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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왔다. 남편은 반갑지만 반갑지 않은 손님도 같이 왔다. 그의 잔소리다. 체코에서 혼자 단출하게 생활했던 남편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늘 가족이 그리웠지만 가족이 있는 집으로 왔더니 보고 싶었던 가족만 있는 게 아니라 가족 구성원 각자의 정리 안 된 생활의 흔적도 함께 있었으니까 말이다.

만나면 좋은 것도, 그렇지 않은 것도
 
남편의 체코 월세방
 남편의 체코 월세방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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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코에 있을 때 연구실이든 월세방이든 그의 공간은 언제나 정갈했다. 워낙 정리정돈을 잘하기도 하고 혼자 지내니 자기 외에 달리 어지를 사람이 없어서다. 하지만 달리 어지를 사람이 없다는 것 자체가 외로움을 의미한다. 이 두 가지는 동전의 앞뒤와 같아서 하나만 똑 떼어내어 좋은 것만 취할 수가 없다.

어지르는 사람 따로 있고 치우는 사람 따로 있냐는 불만의 말은 혼자 살 때는 나올 수가 없다. 내가 어지르는 사람이면 그걸 감당하는 사람도 치우는 사람도 나 외에는 없는 법이니까.

외롭다, 외롭다 하면서 학기를 지내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이제는 가족이 있어서 외롭지 않은데 그 가족들 때문에 지저분하다, 정리가 안 된다 하면서 괴로워하는 것이다.

남편이 외국 생활을 하는 동안 외롭다, 어디가 아프다, 밤에 잠을 잘 못 잔다 하는 말을 수화기 너머로 듣느라 마음에 바람 잘 날이 없었다. 어서 학기가 끝나서 남편이 한국에 들어오면 이 걱정이 좀 덜어지겠지 했다.

그가 돌아오니 그 걱정은 사라졌는데 다른 걱정이 왔다. 4인 가족이 함께 지내는 공간을 체코에서 혼자 살던 공간처럼 깔끔하게 유지하려는 그의 고군분투가 시작되었다. 집 정리의 기준을 혼자 살던 공간, 짐도 적고 어지르는 사람도 없는 상태에 맞춰놓으니 그는 집에 오자마자 계속 정리를 하면서 나를 불러댔다.

"OO엄마, 이거 좀 치워. OO엄마, 이거는 어디다 정리해? OO엄마, 이거 버리면 안 돼? OO엄마, 그거 어디 있어?"

수시로 불러대니 성가시기 그지 없었다. 게다가 더 큰 문제는 나도 재택근무를 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내가 집에 있으니 회사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을 그는 자꾸 잊는 것이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집에 있는 걸로 보여요? 업무 시간에 나한테 말 걸지마세요!"라고 하기에도 그림이 좋지 않았다.

회사에 출근을 하는 방법도 있지만 역시나 좋은 만큼 좋지 않은 게 있을 터였다. 재택근무를 해보니 회사가 얼마나 일하기 좋은 환경인지를 깨닫게 된다. 사무기기가 완비되어 있고 출출할 때 챙겨먹을 간식과 음료가 구비되어 있으며 각종 사무용품도 가지런히 쟁여져 있다. 사무실에 출근해 있으면 지나가던 동료와 가볍게 대화를 나누다가 서로 부서가 달라 알지 못하던 소소한 정보들을 공유하면서 막힌 부분을 풀기도 좋다.

다만 그렇게 업무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노트북을 들고 러시아워의 인파에 부대끼며 출퇴근을 하느라 하루에 두 시간을 길에서 써야하니 그야말로 좋은 만큼 좋지 않고, 힘든 만큼 좋은 점도 있는 제로섬 게임을 하는 셈이었다. 피하기보다 남편의 잔소리에 제동을 걸어야겠다는 결론이 나왔다.

