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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의사당 앞은 언제나 목소리들로 가득합니다. 매일 국회 앞으로 와서 자신들의 요구를 담은 피켓을 들고 있는 사람들부터 작은 스피커를 어깨에 메고 목소리를 내는 사람, 십 수명이 모여 구호를 외치는가 하면, 방석을 깔고 앉아 아무 말 없이 명상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국회 앞에는 천막도 여럿 있습니다. 목소리를 강력하게 내야만 하는 절박한 사람들이 만든 공간. 절박한 천막 안에서 더 간절한 심정으로 며칠씩 곡기를 끊고 단식을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국회 앞은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며, 정말 많은 목소리들이 뒤섞인 곳입니다. 그곳에 있으면 이 소란과 소음은 다름과 저항들, 지지 않겠다는 '민주'의 의지에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습니다.

이렇게 많은 목소리들 가운데, 3년째 매일 같이 피켓을 들고 천막 농성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아니, 24년째 농성중인 사람들입니다. 절박하고 간절한 목소리로 평생을 거리에서 보낸 사람들,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아래 유가협) 어머니와 아버지들입니다.

24년째 제자리인 '민주유공자법' 제정
 
 단식 농성중인 유가협은 6월 10일 시민대행진을 진행합니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영정을 들고 민주유공자법 쟁취를 요구하는 행진에 많은 민주시민들이 함께 하기를 기다립니다. https://bit.ly/438btCd
단식 농성중인 유가협은 6월 10일 시민대행진을 진행합니다. 민족민주열사희생자 영정을 들고 민주유공자법 쟁취를 요구하는 행진에 많은 민주시민들이 함께 하기를 기다립니다. https://bit.ly/438btCd ⓒ 전국민족민주유가족협의회
 
유가협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민주 열사들의 가족들이 '고인들이 썼던 민주의 가시관을 받아쓰는 마음으로' 만들 수밖에 없었던 단체입니다. 자식을 따라 1980-90년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당하는 사람이 생기면 앞장서서 싸우며 평생을 보낸 유가협 부모님들.

민주화 열기가 잦아든 이후에도 희생된 고인들을 예우하는 법률을 만들라며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삭발을 하고, 단식 농성만도 여러 번. 거리의 투사로 나이 든 부모님들은 백발이 된 지 이미 오래 되었고, 모두 여든이 넘었습니다.

부모님들 머리가 세는 동안, 우리는 직선제를 얻었고 국회 앞에서 천막을 치고 광화문 거리에서 촛불을 들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희생된 유공자를 법으로 예우하자는 '민주유공자법' 제정은 24년째 제자리입니다. 국회 앞에서 사람들과 함께 피켓을 들고 촛불을 들 때 부모님들은 어떤 마음이셨을까 싶어집니다.

민주유공자법, '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이 발의된 것은 1998년 12월입니다. 이 법안도 국회 앞에 천막을 치고 100일 넘게 농성을 한 결과였습니다. 유가족들이 어렵게, 간절하게 법안을 발의했지만 고인들은 여전히 민주화운동 '관련자'입니다.

책이나 영화로 많이 알려진 박종철, 이한열 열사는 민주화운동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민주화 열사이지만, 그들이 민주유공자로 불리지 못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민주유공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이후로도 민주유공자법은 발의된 것만 열 번이 넘지만, 매년 이런저런 핑계로 미뤄졌고 유가족들은 '다음에'만 믿고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기다린 세월이 24년입니다.

민주유공자법이 제정되기만을 바라며 천막으로 출퇴근하며 기다리고, 밥을 굶으며 기다리는 동안, 나이가 든 부모님들이 한두 분, 세상을 먼저 떠나고 이제 유가협에는 몇 분밖에 남아계시지 않습니다.

기다리라는 말을 더는 기다릴 수 없어서 2021년 가을, 몇 번째인지 모를 천막을 다시 치고 자신들의 몸보다 큰 피켓을 들었습니다. 법 제정을 위해 시민들의 연서명을 받고 삭발을 하고 할 수 있는 것은 다 해 보았습니다. 3년이 다 되도록 국회는 답이 없고 천막에는 살림만 늘어갑니다. 시간이 흐를수록 유가족의 마음은 조급해져만 가고, 천막을 찾는 사람들의 마음도 함께 무거워집니다.

작년엔 삭발, 올해는 단식

정권이 바뀐 뒤로 기다리라는 말을 더는 믿을 수가 없어서, 2023년 4월 11일 유가협 부모님들은 단식 농성을 시작했습니다. 나이가 제일 적어서 자신이 '막내'라는 강선순 어머니(권희정 열사의 어머니)는 올해로 여든이 되셨습니다.

작년 여름 삭발한 머리카락이 이제야 귀를 덮을 정도로 자랐는데, 그래도 안 되니 이제 단식으로 농성을 하시겠답니다. 단식 농성은 장남수 유가협 회장님(장현구 열사 아버지)가 시작하셔서 6월 10일 범국민 추모제가 열리는 날까지 부모님들이 릴레이로 단식 농성을 하기로 했습니다.

단식 농성 18일째, 정정원 어머니(김윤기 열사 어머니)이 쓰러져 병원으로 가셨습니다. 단식 닷새째였습니다. 정정원 어머니가 병원으로 실려 가신 날에도 장남수 회장님과 동조 단식에 참여한 사람들이 농성을 이었습니다.

