 이웃 신축 건물이 얼마나 높이 올라가느냐 하는 것도 큰 관심사다.

뿐만 아니라, 평소 건강했던 혈육이 갑자기 중환자가 되어 온 가족의 가슴을 태운 일도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정의 <10대 뉴스>다.

뜻하지 않은 사건도

이웃에서 신축 공사가 벌어졌다. 포크레인으로 건물을 부수는 과정에서 깨진 벽돌이 부엌 유리창을 박살내고 들어왔다. 설거지하던 아내가 하마터면 어찌 될 뻔하였다. '날벼락'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발도 없는 것이, 날개도 없는 것이 뜻하지 않게 찾아온다. 그래서 일찍이 큰 불행을 겪어 보신 장모님은 시골집 대문 옆에 귀신을 쫓는다는 엄나무를 심어 놓은 걸까? 인력(人力)으로 어쩌지 못하는 것이 존재하니 속설에도 의존한다.

한 해를 무사히 넘긴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늘이 도와 줘야한다. 하지만 얼마든지 예견되는 일을 인간의 사소한 부주의로 낭패를 본다면 당한 사람은 너무나 억울하다.

이웃에 대한 배려가 아쉬운 '안전불감증'

올해 <나의 10대 뉴스> 중 하나로 선정한 <벽돌 파편 사건>만 해도 그렇다. 깨진 유리창으로 분진이 날아 와 집안은 삽시간에 엉망이 되었다. 안전 시설 하나 설치하지 않고 공사를 강행한 <안전 불감증> 업자에게 강력히 항의했다. 한 가정의 안전과 행복을 지켜야할 책무가 있는 가장으로서 당연한 일이었다. 업자가 사죄했다. 깨진 유리창도 당장 갈아 끼워 줬다.

그것으로 끝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기본을 지키지 않은 책임을 묻고자 했다. 그러나 아내는 달랐다. "사람 안 다쳤으니, 그나마 다행" 이라고 했다. 그래도 좀처럼 화를 삭이지 못하는 나를 이렇게 달랬다. "검게 그을린 유리창 박살나고, 새 유리로 갈아 끼우니 부엌이 환해져서 오히려 좋군요." 아마도 가까운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감안한 인심이요, 너그러움이리라.

그래도 용서해야 하는 마음

만사가 이렇게 용서할 수 있는 것이면 얼마나 좋으랴. 작은 부주의로 뜻하지 않은 큰 불행을 당하고도 자기의 운명 탓으로 돌리고 마는 수많은 사람들의 딱한 처지를 생각하면 가슴 아픈 일이다.

다음은 한 집안의 가장으로서 나름대로 뽑아 본 올해 <10대 뉴스>다.


1. 왕성한 사회 활동하시던 형님의 갑작스런 입원으로 온 집안 침통/ 11월

- 평소 건강하셨던 큰 형님이 갑자기 입원하여 중환자실에 누워 산소호흡기에 의존하고 계신다. 집안의 가장 큰 어르신이고, 기둥이신 분이 어찌 이런 갑작스런 일을 당하셨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다. 병 간호하는 형수님과 조카들의 얼굴을 볼 때마다 무엇 한가지 힘에 되어 주지 못하는 동생의 처지가 안타깝기 그지없다. 형님 입원 후 지금까지 일이 손에 잡히지 않는다. 한숨과 눈물의 나날을 보내고 있다. 인간의 <생로병사>에 대한 깊은 고뇌를 하게 된다. 어떤 기적이라도 일어나 하루 빨리 소생하시길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2. 두 아들과 함께 펴낸 산문집 <부자유친> 독자들의 따뜻한 관심에 작은 보람 / 11월

- 아버지의 글에 화가 지망생인 고3 둘째 아들이 삽화를 그리고, 소설 읽기를 즐기는 대학생 큰 아들이 여름방학 중에 편집과 교정을 보았다. 그렇게 탄생한 산문집 <부자유친>은 두 아들의 정성이 들어간 책이어서 그런지, 그동안 펴낸 어떤 수필집보다 애착이 간다. 이 책에 대한 독자들의 관심도 따뜻해서 나름대로 보람을 느꼈다.


3. 휴일 오후, 공사장에서 날아 든 벽돌 파편으로 부엌 유리창 박살 / 10월

- 날벼락이 이런 것이구나! 새삼 놀랐다. 이웃집에 대한 안전 시설을 전혀 하지 않고 포크레인으로 마구 집을 부수더니, 결국 담 하나 사이의 우리 집 부엌 유리창에 벽돌 파편이 날아 들었다. 설거지하던 아내가 졸지에 어떻게 될 뻔하였다. 시공자의 과실에 대한 책임을 묻고자 현장사진까지 찍어 놓았으나, 아내가 간곡히 만류했다.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고려한 인심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원칙은 아니다. 하찮게 여긴 부주의가 얼마나 큰 화를 불러 오는지 매일 같이 뉴스를 통해 보고 있지 않은가.


4. 고3 둘째 아들의 진로에 대해 깊이 고심 / 12월

- 미술 실기는 남 못지 않게 잘 한다는 평가를 받으니, 부디 희망하는 대학에 입학하기를 간절히 빈다. 못난 아비여서 그런지, 두 아들에 대한 소망과 기원은 끝이 없다.


