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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진주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는 25일 오후 진주시 초전동 추모탑 앞에서 합동위령제-추모식을 열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는 25일 오후 진주시 초전동 추모탑 앞에서 합동위령제-추모식을 열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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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님께서 당하셨을 고초와 만행에 이미 눈물도 말랐고 할말도 잃어버렸습니다. 아, 분하고 원통하고 한이 맺혀서 북받히는 감정을 억제할 길이 없습니다. 저 푸른 강 건너 송백산 비둘기야 구구구 슬피 울어라. 저 푸른 강 건너 송백산 뻐꾸기는 피를 토하고 우는구나. 아버님, 아무리 슬퍼도 정신을 차려야지요. 이 몸 늙었어도 아직 의욕은 충만합니다."

머리카락이 희끗한 어르신들이 도포자락을 휘날리며 무릎을 꿇어 빌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진주유족회, 회장 정연조)가 25일 오후 진주시 초전동 추모탑 앞에서 "합동위령제‧추모식"을 열면서 축문을 올렸다.

진주유족회는 74년 전 한국전쟁 당시 희생 당한 민간인 피학살자들을 기렸고, 이번이 열 여섯 번째 추모식이다. 2022년 3월 건립된 이곳 추모비에는 320여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2002년 창원마산 진전면 여양리에서 163구, 2017년 명석면 용산고개에서 39구, 2021년 명석면 관지리에서 30구, 2022년 집현면 봉강리에서 41구를 비롯해 발굴된 유해 350여구가 용산고개 유해임시안치소에 보관되어 있다. 2009년 문산면 상문리에서 나온 유해 111구는 세종시 추모관에 모셔져 있다.

진주와 연고가 있는 희생자 150여명이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2기)를 통해 진실 규명되었고, 57명은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을 진행하고 있다. 진주유족회는 유해 매장 추정지 24곳 가운데 12곳을 발굴 완료했다.

유족들은 축문을 통해 "아직 남은 유해 발굴 작업을 마치겠습니다. 유전자(DNA) 검사를 추진하여 아버님을 가족들 품에 안겨드릴 것을 약속드리며 맑은 술 한 잔 올리오니 많이 많이 흠향하시옵소서"라고 빌었다.

또 유족들은 "제1기 진실화해위 때 시효를 놓친 유족들을 위한 특별법이 제정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제2기에 신청한 유족들도 모두 진실규명을 받아 배상문제가 원활하게 풀릴 수 있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진주시장과 관계 공무원들의 앞날을 밝혀주시옵소서. 진주시의회 의장과 의원님들께 축복을 내려주시옵소서"라고 소원했다.

"아직도 가시적인 성과는 없는 실정"
  
한국전쟁 전후 진주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는 25일 오후 진주시 초전동 추모탑 앞에서 합동위령제-추모식을 열었다. 정연조 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는 25일 오후 진주시 초전동 추모탑 앞에서 합동위령제-추모식을 열었다. 정연조 회장이 추모사를 하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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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령제는 서봉석씨 사회로 불교천도제에 이어 전통제례가 거행되었다. 뒤이어 열린 추모제에서 정연조 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혹독한 일제의 강압을 견디며 국외에서의 피흘리고 국내에서 호응하여 되찾아 세운 대한민국에 의해 무참한 죽임을 당하신 우리 부모님들의 영령을 위로해 드리기 위해 이렇게 모였습니다"라고 인사했다.

그는 "부모님들이 무참한 죽임을 당한 것은 '현행범이 아닌 민간인을 좌익혐의자라는 이유로 법적 근거도 없이 불법으로 예비검속하여 집단살해한 것'이라고 진실화해위는 밝혔습니다"라며 "재발방지를 위한 법·제도적 조치를 취하여야 한다고 권고했으나 아직도 가시적인 성과는 없는 실정이며 국가범죄에 대한 소멸시효 배제는 국제법이 정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국내법은 여전히 소멸시효를 인정하고 있습니다"라고 했다.

정 회장은 "우리 유족들이 원하는 민간인 학살에 관한 모든 정부기록을 조사하여 공개하라고 했으나 여전히 공개되지 않고 있을 뿐 아니라 가장 기본적인 발굴한 유골의 유전자 감식도 이루어지지 않은 채 발굴한 유골들을 화장하려 시도하고 있습니다"라며 "일련의 일들은 지금까지 해 왔던 사건의 축소와 은폐를 넘어 증거의 인멸까지 시도하고 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정연조 회장은 "대한민국이 국제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이 확실하다면 국가범죄의 시효를 배제하여 역사가 끝나는 날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게 해야 할 것입니다"라며 "국가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는 발굴한 유골들을 유전자 감식을 통해 연고자를 찾아 돌려주는 노력을 해야 할 것이며, 민간인학살 관련기록을 모두 공개해야 한다"라고 호소했다.

김복영 전국유족회장은 추모사를 통해 "참혹했던 과거를 잊지 말고 부모 형제의 원혼을 추모하고 넋을 기리며 가슴 속 깊은 곳에 응어리를 모두 다 같이 풀어가는 장이 되길 바랍니다"라며 "다시는 이러한 불행한 사건이 발생 되지 않도록 가슴 깊이 새기며, 우리들의 간절한 마음을 더욱더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했다.

이옥남 진실화해위 위원이 추모사를 했고, 조규일 진주시장과 진훈현 진주경찰서장, 박대출 국회의원(진주갑), 강민국 국회의원(진주을), 김진부 경남도의회 의장, 양해영 진주시의회 의장은 추모사를 보냈지만 직접 참석하지 않아 낭독하지 않았다.

진주유족회는 이날 낸 자료를 통해 "유족들의 유전자를 우선 채취하여 보존하고 발굴유골의 유전자를 채취하여 연고자를 찾아 주어야 한다. 이것은 학살의 책임이 있는 국가가 당연히 해야 할 의무이며 책임이다"라고 했다.

이어 "특히 이들이 반국가행위나 국가에 대해 적대행위를 하지 않았으며 단지 좌익에 가담했다는 사실만으로 학살하고 그 유족들에게까지도 연대책임을 물은 것 자체가 반인권적 행위이고, 범죄행위"라며 "정부는 적극적으로 진실규명에 나서야 하며 모든 피학살자가 진실규명을 받고 명예를 회복할 때까지 과거사법의 시효를 폐지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또 "과거사위원회를 상설기구로 전환하고 정치적, 이념적 중립성을 유지하여 진실규명에 나서야 한다"라고 촉구했다.
   
한국전쟁 전후 진주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는 25일 오후 진주시 초전동 추모탑 앞에서 합동위령제-추모식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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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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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전후 진주민간인 피학살자 유족회는 25일 오후 진주시 초전동 추모탑 앞에서 합동위령제-추모식을 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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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한국전쟁, #민간인학살, #진주유족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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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부산경남 취재를 맡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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