강선순 어머니와 정정원 어머니, 장남수 아버지와 유가협 부모님들이 건강이 위태로운 줄 알면서도, 사람들의 만류에도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은 것은 딱 하나입니다. 민주화 과정에서 희생될 수밖에 없었던 열사들의 명예를 회복하는 것. 그래서 "이제 늙고 병들어 곧 만나게 될지 모를 자식들 앞에 부끄럽지 않고 싶다"는 오래된 바람뿐입니다.

형식적으로나마 한국 사회는 민주국가의 이름을 얻게 되었지만, 민주화 과정에서 분신과 투신, 고문과 의문사로 목숨을 잃고도 민주유공자의 법적 지위를 인정받지 못한 열사들은 여전히 '불순분자'라는 비난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아직도 부모님들은 '그렇게 떠난 자식 뭐가 자랑스럽냐'는 비아냥을 듣기도 합니다.

보수를 자처하는 정당은 '운동권 세습'이네 '셀프 특혜'니 하는 모욕도 서슴지 않습니다. 민주주의를 계승했다고 자랑하는 민주당 역시 제정을 미루기만 할 뿐, 의지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식들을 따라 민주화에 평생을 바친 유가협 부모님들은 과장된 비난과 근거 없는 모욕에 민주열사들의 명예를 잃지 않기 위해, 잊혀진 존재가 되지 않게 하기 위해, 그래서 열사들이 자신들의 삶과 맞바꾼 민주화의 가치가 옅어지지 않도록 자신들의 남은 평생을 여전히 거리에서 보내고 계십니다.

부모님들의 한결같은 바람, 이제는 이뤄져야

국회의사당역 5번 출구 앞 천막 농성장에는 나무로 만든 울타리와 대문이 있습니다. 출구로 나오자마자 예쁘게 색깔을 칠하고 '민주유공자법 제정'이라고 쓰인 대문이 보입니다. 나무로 만든 대문을 밀고 들어갈 때마다, 창신동 한울삶, 한옥집 대문을 여는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천막 안에는, 언제나처럼 장남수 아버지와 강선순 어머니가 계시거든요.

예전이나 지금이나, 한울삶이든 천막이든 부모님들은 자신들은 굶어도, 찾아온 사람들에게 꼭 밥 먹고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일단 숟가락부터 쥐어주기 때문에 밥이든 뭐든 먹지 않고는 못 배깁니다.

천막에 찾아 온 사람들을 빈 속으로 보내는 법이 없습니다. 천막 평상에 앉아 부모님들이 건네주시는 따뜻한 커피며 옥수수를 받아먹고 있으면, 도리어 천막에 오는 사람들에게 고맙다는 말을 몇 번이고 하시는 걸 듣고 있으면 예전에 부모님들이 말씀하셨던 게 떠오릅니다.

유가협 30주년이 되던 해 처음 뵈었을 때 장남수 아버지는 명예회복도 의문사 진상규명도 하지 못한 채 '자녀 곁으로 떠난' 유가협 부모님들을 생각하면 허탈하다고 하셨습니다. 류성렬 아버지(류재을 열사의 아버지)도 이제 와 '죽은 사람 살리라고 할 것' 아니지만 '시위하다 죽으면 종북되는' 게 너무 억울하다고, 너무 허망한 세상이라고 눈시울을 붉히신 게 잊히지 않습니다.

강선순 어머니는 7년 전에도 '몸이 따라 주질 않아' 더 열심히 활동하지 못한 것을 속상해하시면서 '얼마 남지 않은 인생 웃으면서 살고 싶다'고 하셨는데… 1986년 유가협이 창립된 후부터 지금까지 37년째, '민주의 가시관'은 유가협 어머니, 아버지들의 머리 위에서, 가슴 안에서 날카롭기만 합니다.

계속되는 단식으로 장남수 아버지는 의자에 기대어 말없이 쉬고 계시고, '이제 희망이 없는 것 같어,' 애써 웃으시는 강선순 어머니의 힘없는 목소리가 작게 들립니다. 여전히 천막 밖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들려 옵니다.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리기까지, 민주화 열사들의 운동과 희생이, 유가협 부모님들의 투쟁과 사랑이 있었다는 것을 잊지 않았으면 합니다. 민주주의는 언제든 바스라지거나 허물어질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도록 고귀한 가치를 지켜내는 것은 우리의 몫일 겁니다.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이소선 어머님,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인 박정기 아버님, 이한열 열사의 어머니 배은심 어머님도 모두 투쟁의 결과를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습니다. 유가협 단식 농성 중에도 유가협의 회원인 부모님이 돌아가셨습니다. 정정원 어머님은 단식 중에 쓰러지셨고요.

더는 시간이 없습니다. 민주화 열사들의 명예를 바로 갖추고 자식들 앞에 부끄럽지 않게 살고 싶다던 부모님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이제는 이루어져야 합니다. 민주유공자법을 제정하라고 외치는 이유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월간<작은책> 6월호에도 실렸습니다.


#민주유공자법#유가협#민주주의#610항쟁#월간작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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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저러한 일로 밥벌이하며 르포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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