5. 일간지 청탁으로 쓴 '문화 칼럼' 독자들의 따뜻한 성원에 감사 / 10월-12월

- 바쁜 직장 생활을 하면서 마감 기일이 정해져 있는 일간지 칼럼을 쓴다는 것이 상당히 부담스런 일이지만, 글이 게재될 때마다 직장 동료나 상사, 그리고 일반 독자들의 시선과 평가가 따뜻해서 작은 보람 느끼다. 충청지역 일간지라 지역적인 제한성이 있어 인터넷 사이트에도 올리고 있다.


6. 비록 선정되지는 못했지만 <문화상> 후보자로 추천된 것은 뜻 있는 일 / 10월

- 뜻하지 않게 소속 기관장의 추천으로 '문화상' 후보에 오른 것만도 개인적인 영광이었다. 수상자 선정 과정의 우여곡절 등 이런저런 후일담을 잘 알고 있으나, 평소 이런 상에 대한 기대도 꿈도 가지지 않았던 사람이므로, <후보자 추천>에 오른 영예(?)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덕분에 글감 하나 얻었다. <추천, 그 영예스러움의 뒤안>(월간 '수필문학' 11월호) 을 쓰면서 새삼 이 세상 물정을 다시 배우고 나를 돌아 보는 계기가 되었으니, 수확(?)이라면 수확이 아닌가.


7. 월드컵 등 국가적인 큰 행사를 치르면서 고생스럽긴 했으나 보람도 느끼다 / 6-7월

- 현장 근무자로서 국제적인 큰 행사에 대한 부담을 몸으로 느꼈으나, 무사하게 치러 낸 것이 다행이다. 개인적으로는 인내력을 요구하는 일들도 많았으나, 모두가 하늘이 도와 잘 넘긴 것 같다. 월드컵 경기장에서 대학생 자원봉사자와 만남은 TV뉴스에도 소개되었지만, 생애 특별한 인연으로 기록될 만하다.


8. 대학생 아들의 행동 하나 하나가 내겐 소중한 얘깃거리 /11월

- 요즘 신세대 아들은 내가 성장할 때와는 많이 다르다. 환경이 그렇다. 그러나 의식은 크게 다르지 않기를 바란다. 달라지는 식성, 옷차림 등 외양, 좋아하는 기호품 등 어느 한가지 어른의 잔소리로 고쳐질 일은 아니다. 그런데 반지 끼고 귀고리 하고 다니는 대학생 아들이 여중생 과외 아르바이트를 하러 갔다가 뜻하지 않게 <배추 선물>을 들고 온 것은 신기한 일이었다. 곱게 포장한 백화점 선물 대신 이런 것을 선물로 준 그 학부모의 뜻이 각별하게 느껴졌다.


9. 출근길 자동차 펑크 때워준 주유소 사장님께 감사 / 10월

- 다급할 때 도움을 준 사람은 좀처럼 잊혀지지 않는 법이다. 아침 출근길 갑작스런 자동차 펑크로 길거리에서 당황하고 있는데, 인근 주유소 사장님이 팔 걷어 부치고 도움을 주었다. 감사의 표시를 하기 위해 지갑을 꺼냈더니, 한사코 마다하면서 "저희 주유소 기름이나 넣어 주시면 돼요"하는 게 아닌가. 그 후로 단골 고객이 되었다.


10. '한국비평문학회' 선정《2002년 문제수필》에 졸고<털 깎는 일>('월간문학' 1월호 발표) 선정/ 12월

- '대학에서 비평을 강의하는 교수 모임'인 <한국비평문학회>(회장 성기조: 시인, 평론가)에서는 2002년 한 해 동안 각종 문예지에 발표한 작품 중에서 <2002년을 대표하는 문제수필(작품집)>을 선정하여 책을 내는데, 졸고 수필<털 깎는 일>(《월간문학》 1월호 발표)이 그 중 한편으로 선정되어 수록한다고 알려옴. 여기서 선정된 작품은 대학 강의용으로 활용하고, 각 장르별 작품집도 낼 계획. 이번에 선정된 수필은 <수염>을 소재로 한 가족 사랑을 그린 작품인데, 필자의 최근 산문집<부자유친>에는 <수염 3대>라는 제목으로 실려 있다. 신.구 세대 구분 없이 널리 읽히고, 공감해 주는 수필이기를 필자로서는 바랄 뿐이다.


☆ 한 해를 돌아보면 서운했던 일도 많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1-12월

- 한 해 어찌 즐겁고 보람 있는 일만 있겠는가. 속상했던 일, 어처구니 없었던 일, 힘들고 짜증스런 일도 허다하다. 모두가 거부할 수 없는 소시민의 삶이다. 그래서 인간의 삶은 욕구 충족을 위한 노력 보다 절제와 인내가 더 요구되는 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마음을 매일 같이 비우고자 노력하는 일이다. 몸 속에 화가 누적되면 병이 된다. 살아가면서 화를 내지 않는 것도 슬기로운 삶의 태도다. 감정을 잘 조절하면서 사는 것도 아름다운 삶을 위한 한 방법이다. 화를 내지 않는 방법 중에 이런 것도 있다. '나를 속상하게 하는 상대를 강하게 보지 말고, 늘 연민의 눈으로 보라'는 것이다.


모처럼의 주말 오후, 한 해 동안의 이런 저런 이야기를 정리하고 있는데, 대학생 아들이 넌지시 말을 건넨다.

"아버지! 또 10대 뉴스예요? 해마다 하실 거예요?"

내가 대꾸했다.
"그래, 부질없는 일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렇게 한 해를 나름대로 정리해 보면 전혀 무의미한 것만도 아니다. 너도 한 번 해보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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