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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온라인 공간에서 한 장의 사진이 이슈가 됐습니다. 한 카페 출입문에 적힌 '노시니어존, 60세 이상 출입 제한'이라는 문구 때문이었는데요. 카페 주인이 '60세 이상 손님'을 받지 않으려는 이유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이 사진은 '노시니어존'에 대한 논쟁을 불러일으켰습니다. 그런데, 의도적이든 비의도적이든 노인을 배제하는 공간은 더 있습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있는 또 다른 '노시니어존'을 살펴봅니다.[편집자말]
4년 전 일이다. 중국 중경(충칭)에 살던 셋째 딸네 가족이 손자들 방학이라 한국에 들어왔다. 그러나 바로 그해 겨울부터 코로나19로 발이 묶여 버리고 다시는 중국으로 들어가 살 수 없었다.

당장 갈 곳이 없는 딸네 가족은 우리 부부와 일 년을 같이 살아야 했다. 딸은 과외를 해야 했고 학원 강사일도 해야 해서 일이 많았다. 딸은 때론 마음이 답답해 집에서 집중이 안 되는 날, 노트북을 들고 카페로 갔다. 나는 그게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일흔이 넘은 나는, 살면서 특별한 날 빼고는 카페에 가는 일이 거의 없었다. 집안에 다실이 있고 커피를 좋아하지 않아서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은 커피 값이 아깝기도 하고 노인이 카페에 가서 앉아 있으면 왠지 편하지 않고 그곳의 분위기와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 때문이다. 

어느 날 딸은 "엄마, 나랑 카페에 가서 글 써보지 않으실래요?"라고 물었다. "응? 그래도 될까?" 그 말을 듣고 나도 용기를 내게 되었다. 그래, 지금 딸과 함께 하지 않으면 언제 그런 경험을 해 볼까 싶어 망설임 없이 노트북을 챙겨 따라나섰다. 

젊은이가 된 듯 기분 좋았지만... 왠지 눈치가 보였다 
 
내 방에서 놀이 삼아 글을 쓰는 노트북.
▲ 책상위에 놓인 내 보물 1호인 노트북 내 방에서 놀이 삼아 글을 쓰는 노트북.
ⓒ 이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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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노트북은 <오마이뉴스>에 글을 보내고 일 년 넘게 모은 원고료로 산 것이다. 노트북을 사게 됐을 때 얼마나 좋았는지 그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그 노트북이 뭐라고 내 보물 1호가 되었다.

하지만 컴퓨터가 집에 있어 손에 익은 컴퓨터만 쓰고 노트북은 써 볼 기회가 없어 내 책상에서 잠 자고 있던 중이었다. 이번 기회에 노트북과 친해지겠다는 야무진 생각도 했다. 사람도 물건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먼 관계가 되고 만다. 

그렇게 간 카페는 오전 시간이어서 그런지 대체로 조용하고 사람도 많지 않았다. 노트북을 펴 놓은 사람도 딸과 나뿐이었다. 조금은 어색하지만 나는 모르는 척하고 내 할 일만 했다. 그런 분위기가 묘했다. 시간이 지나고 사람들이 하나 둘 카페로 들어왔다. 딸과 나는 점심을 먹으러 갔다. 이런 생활 패턴은 처음 겪는 일이다. 나도 마치 젊은이가 된 듯 기분이 좋았다.

점심도 대학가 주변이라서 젊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메뉴였다. 이날 일정은 딸에게 맡겼다. 한 번도 먹어 보지 못한 '마라탕'이란 음식을 먹었다. 살다 보니 이런 날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은 변하고 우리 노인들은 무엇을 하고 지금까지 살아왔을까, 즐기는 일은 낯설고 오로지 자식 위해 살아왔다. 그렇다고 후회하는 삶은 아니지만 때로는 살아온 날들이 허망하지 않다면 그것은 거짓말이다. 

세상은 눈이 부실 정도로 발전하고 변했지만, 나이 든 노인세대는 변화만큼 사는 방법을 몰라 버벅대기 일쑤다. 그래서 가끔은 젊은 사람들에게 눈총을 받는다. 모든 것이 느리기만 한 노인들.

그런데 사람은 때가 되면 모두가 늙는다. 늙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컴퓨터에서 글을 쓰면서 나도 때로는 모르는 것이 많아 답답할 때가 많다.

