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간의 긴 추석 연휴, 가족과 함께 혹은 혼자 한잔하며 재충전할 시간을 계획하고 계신가요? 이때 보면 좋을 콘텐츠들을 소개합니다.[편집자말]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 티케스트

 
또 명절이 돌아왔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라는 말도 있지만 명절만 다가오면 불편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모든 가족이 친한 건 아니잖나. 오래 떨어져 살다가 명절만 되면 한데 모이는 가족. 어색하고 불편해서 달갑지 않기도 할 거다. 이럴 거면 왜 이리 꾸역꾸역 만나는지 모를 일이다. 차라리 맛있는 음식 잔뜩 사다 놓고 집콕하면서 하고 싶은 거 하는 게 슬기로운 방법일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생각해 봤다. 올해 유독 긴 연휴를 재미있게 보낼 영화를 추렸다. 덤으로 적당히 취기 오른 상태에서 보면 좋을 영화다. 살짝 취하면 힐링은 덤 영화가 내 삶 속으로 들어오게 된다. 과음은 사절이요, 적당한 음주는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준다고 믿는다. 가족, 친구, 연인과 술 한잔 기울이며 허심탄회한 대화를 이어가 봐도 좋겠다. 올해 명절을 영화롭게 만들 세 편을 소개한다.
 
가업을 물려받은 삼남매의 좌충우돌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 티캐스트

 
각자 살기 바빠 소원해진 가족이 오랜만에 만나는 명절을 생각하다가 스파크처럼 떠올린 영화다.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은 10년 만에 아버지가 위독하다는 소식을 듣고 고향으로 돌아온 장남 장(피오 마르마이), 가업을 도맡아 운영 중인 둘째 줄리엣(아나 지라르도), 형이 야속한 제레미(프랑수아 시빌)가 가업을 물려받는 과정을 펼쳤다.
 
삼남매가 성인이 되어 고향으로 모이지만 부르고뉴 와이너리의 현실과 부딪힌다. 재산은 공동명의로 묶여 있어 동의 없이는 무엇도 성사될 수 없는 상황이다. 상속세만 5억 원, 60억 가치에 달하는 땅값보다 와인 수익이 적은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야 하는 것도 이들 몫이다.
 
와인 하면 떠오르는 나라 프랑스에서 와인 산지를 배경으로 가족애를 빗댄다. 흩어져 있던 가족이 다시 뭉치고, 잊고 지낸 사랑을 확인하며 개개인도 성장한다. 삐걱거리던 관계, 건조하던 말투가 살짝 말랑해지기 위해서는 술이 절실했던 거다.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영화 <부르고뉴, 와인에서 찾은 인생> 스틸컷 ⓒ 티캐스트

 
세 사람은 서툴지만 사계절을 보내고 잠들어 있던 추억을 곱씹으며 회포를 풀게 된다. 기다림이 선사하는 최고의 시간, 숙성에 이르면 최고의 와인으로 탄생한다. 반대로 섣부른 오해와 억측이 계속되면 떫고 맛없는 와인이 만들어지기도 하는 거다. 영화는 먼지 쌓인 와인의 시간과 달콤 쌉싸름한 인생이 무척 닮았다고 말하고 있다.

흔히 향과 혀로 마시는 와인을 눈으로 즐기는 취향 저격 와인 영화다. 매일 아침 창밖의 다른 풍경을 선사하는 부르고뉴의 사계절과 와이너리에서 펼쳐지는 장인 정신이 지루할 틈 없이 진행된다. 깊이 있는 와인 같은 인생을 원한다면 추천한다.
 
덤으로 포도 재배의 테루아, 포도 수확의 방당주, 포도 압착, 발효와 숙성, 테이스팅 단계를 거치는 과정을 담고 있다. 축제나 행사, 일상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와인은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피땀 흘려 가꾼 포도밭과 수확의 노동 등. 영화에 빠져 즐기다 보면 와인도 인생도 자연스럽게 배워 볼 수 있다.
 
내 나이가 어때서? 노년의 풍미
  
 영화 <북클럽> 스틸컷

영화 <북클럽> 스틸컷 ⓒ 영화사 진진

 
나이 듦을 막을 수 있다면 좋을까? 노화와 죽음은 부정적으로만 생각했지만 나이가 들다 보니 작은 변화가 생겼다. 연륜. 어른다움. 나무의 나이테 같은 주름을 보면서 경험, 지식, 관계를 축적한다고 생각해 보니 달리 보였다. 나이 들어감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닌 것 같다.
 
<북클럽>은 20대부터 40년 동안 우정을 쌓아온 '북클럽 4인방'이 제3의 인생을 사는 이야기다. 이들은 각자 사별(다이앤, 다이안 키튼, 무직), 이혼(샤론, 캔디스 버겐, 연방 법원 판사), 비혼(비비안, 제인 폰다, 호텔 CEO), 결혼(캐롤, 메리 스틴버겐, 요리사)을 겪은 상태다.
 
