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해병대 채 상병 순직사건을 조사한 해병대수사단이 경찰로 이첩했던 관련기록을 국방부가 되찾아 오는 과정에서 대통령실과 해병대 지휘부 사이에 여러 차례 전화 통화가 있었던 사실이 재판 자료를 통해 21일 드러났다.
군형법 상 항명 및 명예훼손 혐의로 군사재판에 넘겨진 전 해병대수사단장 박정훈 대령의 3차 공판이 열린 서울 용산 중앙군사법원 법정에서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 등 해병대 지휘부의 통화 기록 일부가 공개됐다. 김 사령관의 통화 기록은 이미 지난 2월 1일 열렸던 2차 공판에서 공개됐지만, 당시 기록에는 통화 상대편 이름이 나와 있지 않았다.
재판부에 재출된 증거기록에 따르면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은 당초 예정돼 있던 언론브리핑과 국회 설명회가 취소되기 전인 지난해 7월 31일 오전 9시 53분에 임기훈 당시 국가안보실 국방비서관과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브리핑 및 설명회가 취소된 후인 당일 오후 5시에도 김 사령관과 임 비서관은 한 차례 더 통화했다.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은 지난해 8월 30일 국회운영위원회에 출석해 7월 31일 김 사령관과의 통화한 사실 자체가 없다고 진술한 바 있다.
같은 날 언론브리핑이 취소된 뒤 해병대사령부로 복귀한 박정훈 대령이 '도대체 국방부에서 왜 그러는 것입니까'라고 질문하자 김계환 사령관은 '오전 대통령실에서 VIP(윤 대통령을 지칭) 주재 회의 간 1사단 수사결과에 대한 언급이 있었고 VIP가 격노하면서 장관과 통화한 후 이렇게 되었다'고 말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반면 김 사령관은 지난 2월 1일 열렸던 박정훈 대령 2차 공판에 증인으로 출석해 '윤 대통령이 격노한 사실이 있느냐'는 재판부 질문에 "그런 사실이 없다"라고 부인한 바 있다.
채 상병 기록 경북경찰청 이첩날, 김계환-임종득 두 차례 통화
김계환 사령관은 해병대수사단이 채 상병 관련 기록을 경북경찰청으로 이첩했던 지난해 8월 2일 오후에도 두 차례(12시 50분, 3시 56분) 임종득 당시 국가안보실 2차장과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날은 오전에 해병대 수사단 수사관들이 경북경찰청으로 관련 기록을 넘겼지만, 오후 국방부 검찰단이 경찰로부터 관련 자료 일체를 되찾아 온 날이다.
박정훈 대령의 변호인은 이날 법정에서 김계환 사령관과 임종득 당시 2차장의 오후 12시 50분 통화가 7분 넘게 이뤄졌다고 주장했다.
이날 공판에서는 김계환 해병대사령관을 보좌하는 김화동 해병대 사령관 비서실장과 이윤세 해병대사령부 공보정훈실장에 대한 증인 신문이 진행됐다. 김화동 실장은 지난해 8월 2일 국가안보실에 파견돼 있던 해병대 김형래 대령과 통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낮 12시 51분 김형래 대령으로부터 걸려온 전화를 받지 못한 김화동 실장은 이후 오후 1시 25분 전화를 걸어 1분 22초간 통화한 것으로 나와있다.
김화동 실장은 '기록에 나와 있으니 김 대령과 통화는 했을 것'이라면서도 "자세한 통화 내용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자신의 업무상 하루에 100통 이상의 통화와 문자메시지들을 여러 사람들과 주고 받는다고도 했다.
해병대 수사단의 브리핑이 취소된 지난해 7월 31일과 해병대수사단이 조사기록을 경찰로 넘기기 전날인 8월 1일 김계환 사령관이 주재한 두 차례 회의에 참석했던 김화동 실장은 당시 이종섭 국방부장관의 지시에 따라 채 상병 순직사건 기록의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지시한 김계환 사령관의 결정에 "강압이나 회유는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또 '8월 1일 오후 열린 회의에서 김계환 사령관이 박정훈 수사단장에게 조사기록 경찰 이첩을 보류하라고 했느냐'는 군 검찰의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박 대령 "두 차례 회의, 혐의자·내용 빼라는 국방부 지시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
8월 1일 김 사령관과 박 대령의 저녁식사 자리에 배석했던 김 실장은 식사 자리에서 박 대령이 '제가 책임지고 이 사건을 (경찰로) 이첩하겠습니다'라고 밝혔다고 전했다. 다만 그는 술을 마신 상태에서 이 대화를 농담처럼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박정훈 대령의 변호인은 '김 사령관이 명시적으로 이첩보류 지시를 내렸다면 왜 박 대령이 식사 자리에서 자신이 책임지고 이첩하겠다고 발언을 했겠느냐'는 취지로 반문했다.
또 박 대령 측 변호인은 "김 사령관은 (7월 31일 회의에서 박 대령에게) '이첩하지 말라'고 명확하게 말하지 않고, 이첩 시기를 국방부와 논의해서 진행하자고 했다"면서 "(만약) 이첩보류 명령이 명확했다면 김계환 사령관이 8월 1일 국방부장관 군사보좌관에게 조사 결과의 국방부 조사본부 이첩을 건의할 이유가 없었다"라고 지적했다.
재판 말미에 발언 기회를 얻은 박정훈 대령은 "(지난해) 7월 31일과 8월 1일 (해병대사령부에서 열렸던) 회의는 단순히 이첩 시기에 대한 논의가 아니었고, 이첩 내용 중 혐의자나 혐의 내용을 빼라는 국방부 지시에 대한 문제가 있었다"고 진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