딸과 함께 보내는 시간은 내가 마치 젊음으로 돌아간 듯 한 기분이었다. 다시 카페로 돌아오니 점심 먹은 후라서 그런지 젊은 사람들이 노트북을 가지고 와서 모두들 정신없이 자기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다. 내 바로 곁에 있는 사람도 말은 하지 않지만 왠지 눈치가 보였다. 

오후가 되면서 손님들도 많아졌다. 카페 주인도 대놓고 나가 달라는 말은 못 하지만 알아서 나가야 할 듯한 분위기였다. 영업하는 곳인데 커피와 약간의 디저트만 시켜 놓고 오랫동안 앉아 있는 것은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딸에게 집에 가자는 말을 했다. 남에게 폐가 되는 일이 불편했다. 

그렇게 카페 탐방은 딱 한번 경험해 보았다. 그 후, 내가 늘 운동을 다니는 동네에 단독 주택을 수리해 카페를 영업하는 곳이 있다고 해서 한번 더 가보았다. 딸은 친구와 만나기로 했다고 나 보고 그 카페에 가보자고 말했다. 나도 그 카페에 궁금한 점이 많았던 터라 바로 그러자고 했다. 

그 카페에서는 차를 시켜 마셨다. 오래 머물지도 않았는데, 노트북을 켜 놓고 딸과 친구가 사장에게 무언갈 물어보니 호의적이지 않은 반응이 돌아왔다. 눈치가 보였다. 이날은 노트북을 들고 찾은 두 번째 카페 경험이었는데, 그것으로 끝이었다. 

그 뒤로 자신감이 떨어져 노트북을 들고 카페에 가는 일은 멈추었다. 더욱이 혼자서는 용기도 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면서 절제해야 할 일이 많다. 사회 구성원으로서 다른 사람에게 비호감은 되지 않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산다. 

나도 노인이 됐다, 모두들 노인이 된다 
 
지난 2일 일본 도쿄에서 한 증권사의 닛케이 225 지수 전광판 앞을 노인이 지나가고 있다.
 지난 2일 일본 도쿄에서 한 증권사의 닛케이 225 지수 전광판 앞을 노인이 지나가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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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발전하고 의료 시설도 좋아진 만큼, 삶의 질 또한 높아졌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 수명도 늘어나고 장수하는 노인들도 많아졌다. 예전 같으면 살아있지 못할 노인들, 이제는 사회의 눈치를 보는 존재가 되었다. 

그동안 자식들을 기르며 사회의 일꾼이 되도록 살아왔고, 산업현장에서 땀 흘려 일했던 사람들. 지금 대한민국이 이 만큼 잘 사는 나라로 발전할 수 있는 한 축을 담당했던 세대들도 지금의 노인들이다.

일이 없어 갈 곳을 잃은 노인들은 집에서도 치이고 밖에서도 치이는 존재다. 어느 곳을 가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가족들에게조차 관심받지 못하고 냉대를 받고 있는 것만 같아 마음이 저린다. 누군들 움직일 만하면 일을 하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도움을 받으며 살고 싶지 않을 것이다. 

세상이 발전할수록 노인의 외로움과 우울증이 심해 자살률이 높다고 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를 누리는 건 바라지도 않는다. 그냥 삼시세끼 밥 먹을 수 있고, 아프면 병원에 가고, 서로가 소중한 존재로 위해 주는 관계가 필요하다. 그것이 우리 노인들이 바라는 삶일 것이다.

나도 어김없이 노인 세대가 되었다. 전자기기도 급속도로 변해서 서울 같은 큰 식당에 가면 망설이며 젊은 사람들의 눈치를 본다. 아직 키오스크로 음식을 주문하는 방법을 모른다. 버스나 기차표도 예매하려면 잘 안 된다. 몰라서 그럴 것이다. 딸들에게 부탁하지만, 자꾸 부탁하면 미안하다.

지금 이 사회 속에서 불편함 없이 살려면 부지런히 배우고 익히는 방법 밖엔 없다. 그런데, 이 땅에 사는 젊은이들도 때가 되면 노인이 된다. 노인에게 대접하라는 것은 아니지만 냉대는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노인인 나도 세상 속에서 잘 살기 위해서 모르는 것은 배우고, 품격 있게 살고 있는지 거듭거듭 돌아볼 테니.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기자의 블로그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태그:#노인의 외로움, #노인으로 잘 사는 방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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