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에 대한 관영통제 체제가 강화되고 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가 김만배씨 녹취 보도를 한 방송사에 무더기 중징계를 내린 데 이어 인터넷 언론사의 가짜뉴스까지 심의하겠다고 밝혔다. 이런 가운데 언론사들이 자율적으로 허위정보를 검증하는 팩트체크 사업은 오히려 축소되고 있다.
방심위가 지난 21일 발표한 가짜뉴스 근절 대책의 핵심은 인터넷 언론 보도도 심의하겠다는 부분이다. 방심위는 가짜뉴스 원스톱신고처리 시스템을 만들어, 신고접수시 방심위가 긴급 심의를 진행하고, 네이버와 다음 등 포털 측에도 선제 조치(삭제, 차단)를 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가짜뉴스로 신고된 인터넷 보도를 방심위가 신속 심의하고, 포털 삭제나 차단 조치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뉴스의 유통망인 포털을 통해 가짜뉴스를 통제하겠다는 구상으로, '가짜뉴스'에 대한 명확한 기준도 없는 상황에서 방심위원들의 판단만으로 '가짜뉴스' 판정을 하겠다는 점에서 우려를 낳고 있다.
가짜뉴스 심의하겠다는 방심위
이동관 방통위원장도 방심위에 힘을 실어줬다. 이 위원장은 지난 19일 '가짜뉴스 근절 입법 청원 긴급 공청회'를 마치고 기자들과 만나 "어떤 판단 기준이나 공론을 모아 사회적 합의를 만들어야 한다"면서도 "무조건 사법판단이 나오지 않았다고 가짜뉴스가 아니라고 할 수 없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 주도의 대대적인 '가짜뉴스' 대책은 위헌 논란을 비롯해 여러 우려의 목소리를 낳고 있다. 허위정보, 이른바 가짜뉴스를 막기 위한 조치가 필요하다는 점은 사회적으로 이견이 없다.
그런데 최근 정부와 여당이 보인 행태를 보면, 비판 보도에 대해 무조건 '가짜뉴스'로 몰아가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 정부와 여당은 <뉴스타파>의 김만배씨 녹취 보도와 관련된 언론인 출신 신학림씨의 금전수수 사실을 물고 늘어지면서, 녹취 보도 내용 자체를 '가짜뉴스'라고 규정하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녹취에서 제기된 윤석열 대통령의 저축은행 수사 무마 의혹은 진위 여부가 검증되지 않았지만, 신씨의 금전 수수를 문제 삼아 보도 전체를 '가짜뉴스'라고 공격하고 있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등도 비판 보도에 대해 무조건 '가짜뉴스'라고 몰아세우고 있다.
김행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의 경우, 주식 백지신탁 의혹 등이 언론에서 제기되자 "구멍 뻥뻥 뚫린 가짜뉴스"라고 반발했다. 주식 의혹의 경우 김웅 국민의힘 의원 등 여당 일각에서도 제기되고 있지만, 김 후보자는 해당 보도 언론사를 가리켜 "가짜뉴스 생산 공장"이라고 맹비난했다.
가짜뉴스 대책을 주도하는 이동관 방통위원장 역시 인사청문회 당시, 배우자 인사 청탁 의혹과 관련해 '배우자가 돈을 곧바로 돌려주지 않은 정황이 있다'는 YTN 보도를 "악의적 허위보도"라고 비난하며 민형사상 조치를 했다.
정부 여당 주장과 판박이 수준인 방심위
제기된 의혹 모두 추가적인 검증이 필요한 상황이지만, 정치인의 거친 입에 의해 해당 보도들은 '가짜뉴스' 딱지가 붙어버렸다. 최진봉 성공회대 교수는 "지금 상황을 보면, 앞으로도 정권에 비판적인 보도들은 무조건 가짜뉴스로 규정하지 않을까 우려된다"고 말했다.
가짜뉴스를 판정할 권한을 갖게 된 방심위에 객관적 판단을 기대하기도 힘들다. 방심위는 지난 19일 김만배씨의 <뉴스타파> 인터뷰를 인용보도한 KBS, JTBC, YTN에 대한 최고 수위 징계인 '과징금 부과'를 의결했다. 인용 보도들이 허위·조작 보도라는 이유에서다. 정부, 여당 주장과 판박이 수준이다.