"나는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싶을 때 하고 싶은 만큼만 하면서 살고 싶은 사람인데 당신이 와서 내가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 하라고 자꾸 간섭을 하니까 마음이 불편해. 당신 자꾸 그러면 나도 당신 쉬고 싶을 때 왜 논문 안 쓰냐, 왜 공부 안 하냐 잔소리 할 거야."

집이 깨끗하고 정돈되면 좋은 건데 내가 뭐 틀린 말 했냐고 볼멘 소리를 하면서도 남편은 느낀 바가 있었는지 이내 약속을 만들어 자주 밖에 나가기 시작했고, 청소와 설거지를 하는 빈도가 줄면서 잔소리도 줄었다.

처음 귀국한 날 쓰레기를 버리러 나갔던 남편이 들어오지 않고 전화를 했다. 아파트 공동현관에 들어올 때 누르는 비밀번호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서 같이 웃었는데 한 학기 동안 떨어져 지내면서 잊은 건 그것만이 아니었던 것 같다. 4인 가족이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맞춰가는 방법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잊고 있었는지 모른다.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하기
 
국립현대미술관
 국립현대미술관
ⓒ 최혜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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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처음 왔을 때만큼 집이 깔끔하지는 않지만 이제야 함께 살던 시절에 우리가 평화롭게 공존했던 상태로 돌아온 기분이다. 이제 우리는 일어나면 잘 잤는지 안부를 묻고, 한쪽이 커피를 내려주면 상대방이 고맙다고 인사를 한다. 하루 일과가 끝나면 함께 걷고 주말에 같이 그림 전시를 보러 다닌다.

떨어져 지내다 다시 만났을 때 우리는 나막신 파는 아들과 우산 파는 아들을 둔 엄마가 해가 나면 우산 파는 아들을 걱정하고 비가 오면 나막신 파는 아들을 걱정했던 것처럼 처신했던 것이다. 만나서 반갑고 좋아야 하는데 혼자 있을 때 좋았던 것을 넷이 생활하는 집에 이식하려고 했고 셋이 생활할 때 편했던 것이 넷이 생활하는 집에서는 사라졌다고 불평을 했다.

이제는 비가 오면 우산 파는 아들의 장사가 잘 되고, 맑은 날에는 나막신을 파는 아들네 장사가 잘 되겠구나 기뻐하는 엄마의 사고 방식으로 바뀌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갈아입은 옷을 뱀허물처럼 벗어놓지만 가족과 함께 하니 외롭지 않아서 좋고, 잠 못들던 남편이 밤에 머리만 대면 잠이 들어서 좋고.

가끔 청소와 정리정돈을 하는 남편에게 맞추느라 하고 싶지 않은 일을 하고 싶지 않을 때 해야하긴 하지만 남편이 집을 치워주니 그 역시 좋고, 내가 회사 일로 1박2일 출장을 가야할 때 아이들 옆에 아빠가 든든히 지키고 있으니 마음 편히 갈 수 있어서 좋은 거라고 말이다.

롱디 결혼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가족이 함께 사는 곳에는 그의 일이 없고, 그의 일이 있는 곳에는 가족이 함께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남편이 돌아왔을 때 불평하기보다는 가족이 함께여서 좋고, 그의 일이 있는 곳에는 일이 있어서 좋은 걸로 받아들이는 쪽을 선택하기로 한다. 그 반대가 아니라.

이 참에 다시 생각한다. 세상 모든 일은 좋은 만큼 좋지 않은 법이니 항상 좋은 쪽을 보려고 노력할 일이라고. 가족이 만났다 헤어지기를 반복하는 사이에 그런 태도를 연습할 수 있으니 그 또한 좋은 일인 거라고 생각하는 게 그런 노력의 첫 걸음이 될 수 있겠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제 블로그나 브런치에 게재될 수 있습니다.


태그:#롱디, #유럽대학교수, #결혼생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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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쓰고 만드는 삶을 지향합니다. https://brunch.co.kr/@swordn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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