성격도 다르고 닮은 구석 하나 없지만 정기적인 독서 토론으로 교양과 우정 마일리지가 쌓여있는 사이다. 그러던 어느 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가 이번 책으로 선정되면서 변화를 맞는다. '이런 걸 어떻게 읽냐', '격 떨어진다', '남사스럽다'던 여사님은 책을 손에 쥔 순간 놓지 못해서 안달 난다.
  
 영화 <북클럽> 스틸컷

영화 <북클럽> 스틸컷 ⓒ 영화사 진진

 
영화는 인생은 60부터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60대 이상 여성들의 성(性)과 시니어 라이프를 유쾌하게 다룬다. 책 한 권으로 삶의 윤기를 되찾고 터닝포인트를 맞는다. 나이 들었다고 지레 포기하고, 주책이라고 겁먹지 않는다. 하고 싶은 것은 반드시 실천한다. 오늘 할 일을 내일로 미루다간 영영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너게 될 테니까 망설임은 금물이다.
 
쉬쉬하기보다 드러내놓고 건강하게 즐기는 관계, 자식들 눈치 보지 않고 마음 가는 대로 실천하는 할머니들이 귀엽기까지 하다. 실제로 네 배우의 전성기가 떠올라 뭉클해진다. 60세가 넘은 배우에게는 어머니, 할머니 역할밖에 들어오지 않는다던 김수미 배우의 한탄이 떠오른다. 
 
대화가 시급한 부부의 엇갈린 로맨스
  
 영화 <내 아내 이야기> 스틸컷

영화 <내 아내 이야기> 스틸컷 ⓒ (주) 안다미로

 
결혼은 제도의 틀 안에서 진행되는 약속이다. 그래서 <내 아내 이야기>에 등장하는 두 사람의 사연이 더욱 애처롭다. 처음부터 사랑보다는 목적이 앞선 결혼이었고 꼭 해야만 하는 통과의례 중 하나였기에 엇갈리며 시작했다. 사랑 없이 시작했음을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상대의 마음을 알 수 없는 날이 길어지면서 믿음은 불신이 되고 집착이 되어간다. 결혼을 유지하면 할수록 더 알 수 없는 미궁 속으로 빠져드는 공허함은 커져만 간다.
 
오랜 바다 생활에 지친 선장 야코프(헤이스 나버르)는 잦은 복통의 원인을 '아내가 없어서'라고 단정해 버린다. 마침 프랑스에 정박한 김에 아내를 만들자고 선언한다. 카페에서 친구(세르지오 루비니)와 대화를 나누다 카페에 처음 들어오는 여성을 아내로 맞겠다고 한다. 이게 무슨 대책 없는 제안인가 싶었지만 리지(레아 세이두)와 부부의 연을 맺는다.
 
얼마 동안 나름 순탄하게 돌아갔다. 그러나 신혼의 달달함은 없었다. 일 년 중 6개월은 바다에서 보내야 하는 야코프의 직업 때문에 어색한 동거 생활에 틈이 생겨버렸다. 바다 위의 시간이 길어질수록 남편은 아내의 외도를 의심한다. 아내의 일거수일투족을 알 수 없어 곤경에 처한 남편은 아내와 친구 데딘(루이 가렐)의 묘한 기류를 감지하고 더욱 불안해지기 시작한다.
  
 영화 <내 아내 이야기> 스틸컷

영화 <내 아내 이야기> 스틸컷 ⓒ (주) 안다미로

 
참다못한 야코프는 사설탐정까지 붙여 둘 사이를 미행하지만 보기 드문 아내라며 어떠한 증거도 찾아내지 못한다. 탐정은 더 깊게 파보겠다며 기다려 보자고 했지만 남편은 아내를 그저 믿어 보려고 노력한다. 가져서는 안 되는 것을 취한 죄를 짊어진 사람처럼 묵묵히 고통을 감내한다.
 
영화는 야코프의 1인칭 시점으로 전개된다. 몽환적인 연출로 미스터리한 분위기를 더해간다. 멀쩡한 상태로 관람했어도 마치 취중 필터링이 된 것처럼 아득한 영화다. 남편의 시점에서 관찰하는 리지의 속마음은 전혀 알 수 없어 답답하고 몽롱하다.

사랑하지만 소유할 수 없는 아내, 아내의 과거나 현재의 모습도 묻지 않는 바보 남편. 올바르고 고지식하며 성실하기까지 한 100점짜리 남편이지만 아내는 그게 지겹기만 했던 걸까. 영화는 무엇 하나 정확히 묘사하지 않았기에 치명적 로맨스를 더욱 오래도록 간직할 여운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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