과징금 부과 등 중징계는 방송사 재허가 심사 때 감점 요소로 반영되는데, 방심위가 방송사에 과징금 부과를 결정한 것은 지난 2019년 이후 처음이다.
방심위의 중징계 의결은 여당 추천 위원 3명의 만장일치로 결정됐다. 야당 추천 위원 2명은 중징계 의결 반대 의견을 적극 피력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자 회의에서 퇴장했다. 현재 방심위는 여당 측 위원 3명, 야당 측 위원 2명으로 구성돼 있는데, 여당 측 위원들의 만장일치로 의결이 가능한 구조다.
송경재 상지대 교수는 "방심위의 중립성 여부를 두고는 그동안 지속적으로 의문이 제기돼 왔다"면서 "여당 위원 다수 구조이고, 여야 위원간 합의가 되지 않더라도 다수결로 의결이 가능한 구조라, 정치적 논란을 일으키는 보도에 대해 방심위의 판단은 이른바 요식행위가 될 우려가 크다"라고 말했다.
위헌 논란까지 제기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은 성명을 통해 "방송내용에 대한 공정성 등을 방심위가 심의하고 있는 것도 언론자유를 침해하는 제도로 많은 비판을 받고 있는 판국"이라면서 "이런 가운데 인터넷언론까지 심의대상으로 삼겠다는 입법을 시도한다면 이는 언론자유의 본질적 측면을 침해하는 행태다, 헌법에 위반될 뿐만 아니라 현행법에도 전혀 근거가 없는 위헌 위법적인 시도"라고 비판했다.
방심위가 인터넷 언론사의 보도를 심의할 근거도 불명확하다. 인터넷 언론사는 신문법에 따라 등록되기 때문에 언론중재법을 따르는 것이 맞고 방심위는 1인 미디어 등에 한정된다는 것이다.
팩트체크 네이버 서비스 중단... '자기검열' 강화 우려
이런 가운데 민간 언론사들의 '팩트 체크' 활동들은 축소되고 있다. 특히 최근 네이버의 팩트체크 서비스 중단에 따라 언론사들의 자율적인 팩트체크 보도는 크게 위축될 것으로 전망된다.
네이버가 오는 26일부터 SNU(서울대)팩트체크센터와 제휴해 네이버 뉴스홈에 게시하던 '팩트체크' 서비스를 중단하기로 했다. 네이버는 지난 8월 팩트체크 언론사 재정 지원까지 끊었는데, 정치권 외압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와 별도로 정부 지원을 받아 민간에서 자율적으로 운영돼 왔던 팩트체크 플랫폼 팩트체크넷은 예산 삭감에 따라 올해 초 문을 닫았다. 가짜뉴스 선별 주체가 민간에서 정부 주도로 넘어가는 흐름을 두고, 과거 독재정권 시절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공공연히 제기된다.
송경재 교수는 "민간 차원의 팩트체크가 줄고, 행정기관에서 팩트체크를 주도하면서 법적 책임까지 지도록 하는 추세로 가는 것 같은데, 대다수 언론사들은 크게 위축될 수밖에 없다"면서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는 비판 언론인들이 끌려가 고문을 당했는데, 그 정도는 아니라고 하더라도 언론사 기자들이 기사를 쓸 때 위축되고 자기 검열이 더욱 강해질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한상희 건국대 교수도 "방심위를 활용해 마치 전 국민적인 감시 체제를 마련하겠다는 의도인 것 같다"면서 "정부 차원에서 제재 조치를 취한다고 공공연히 이야기하면서 언론사 당사자가 스스로 정권 비판 기사를 내리게(삭제하게) 하거나, 아예 못쓰게 만들도록 겁박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한국기자협회장은 <오마이뉴스>와 통화에서 "비판 언론에 재갈 물리는 속셈"이라며 "윤석열 정권과 국민의힘은 자신들에게 불리하면 불공정 방송이고 비상식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아 매우 우려스럽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